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알피 콘은 <경쟁에 반대한다>에서 경쟁이 더 높은 생산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반박하며 그것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경쟁의 본질은 ‘상호배타적인 목표달성’이다. 당신이 실패해야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 경쟁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사람들은 경쟁에서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실패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내가 연애에서 겪는 문제 또한 이와 비슷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실제로 어찌하든 나는 마음속에서 ‘경쟁자’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질투와 불안, 초조함의 연속. 그 ‘경쟁자’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맺는 관계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어떻게 하면 그 ‘경쟁자’를 제칠 수 있을까가 내 유일한 관심사가 된다.

이는 확실히 도착적이다. 내가 ‘경쟁자’보다 앞선다 해서(그런데 도대체 무엇에서?), 혹은 ‘경쟁자’가 제거된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매력을 기르기보다는 경쟁상대가 실패하는 것에 더 집중한 결과, 난 경쟁에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사랑에는 늘 실패해왔다.

왜 이런 것일까? “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서”라는 상투적인 답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답에 또다시 “왜?”라는 의문이 따라붙는다는 데 있다.

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 사랑으로 저항하는 프랑스 시위자들

헬멧과 갑옷, 방패로 중무장한 경찰들 앞에서 남녀 한 쌍이 드러누워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고 있다.

© REUTERS/Gonzalo Fuentes

이 사진은 도대체 무엇일까? 헬멧과 갑옷, 방패로 중무장한 경찰들 앞에서 남녀 한 쌍이 드러누워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고 있다! 이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경찰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중무장한 채 대열을 갖추어 서 있다. 이들의 등 뒤로는 육중한 경찰수송차량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들 앞에 드러누워 키스하는 한 쌍. 사진은 역삼각형 구도로 찍혀 한층 긴장감을 더한다.

꽉 부둥켜안은 이들의 팔과 남자의 손에 생긴 힘줄을 보건대, 이 남녀 한 쌍 또한 약간 긴장한 듯하다. 이 상황에서 어느 누가 긴장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이 사진은 긴장감만으로 가득하지는 않다. ‘시위 진압 경찰들 앞에서의 사랑’이라는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이 두 남녀의 행위가 오히려 시위 현장의 긴장을 어느 정도 깨뜨리고 있다.

이 사진은 2010년 10월 프랑스의 연금 개악 반대 시위 현장에서 로이터 통신사가 찍은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경제위기로 말미암은 국가의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고자 하는 정부의 시도에 반발하여 300여만 명의 시민이 들고일어났다.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과 더불어 연금 개악으로 청년실업이 더 가중되는 것에 분노한 청년들도 시위에 동참하였는데, 이 키스하는 두 남녀도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이다.

시위의 시발점은 연금 개악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쌓여온 정부의 불공정한 책임 떠넘기기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동했다. 프랑스의 화장품 회사 로레알로부터 엄청난 정치자금을 받아온 대통령과 그 검은돈을 관리해준 노동부 장관이 주도한 연금 개악에 사람들은 “기업들의 실패 탓인 경제위기의 부담을 우리가 왜 대신해야 하는가?”라며 분노했고, 시위 현장에는 “나는 계급 투쟁한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프랑스 68혁명 이후 등장한 ‘신좌파’들은 모든 억압의 철폐를 신조로 내걸고 저항했다. 이들은 경찰, 군대와 같은 모든 억압적인 국가기구를 없애길 원했고,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계급 없는 사회를 꿈꿨다. 그뿐만 아니라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랑’을 매우 중시했는데, 자유로운 섹스와 사랑이 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사람들을 바꿔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경찰들 앞에서 키스하는 이 두 남녀는 신좌파이거나 신좌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이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경찰들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할 수 있을까? 68혁명 당시 사람들은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라고 외쳤다. 그렇다면 이 두 남녀는 사랑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1학년 2학기 <실용작문> 시간에 사진/그림 설명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썼던 글. 논리의 비약이 매우 심한데, 그래도 페이스북에도 올려놓고 블로그에도 옮겨놓는 걸 보면 이 글이 마음에 들긴 드나보다.

사랑 이야기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의 대화 속에 잠깐씩 섞여 나오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두 분은 어떤 사랑을 하셨을지 듣고 싶어진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할머니께 여쭤보고 싶지만, 할머니께서 그런 이야기를 꺼리신다시기에, 망설이고 있는 중. 하지만,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만 들어도, 두 분의 이야기는 정말 특별할 것 같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두 살 많았다. 두 분을 만나게 한 것은 한국 전쟁. 그 당시 두 분은 중학생이었다. (두 분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을까.) 서울에 살던 할머니는 대구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전쟁 동안 어느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그 집은, 할아버지의 친척집. 할아버지는 그 당시 대구로 유학을 와서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두 분은 그렇게 만났다.

할머니가 서울로 돌아간 이후에도 두 분은 편지를 계속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두 살 차이라지만, 할머니는 고등학교 1학년 이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셨기에 실상 네 살 차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진로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집안은 가난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학비가 들지 않는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셨다.

할아버지가 사관학교를 졸업한지 1년쯤 뒤, 두 분은 결혼하셨다. 할머니의 집안에서 반대가 많았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두 살 많기도 했고. 할머니의 집안은 비교적 부유했던데 반해, 할아버지는 (장교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긴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건어물상의 아들이었으니까.

두 분은 결혼 후 다섯 달 뒤, 아버지를 낳으셨다. 할머니께서 이 이야기를 하기 꺼리시는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일이니, 40여년 전이었으면 오죽했을까. 두 분은 그 후 37년을 함께 하셨다. 할아버지의 제사 때마다, 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두 분은, 어떤 사랑을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