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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4장 47절의 본 뜻은 무엇일까?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교리’라는 이슬람 비방 문건을 반박하는 자료(1, 2)를 페이스북에 여러번 링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만석이라는 사람이 쓴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교리”에 대한 바른 견해는?’이라는 칼럼을 보게 됐다.

그 칼럼은 반박을 재반박(?)하려 하고 있다. 재반박을 위해 이만석은 여러 ‘밑밥’을 까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슬람에는 “타끼야”라는 특수한 교리가 있어서 이슬람을 보호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거짓이나 위장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둘째, “꾸란의 한글 번역본들은 정직한 번역이 아니라 심각하게 미화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논리를 따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만석이 ‘우물에 독 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슬람은 비무슬림에게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꾸란도 믿을게 못 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슬람 비방에 대해 반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슬림이 반박하면 거짓말이 되는 것이고, 비무슬림이 반박하면 속고 있는 것이 될 뿐이다.

어찌 됐든 칼럼에서 주장하고 있는 비방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인데, 이만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꾸란 4장47절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읽히고 있는 최영길 역으로 인용해 본다.(역자는 이슬람의 신을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꾸란 원문대로 ‘알라’로 정정해서 인용한다)

성서의 백성들이여 알라께서 계시한 것을 믿고 그 이전에 너희와 함께 있었던 것을 확증하라. 알라께서 그들의 명예를 거두고 그들을 후미로 돌렸나니 이는 알라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한 자들을 저주했듯 그들을 저주하도다. 알라의 명령은 항상 수행되노라.(최영길 역)

7세기 문어체 아랍어로 기록된 꾸란의 원문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나마 해설이 담긴 영역된 무신 칸 역이 원문의 의미에 가까워 직역해 본다.

오 성서를 받은 백성(유대인, 기독교인)들이여, 우리가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것을 믿으라, 그것은 (이미)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신구약 성경)을 확증하는 것인데, 우리가 얼굴을 지우고(코, 입, 눈 등이 없는 뒷목처럼 만들어서) 그것을 뒤쪽으로 돌려놓거나 안식일을 범한 자들을 저주한 것처럼 저주하기 전에 믿으라. 알라의 명령은 항상 수행되노라.(무신 칸 역)

여기서 꾸란은 신구약 성경을 확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것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 근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얼굴을 지운다는 단어는 타마사(tamasa)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종이에 쓴 것을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지우개로 지운다는 뜻이다.

이런 구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묶어서 엎어 놓고 자동차로 끌고 다닌다. 그러면 아스팔트에 눈 코 입이 닳아 없어져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해석이다. 그런 해석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무슬림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싶다. IS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그들을 무슬림의 표본이라고 보는 건 광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 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궁금해졌다. 꾸란 4장 47절의 본 뜻은 무엇일까? 한국어로 읽든 영어로 읽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얼굴을 지운다’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아스팔트에 얼굴을 갈아버린다는 것을 떠올리기 보다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답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참고로 나도 무신 칸의 번역본을 갖고 있다. 그래서 찾아보니 실제로 얼굴을 지운다(efface faces)고 적혀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인지 여러분은 이해가 되는가? 얼굴을 지운다니? 코, 입, 눈이 없는 목 뒤처럼 만든다(by making them like the back of necks; without nose, mouth, eyes)니?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토머스 클리어리의 번역본을 샀다. 토머스 클리어리는 여러 철학, 종교 사상에 능통한 전문 번역가로, 그의 꾸란 번역본은 시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번역본에서도 얼굴을 지운다(obliterate faces)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

번역가에게 메일을 보내볼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메일 주소를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슬림 친구에게 물어봤다. 물어본 이후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친구가 해석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이맘 알 샤라위(Imam Al-Shaarawi)라는 이맘의 해석을 찾아서 내게 알려줬다. 물론 이 답이 틀렸을 수도 있고, 친구도 내게 자신이 찾은 해석이 틀렸을 수 있다는 점을 꼭 밝혀달라고 했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납득이 되는 답이었다.

faces라고 번역된 아랍어 단어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첫째로는 말 그대로 얼굴의 이목구비다. 따라서 얼굴을 지운다는 뜻이 있긴 있는 것이다. 친구에게 어떻게 얼굴을 지울 수가 있는 것이냐고 물으니, “하나님의 힘으로”라고 답해줬다. 사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얼굴을 짓이긴다는 것보다는 그런 해석이 훨씬 ‘정상적’일 것이다.

둘째로는, 목적지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성서의 백성들(기독교와 유대교도를 말한다)이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 그들이 나아갈 목적지를 지워버리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만약 ‘목적지’라면 “뒤쪽으로 돌려놓”는다는 다음 말도 뜻이 통한다. (얼굴을 뒤쪽으로 돌려놓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맘 알 샤라위는 이 두 번째 해석이 더 정확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어쨌든 두 번째 해석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호기심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