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군대에 관한 자문자답

전쟁과 군대에 관한 자문자답, 그 중 일부.


갑 : 하지만, 군대가 없어진다면 누가 우리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을 : 군대가 우리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그 말은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깡패들이나 할 소리 아닌가? 군대는 깡패지.

갑 : 어째서?

을 :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결국 다른 나라 군대이니까. 다른 깡패들로부터 보호해준답시고, 보호비를 뜯어내는 깡패랑 뭐가 다르지?

갑 : 보호비라…. 국방비로 내는 세금?

을 : 뭐, 그것도 있고…. 강제로 군대에 가야 하니까. 깡패 비유를 계속 들자면, 깡패 조직 간의 싸움에 ‘시다바리’로 끌려가는 거? 이건 뭐 깡패들보다 더하구만! (웃음) 깡패들이 상인들을 자기네들 싸움에까지 끌어들이지는 않잖아.

갑 : 그런 식으로 비유를 들면, 왜곡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건데. 군대-시민의 관계가 깡패-상인의 관계와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을 : 흠흠, 뭐 그렇긴 하지. 그렇다 하더라도 군대가 우리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건 순 거짓말 아닌가?

갑 : 하지만, 전쟁의 주체로 꼭 국가만 있는 것은 아니지. 이를테면, 만약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군대를 없앴는데, 어디선가 반군이 들고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지?

을 : 차라리 외계인들이 쳐들어온다고 하지그래? (웃음)

갑 : 이봐,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크지 않나?

을 : 물론 그렇지. 음…. 우선 말하고 싶은 건, 그 말에는 ‘반군은 악이고 정부는 선이다.’라는 식의 이분법이 깔려 있는 것 같은데.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서 외계인과 세계인(미국인)의 관계처럼. 예를 들어 만약 그 반군이 ‘사파티스타‘ 같은 저항군이라면, 난 오히려 그 반군들을 옹호할지도 모르겠어. 그렇다고 뭐 내가 ‘사파티스타’들을 좋게 보는 건 아니고….

만약 네가 반군들에게 ‘누가 봐도 나쁜 놈들’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가정을 하나 더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군대가 없어진다는 건 단순히 그러한 조직이 사라지는 것만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는 억압적인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거지. 이상주의라고? 인간의 본성이 폭력적인데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뭐, 이상주의, 맞지. 뭐시기…. 그 본성인가 하는게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뭐 본성이 그렇다면 전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아예 처음부터 거부되어야 하나? 평화는 주어지는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거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고.

그리고, 전쟁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싶어. 깡패 비유를 다시 들자면, 독재정권 당시 깡패들을 ‘삼청교육대‘로 보냈잖아? 당장에 깡패는 눈 앞에서 사라졌겠지만, 그것이 평화인가? 군사독재라는 더 커다란 폭력으로 억누른 것에 불과하지. 그리고, ‘삼청교육대’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인권유린은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것이 평화인가?

다시 말하지만, 깡패든 전쟁이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몰라. 중요한 건, 그런 세상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지.

폰 몰트케, 모파상, 전쟁

전쟁은 성스럽다. 전쟁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법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위대하며 고귀한 감정들을 유지하게 준다. 명예, 헌신, 미덕, 그리고 용기. 그리고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가장 추한 물질주의에 빠져드는 것으로부터 구해준다.

Helmuth Karl Bernhard von Moltke

그렇다면, 수백만의 사람들과 함께 떼를 지어서, 쉬지도 않고 밤과 낮으로 행군하며,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아무것도 읽지 않고,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으며, 오물 속을 뒹굴며, 진흙탕에서 잠자고, 끊임없이 마비 상태로 짐승같이 살며, 도시들을 약탈하고, 마을들을 불태우며, 전체 백성들을 멸망하게 하며, 그리고서 다른 무리 인간의 살덩어리들을 만나며, 그들 위에 넘어지고, 피의 웅덩이와 진흙에 섞인 살점들 그리고 시체 더미들로 붉게 물든 평원들을 만들며, 당신들의 팔이나 다리들이 날아가고, 당신의 머리들이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하면서 날아가 버리고, 들판의 한구석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당신의 노부모들, 당신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것이 바로 가장 추한 물질주의로 빠져들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Guy de Maupassant

괴물

이라크전이 터졌을 때 13세의 소녀 샬롯 알데브론은 눈을 뜨고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 말로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이건 액션영화도, 공상영화도, 비디오게임도 아닙니다.”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우리를 놀라게 한 악마성이란 바로 그런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광들은 겁쟁이들이 전쟁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겁쟁이들만이 전쟁으로 이권을 챙기는 사기꾼들에게 놀아난다. 테러에 대한 공포, 악에 대한 공포로 주눅 들었을 때 사람들은 전쟁에 빠져드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공포로 한없이 웅크들 때 내 안에서 악마가 자라난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파시스트들은 겁쟁이들이며, 겁쟁이들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전쟁을 똑바로 보라.

“세상의 군대가 모두 없어졌을 때, 온갖 무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집단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거냐”던 친구가 생각난다. “차라리 외계인들이 침략해오면 어쩌냐고 하지 그래”란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온갖 상상의 적들. 상상 속에서 적들은 피도 눈물도 없으며, 오직 살육만을 위해 사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한 마디로 ‘괴물’이다.

니체가 ‘선악을 넘어서’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테러리즘이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다는 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을 보라. 그들은 ‘괴물’ 상상에 빠져 ‘공포로 주눅’들었고, 결국 상상 속의 ‘괴물’과 싸우다 그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괴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임을 기억하라. 우리가 생각하기를 멈추고, ‘전쟁으로 이권을 챙기는 사기꾼들’이 퍼뜨리는 ‘괴물’ 상상에 놀아날 때,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 전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