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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쿠오레를 추억하며: ‘생활 커피’는 언제쯤?

매일 커피를 마시는 내게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집 근처에 갈만한 카페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주로 마시다 보니 이 꿈이 더 간절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브루드 커피를 주로 마셨다면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에스프레소는 아무래도 좀 더 비싼 기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렴한 에스프레소 기계도 많지만, 그 정도로는 내 기준에서 만족스러운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가 없다.

이쯤 되면 내게 “카페는 많잖아요?”라고 묻는 것은 내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의 커피 문화는 분명 비약적으로 발전 중이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그럭저럭 괜찮은 커피를 마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집 근처에 갈만한 카페가 생기는 것’이라는 내 꿈에서 방점은 ‘갈만한’에 찍혀 있다.

어쨌든, 이 꿈이 한때 잠시나마 실현된 적이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부산 장산역의 ‘카페 쿠오레’ 이야기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내 고향 집은 부산에 있는데, 부산 해운대의 장산역 근처다. 장산역 부근은 원래는 군부대와 작은 마을 정도만 있던 곳이지만, 20여 년 전에 ‘신도시’가 생겼다. 20여 년이나 지나서 이제는 ‘신도시’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어쨌든 아파트가 밀집한 주거 지역이다.

카페 쿠오레는 정말이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내가 커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012년 상반기쯤이었다는 이야기를 지난 글에서 했는데, 쿠오레를 발견한 것은 2012년 하반기였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 몇 군데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 중 하나가 쿠오레였다.

앉을 자리가 거의 없는 작은 카페였다. 기억하기로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세 개 정도 더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손님들은 ‘테이크아웃’을 했는데, 테이크아웃 손님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좁은 카페에서 나는 보통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에스프레소를 자주 마셨지만 에스프레소만 마시진 않았다. 물을 붓고 에스프레소를 그 위에 붓는 음료인 ‘롱 블랙’을 쿠오레에서 처음 마셔봤고, 스페인식 라테라고 할 수 있는 ‘코르타도’도 쿠오레가 처음이었다.

쿠오레의 롱 블랙
(쿠오레의 롱 블랙.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쿠오레의 커피 사진이다. 사진을 많이 남겨놓지 못한 것이 아쉽다.)

특이하게도 롱 블랙과 아메리카노가 나란히 메뉴에 올라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과 에스프레소를 붓는 순서의 차이밖에 없지만, 쿠오레에서는 롱 블랙을 아메리카노보다 좀 더 진하게 내는 식으로 차이를 더 뒀다.

코르타도는 메뉴에는 없는 음료였다. 내가 우유보다는 커피가 많이 들어간 음료를 좋아하는 것을 알던 바리스타가 특별히 만들어준 음료였다. 코르타도는 우유 거품이 거의 없고, 커피와 우유가 거의 1:1일 정도로 커피 비율이 높은 음료이기 때문이다. 쿠오레에서 처음 마셔본 코르타도는 아주 진했고, 덕분에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쿠오레는 직접 원두를 볶았다. 나중에 글로 쓸 일이 있겠지만, 나는 커피 원두를 직접 볶는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규모가 작은 카페인 경우 적은 직원 수에 일의 양만 훨씬 가중돼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일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쿠오레는 직접 원두를 볶는 곳이었는데, 그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로스터를 두려다 보니 출입구 바로 옆에 둬야 했고, 꽤 불편한 자세로 원두를 볶는 걸 종종 본 기억이 난다. 원두를 직접 볶지 않고 커피 만드는 데만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쿠오레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면, 나는 일부러 쿠오레를 찾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커피 맛은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일부러 찾아갈 만한 분위기를 갖춘 공간은 결코 아니었다. 정말이지 쿠오레는 ‘동네 카페’였다.

이 모든 설명은 전부 과거형이다. 쿠오레는 2013년 4월 24일에 문을 닫았다. 그때 나는 1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복학해 서울에 있었기에, 쿠오레가 문을 닫은 이유를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쿠오레에서 한때 일했던 바리스타가 쿠오레의 영업 종료 소식을 전하며 “단순 열심히만으로는 힘들다는걸 다시” 느꼈다고 말한 거로 봐서는 경영난 때문이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문을 닫은 쿠오레
(문을 닫은 쿠오레. 2013년 4월 26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쿠오레가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리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장산역 부근은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주거 지역이다 보니, 상가 건물은 전부 대규모에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것들이었다. 당연히 임대료는 꽤 비쌌을 것이다.

주거 지역은 번화가가 아니기에 커피를 팔려면 저렴하게 팔 수밖에 없다. 주거 지역에는 커피에 비싼 가격을 낼 만한 고객이 많지 않은 법이다. 그럼에도 쿠오레는 주변 카페들에 비해 비쌌다. 그만큼 좋은 원두를 썼고 그래서 맛도 좋았지만, 그게 ‘어필’이 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쿠오레는 너무 좁다 보니 ‘장소 대여’로서의 카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했다. 직장인들이 많은 사무실 밀집 지역이었다면 테이크아웃만으로 충분히 장사가 가능했을 테지만, 주거 지역은 아무래도 ‘장소 대여’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 법이다.

쿠오레는 문을 닫은 건 이러한 이유들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장산역 부근에서 갈만한 카페를 발견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장산역 부근에서 갈만한 카페가 생기긴 쉽지 않은 것일 테다.

이건 늘 나에게 안타까운 일로 남아있다. 단지 집 근처에서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커피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매일 마시는 음료다. 그렇기에 좋은 커피라면, 우리 생활 속에 녹아있어야 더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좋은 커피가 특별히 어딘가를 일부러 찾아가야만 맛볼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좀 슬프다. 좋은 커피가 곧 ‘생활 커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국의 커피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좋은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값은 좀 비싸지만, 점심시간에 그런 카페에 가면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좋은 커피에 기꺼이 돈을 치를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마찬가지로, 주거 지역에서도 그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좋은 카페들이 생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아마 나의 고향 집이 있는 동네도 머지않았을 것이다. 조만간 제2의 쿠오레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