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본 것들

  1.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이계삼, 녹색평론사
  2. 『무지한 스승』, 자크 랑시에르, 궁리
  3.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녹색평론사
  4. 『재현이란 무엇인가』, 채운, 그린비
  5.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사회평론
  6. 『권력이란 무엇인가』, 이수영, 그린비
  7.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이택광, 글항아리
  8.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후마니타스
  9. 『딥스』, 버지니아 M. 액슬린, 샘터사
  10. 『민중에서 시민으로』, 최장집, 돌베개
  11. 『거꾸로 달리는 미국』, 유재현, 그린비
  12.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피터 싱어, 산책자
  13.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 강병호 외, 난장
  14. 『삶을 위한 국어교육』, 이계삼, 나라말
  15. 『내가 살던 용산』, 김성희 외, 보리
  16.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김민수, 그린비
  17. 『예스맨 프로젝트』, 마이크 버나노 외, 빨간머리
  18.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대리언 리더, 문학동네
  19.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고경원, 아트북스
  20.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현실문화연구
  21. 『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
  22.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 조셉 추나라, 책갈피
  23. 『정치신학』, 칼 슈미트, 그린비

신문, 잡지, 소책자 제외.

영화

  1. 친구 사이? (김조광수, 2009)
  2.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2009)
  3. 이마 베프 (올리비에 아사야스, 1996)
  4. 반두비 (신동일, 2009)
  5. 경계도시 2 (홍형숙, 2010)
  6. 아이언 맨 2 (존 파브로, 2010)
  7. 바더 마인호프 (율리 에델, 2009)
  8. 하녀 (홍상수, 2010)
  9. 도쿄 택시 (김태식, 2010)
  10. 내 깡패 같은 애인 (김광식, 2010)
  11. 공자-춘추전국시대 (호 메이, 2010)
  12. 하녀 (김기영, 1960)
  13.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런, 2010)
  14. 뮬란: 전사의 귀환 (마초성, 2010)
  15. 카틴 (안제이 바이다, 2007)
  16. 땅의 여자 (권우정, 2010)
  17. 부당거래 (류승완, 2010)
  18. 소셜 네트워크 (데이빗 핀처, 2010)
  19. 클래스 (로랑 캉테, 2010)
  20. 스카이라인 (콜린 스트로즈/그렉 스트로즈, 2010)
  21. 헬로우 고스트 (김영탁, 2010)

2008년 이후 매해 본 책과 영화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는데, 2009년에는 컴퓨터에 기록해둔 데이터를 연말 즈음에 날려 먹어서 글을 쓰지 못했다. 책은 이십여 권, 영화는 열 편 정도를 봤던 것 같다.

작년과 올해 모두 한 달에 책을 두 권 정도밖에 읽지 않았다. 작년이야 수능을 준비하는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할 수 있겠지만, 올해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하루에 15시간 남짓한 시간을 갇혀 있어야 했던 학교에서 책만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학교 밖으로 나오니 누릴 수 있는 낙이 여럿으로 늘어났기 때문일지도, 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웃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책이 아니면 기록하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하다. 소화하기 벅찬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다가 포기해버린 일이 잦았던 올해였다. 그런 책을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 정도의 허영심 때문이었지만, 돌이켜봤을 때 나는 ‘양보다 질’이라고 나 자신에게 변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백 장이에요? 너무 많아요.”
“뭐든 모으면 의미가 되거든.”

계림 언니는 질보다 양을 추구했던 쪽이 질적으로도 더 나은 결과를 낳았다는 실험 얘기를 해주었다.

“어느 도예과에서 그룹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작품을 많이 해서 총합이 무거운 순서대로 점수를 준다고 했고 다른 쪽은 가장 잘한 것 하나만 내면 그걸로 평가를 한다고 했어. 그런데 예상과 달리 무게로 점수를 준 쪽에서 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대. 머리로 고민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대신에 손이 가는 대로 많이 만들다보면 좋은 게 나온다는 얘기지.”

오늘의 할 일, 작업실. 자음과모음R 2010년 9/10월호 P195-196.

독서도 ‘질보다 양’인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책을 읽는 것은 많이 하지 않았을 때 반성을 하고 목표도 세우며 ‘일’처럼 여겼지만, 영화를 보는 것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딱히 보려고 한 적도 없는데, 그냥 재미삼아 하나씩 본 영화가 모이니 올해 읽은 책과 비슷한 수가 된 것이다. 책 읽기에 너무 의무감을 갖고 있진 않았나 생각해본다.

굿바이 레닌

가짜 뉴스 장면. 금발에 콧수염을 기른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에서 과거 공산주의 국가의 시민들과 인터뷰를 한 것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그들은 대개 “빈부격차가 커지는 등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자유가 있으니 좋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인터뷰를 볼 때마다, 나는 언론에게서 일종의 강박 같은 것이 느껴진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자유가 생겼으니 좋은 것이다. 이 정도로 만족하라. 자본주의 세계가 천국은 아니지만, 이 이상 좋은 곳은 없다.” 그런 말을 애써 반복하는 느낌. 불편하다. 더 나은 곳을 꿈꿀 자유가 없다면, 도대체 그 자유란 무슨 자유인지.

<굿바이 레닌>은 그런 식으로 애써 ‘새로운 세계’를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통일 후 얻은 것도 많았지만 동시에 잃은 것도 많았다는 것이, 어머니를 속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모습 뒤로 슬며시 드러나곤 한다. 영화의 막바지, 가짜 뉴스에서 지그문트 얀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베를린 장벽이 열리자마자 수천 명의 서독인들이 우리 공화국으로 자유를 찾아 넘어왔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통받던 이들은 새로운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출세와 향락만이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아닙니다. 이들은 다른 삶을 원합니다. 인생에는 물질보다 더 값진 것이 있죠. 그것은 바로 선의와 노동,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입니다.

분명히 동독은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경찰이 두들겨 패던 체제였고 ((근데 이건 2009년의 한국도 마찬… 쉿!)), 주인공의 아버지를 서독으로 망명하게 만든 체제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체제를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더 나은 곳을 꿈꾸어선 안 되는 걸까?

어머니를 위한 주인공의 거짓말은, 어느새 자신을 위한 거짓말이 된 것 같다. 남편을 따라 서독으로 갈 수 없었던 어머니가 동독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듯, 엄청나게 빠르게 바뀐 새로운 체제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닐지. 더 나은 통일 독일을 꿈꾸며.

크리스마스 캐롤

쇠사슬을 쥐고 있는 유령의 손을 보며,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는 늙은이

가족들과 같이 본 영화.

원래 이야기에서 크게 바뀐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조카가 좀 잘 산다는 것 빼곤? 뭔가 이야기를 좀 더 늘어놓을까 했는데, 뻔한 소리나 할 것 같은데다가 귀찮아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