조금씩 벗어던지기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 자신을 옥죄던 몇 가지의 것들을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참마음’이라던지 ‘진정성’이라던지 하는 것에 대한 강박과, 몇 가지의 (주로 성적인) 편견들 따위.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벗어던지고 있다.

이성애자 설문조사

  1. 당신의 이성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당신은 반대성의 사람을 사랑하나요?
  2. 언제, 왜 당신은 이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나요?
  3. 당신의 이성애가 다만 당신의 더 자랄 수 있는 성장 단계에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것뿐인 것은 아닌가요?
  4. 당신의 이성애가 같은 성에 대한 신경성의 공포의 결과는 아닌가요? 당신이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5. 만약 당신이 동성과 사랑, 혹은 성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다만 당신에게 동성의 좋은 파트너가 필요할 것 뿐인지도 모르는데요?
  6. 당신의 부모님, 친구들, 지인들이 당신이 이성애자라는 것을 압니까? 그들은 그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7. 당신은 왜 당신의 이성애를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려 합니까? 당신의 성적 지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주위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당신 자신만 알면 될텐데요.
  8. 왜 이성애자들은 섹스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하죠?
  9. 압도적인 대다수의 청소년과 아이들이 이성애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이성애자 선생님을 신뢰해도 되나요?
  10. 남자와 여자가 잠자리에 도대체 무엇을 하나요? 반대 성이라는 큰 차이가 있는데도 어떻게 서로에게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 주죠?
  11. 사회 전체가 결혼이라는 규칙을 지지하고 있는데도 이혼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왜 이성애 관계는 그렇게 깨지기 쉽고 불안정하죠?
  12. 인구 과잉의 위험을 감안할 때, 모든 사람들이 이성애자라면 어떻게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13. 이성애자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의 객관성을 신뢰할 수 있으신가요? 그들이 당신을 자신들의 성 정체성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14. 행복한 이성애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은 없나요? 그런 치료를 받고 싶진 않으시구요?

러시아어로 된 걸 번역한 거라고 한다. 설문조사 부분만 가져왔다.
‘시금치포비아’라는 제목의 글을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증)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쾌하게 어퍼컷 한 방 날리는 이 설문조사(?)로 대체.

via 청소년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

내가 누구인지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은 가장 긴요한 것은 물어보는 적이 없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 애가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이지? 나비를 수집하는지?”라는 말을 그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이가 몇이지? 형제는 몇이고? 체중은 얼마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야?”하고 그들은 묻는다. 그제야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턱에서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분홍빛의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아, 참 좋은 집이구나!”하고 소리친다.

…차라리 나이나 형제가 몇인지 따위를 물어보는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나는 처음 만나자마자 ‘출신 학교’나 ‘사는 곳’ 따위를 묻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들을 전부 싫어하자면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한 가지 기준을 더 두게 되었다. 나는 처음 만나자마자 ‘출신 학교’나 ‘사는 곳’ 따위를 물은 뒤, 그에 대한 답만으로 나에 대해 꽤나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도대체 그러한 것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출신 학교’나 ‘사는 곳’ 같은 것들이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것들이 궁금한 것이며, 그에 대한 답을 해주고나면 더 이상 궁금한게 없어져 버리는 것인가. 나는 당신에게 나에 관한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잠을 매일 8시간 이상 충분히 자길 원하지만 그렇게 하는 날은 거의 없는데,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잔다 하더라도 7시간 밖에 자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말과 같이 더 많이 잘 수 있는 날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그 일들을 하느라 8시간 이상 자는 법이 잘 없다. 그 ‘하고 싶은 일’이란 보통 음악을 듣거나 짤막한 칼럼 따위를 읽는 것이다. 나는 4년 전부터 힙합 음악을 좋아했는데, 요새는 예전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힙합 중에서도 재지 힙합을 좋아한다. 그냥 간단하게, 재즈 선율의 힙합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즘에는 좋아하는 음악이 좀 더 다양해졌다. ‘브로콜리 너마저’나 ‘3호선 버터플라이’ 같은 밴드를 좋아하는데, 이들의 음악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뭐. 나는 내 손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내 손만큼 아름다운 손을 본 적이 없다. 적당한 길이의 손가락, 다듬지 않아도 가지런한 손톱, 손등 위의 털. 남들에 비해 나는 손등에 털이 많은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손을 들여다보다 친구들의 손을 봤는데, 아무도 나처럼 손등에 털이 많이 나 있지 않아 깜짝 놀랐다. 손등에는 털이 많지만 팔에는 털이 많이 없다. 그래서인지 팔에 털이 많은 사람을 보며 속으로 놀리곤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팔에 털이 많은 것을 보고 속으로 놀리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손톱을 자주 기르곤 한다. 손톱을 짧게 깎으면 손톱에 자주 때가 끼기 때문이다. 매일 깨끗이 씻어도 그 때뿐, 몇 시간만 지나도 또 다시 지저분해지곤 한다. 그래서 손톱을 기른다. 게다가 나는 손톱이 빨리 자라는 편인 것 같다. 어차피 깎아봐야 금방 다시 자라기 때문에, 그냥 놔둔다. 역시 나는 좀 지저분한 녀석인 것 같다. 나는 잘 웃는다. 당황스러울 때에도 웃고, 심지어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웃곤 한다. 슬픔을 잊기 위해 웃는게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게 웃는 것. 나는 무척 슬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길래 그렇게 웃고 있냐고 하면 더 슬퍼진다. 나는 ‘귀엽다’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그 말은 내게 최고의 칭찬이다. 나는 귀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카레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좀 까다로워서, ‘3분카레’ 같은 건 맛이 없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강황이 많이 들어간, 약간 매운 카레를 좋아한다. 인도식 카레도 좋아하는데, 너무 비싸서 자주 못 먹는게 아쉽다. 그리고 정말 인도식 카레가 그런 맛일까도 궁금하다. 인도에 가면 꼭 먹어보고 싶다.

이것말고도 말할 것은 많다. 적어도 이 정도는 알려준 다음에, ‘출신 학교’나 ‘사는 곳’ 따위를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사람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지랄하네.

나쁜 아이

2006년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새로운 교감이 부임해왔고, 그는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는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나쁜 친구가 아니었다. 단지 술과 담배 그리고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그런 친구일 뿐이었다. ‘어른들’에게는, ‘나쁜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겠지만.

그런데, 그 새로 온 교감은 나를 그 친구로 착각한 듯 했다. 그 친구와 내가 함께 있을 때, 한 선생이 그를 가리키며 교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한 이후로, 교감이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너, 무슨 애로사항 있니? 괜찮아, 다 이야기해 봐.”

나는 그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선생님이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 친구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그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착각을 바로잡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고, 그가 ‘나쁜 아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그가 누군가를 해코지한다는 말을, 나는 전혀 들은 적이 없다. ‘어른들’은 그가 술과 담배 그리고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나쁜 아이’로 취급했다.

그리고 그 교감은 그 ‘나쁜 아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다만, 그 친구가 아니라 나에게 ‘다가왔’지만. 정말이지 부담스러운 한 달이었다. ‘나쁜 아이’로 낙인찍힌 그 친구가 여태껏 느껴왔을 기분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여태껏 늘 ‘착한 아이’로 살아왔던 나는, 분명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이 제 딴에는 매우 ‘친절한’ 것이었겠지만, 그 시선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또다른 칼날을 목에 들이대는 느낌’이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날 수록, 그의 시선에서 뭔가 의아하다는 생각이 느껴졌고, 결국 한 달 뒤에는 사실(?)을 알게 된 듯 했다. 그 친구에게, 나에게 주던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애로사항 없냐고’ 묻기 시작했으니까. 그 친구는 교감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그를 피하곤 했다.

만약 내가 교사가 된다면, 과연 나는 그 교감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관심이랍시고, 또다른 칼날을 들이대는. 자신이 없다.
왠지 그 친구가 만나고 싶어지는 밤이다.

능청맞게

요새 너무 무거운 글만 쓴 것 같다. 아닌가? (웃음)


우리 학교는 부산·경남 곳곳에서 오는 곳이다 보니, 지난 한 달간 어느 중학교에서 왔는지 물음이 참 많이 오갔다. 나도 몇 번 받았는데, 대부분은 “너 남학교에서 왔니?” 따위의 질문이었다.

아니라고 하면, 내가 여자애들한테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진다며 남학교에서 와서 그런 줄 알았단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저 웃고 만다. 내가 그런가? 하긴, 예쁜 여자애들을 보면 얼굴이 빨개지는 건 사실이긴 하다. 이런 말을 능청맞게 하고 싶긴 한데(웃음), 그저 빙긋 웃고 말 뿐이다. 남들이 다들 나보고 A형 같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이런 능청맞은 말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역시 혈액형으로 성격이 결정된다는(난 B형이다.) 헛소리가 맞긴 맞는 걸까? (웃음)

덧쓰기.
혈액형 테스트는 단순히 재미로 하는 것일 뿐인데 그걸 두고 헛소리라 하는 건 너무했다고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금의 혈액형 유행(요새 좀 시들해졌긴 하지만, 여전히 강력하다.)은 제정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