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대선: 독재 세력 복귀를 위한 부정선거를 거부하는 시위와 파업이 이어지다

12월 12일 알제리에서는 대중 항쟁으로 퇴진한 독재 정권이 권좌에 복귀하려고 조작한 대선이 강행됐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거부하고 시위에 나섰다. 이날 시위는 12월 8일부터 시작된 4일간의 총파업과 거리 시위에 뒤이은 것이었다.

“장성들을 쓰레기통에!”라는 구호가 거리를 휩쓸었다.

시위는 선거일을 넘겨 공식 휴일인 금요일에도 이어졌다(이번 금요 시위는 2월에 알제리 항쟁이 시작된 이래 43주째 이어진 금요 시위였다). 경찰이 시위대를 위협했지만 대중은 굴하지 않고 시위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 알제 도심을 행진했고, 지방 도시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알제리 제2의 도시 오랑에서는 경찰이 평화 시위를 공격해 400여 명을 체포했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공식 집계로도 알제리 대선 역사상 가장 낮은 39.93퍼센트를 기록했다. 중도 야당 ‘문화와 민주주의 연합(RCP)’은 실제 투표율이 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독립 언론들도 실제 투표율을 10퍼센트 내외라고 추산했다. 4일간 총파업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수도 인근 도시 티지우주와 베자이아에서는 공식 집계로도 투표율이 1퍼센트 미만이었다. SNS에는 투표 용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인증’ 동영상이 속속 업로드됐다.

정부는 이번 선거에서 독재 정권 시절 총리였던 압델 마드지드 테분이 58.15퍼센트를 득표해 대통령으로 당선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많은 알제리인들은 투표 결과가 사기라며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시위 참가자 오마 부레가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걸 선거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건 [군부의] 내정(內定)일 뿐입니다.” 알제리 독립 전쟁 참전 용사 출신이자 시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난 6월 체포된 자신의 삼촌이 운동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고 부레가는 전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테플리카를 끌어내렸고, 이 체제의 모든 인간들을 끌어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위 참가자 리아드 메케르시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알제리인들은 테분과 군부에 맞서 투쟁을 이어 갈 듯하다.

테분은 “시위대에 손을 내밀어 대화를 청할 것”이라며 시위대를 다시 기만하려 하지만, 테분의 앞에는 정당성 위기뿐 아니라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항쟁의 배경이 된 근본적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알제리인 넷 중 한 명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이 공식 통계로만 28퍼센트에 이른다. 알제리 외화 수입의 95퍼센트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는데, 유가는 2014년 급락 이래 계속 낮은 상황이다. 그래서 알제리 정부는 이미 2020년 예산안에서 공공 지출 예산을 9퍼센트 삭감했다.

기만적인 대선은 대중의 분노를 무마하지 못했다. 알제리 항쟁이 더 강력하게 지속돼 독재 정권을 퇴진시키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

알제리 총파업: 퇴진한 독재 정권이 대선 조작으로 복귀하려는 시도에 맞서다

알제리에서 12월 12일로 예정된 대선에 항의해 파업과 시위가 분출했다. 대중 항쟁으로 퇴진한 독재자 부테플리카 일당이 다시 대선을 조작해 집권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8일부터 시작된 4일간의 총파업으로 티지우주·베자이아·부이라 등 수도 알제 인근의 도시들이 멈췄다.

이번 투쟁은 2월부터 시작된 항쟁의 최신 물결이다. 당시 20년간 장기 집권 중이던 대통령 압델 라지즈 부테플리카가 5선 연임을 시도하자 대중 항쟁이 분출했다. 알제리 공휴일인 매주 금요일마다 거대한 항쟁이 이어진 끝에 4월 부테플리카가 퇴진했다.

그러나 부테플리카 퇴진 후 알제리 지배자들은 부테플리카의 동생, 전 정권 총리 2명(12월 10일에 각각 15년형·12년형을 선고받았다) 등 인기 없는 몇몇 인물을 내치는 정도에 그치려 했다.

시위대는 만족하지 않았고 금요일 시위는 계속됐다. 시위가 멈추지 않자 봄·여름에는 알제리 전역에 휴교령이 내려져 모든 대학이 문을 닫기도 했다.

대선은 애초 예정됐던 4월에서 12월로 미뤄졌다.

그러나 이번 12월 대선도 알제리인들을 분개하게 했다. 선거에 총 23명이 후보 등록을 신청했지만 오직 5명만 후보로 등록됐고, 그들은 부테플리카 정부 때의 총리 2명과 문화부 장관, 관광부 장관, 여당 인사였기 때문이다. 야권·독립 후보들은 모두 등록이 거부됐다. 과거 정권 인사들이 대선을 조작해 다시 집권할 것이라는 시위대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부테플리카 퇴진 이후 실세로 떠오른 아흐메드 가이드 살라 알제리 육군참모총장은 선거 반대가 “조국에 반대하는 음모”라고 비난하며 투표 참가를 독려한다.

이에 항의해 시위대는 “투표를 거부하자!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고 외친다. 

12월 6일 대규모 시위에 참가한 교사 파티하 벤다마네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는 부테플리카 정권 인사들을 재활용하는 것만 도울 뿐이다. 이런 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알제리 경제를 파괴한 똑같은 정책을 이름만 바꿔 되풀이할 것이다.” 

이날 시위는 11월 1일 이후 최대 규모였다. 

알제리 항쟁의 배경에는 빈곤, 불평등, 경제 위기가 있다. 알제리인 4명 중 1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으며, 청년실업률이 공식 통계로만 28퍼센트에 달한다. 지배계급의 부패에 대한 분노도 광범하다.

알제리 지배계급은 기만적인 대선으로 대중의 분노를 무마하려 한다. 그러나 부테플리카 퇴진 이후 지배계급은 불안정한 처지다.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대중 투쟁이 성장해 승리하기를 바란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

난민 친구가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것을 도우며

이집트 출신 난민 친구가 몇 주 전 연락을 해 왔다.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 두 달째 임금을 받지 못했는데, 임금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내게 물어 왔다.

아는 노무사에게 연락해 체불 임금을 받아내는 방법을 물어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가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가 직접 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친구를 도와 체불 임금을 받아내는 과정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 과정의 첫 단계로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노동부에서 임금 체불 확인서를 받아야만 민사소송 과정을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대리해 진정을 넣은 후,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근로감독관의 연락을 받았다.

통역을 위해 친구를 따라갔다. 근로감독관은 통역이 되는 사람이 같이 간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아랍어를 통역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영어를 할 줄 아는데도 반가워하는 것을 보면서, 난민에 대한 언어 지원이 정말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친구도 언어 지원이 정말 절실하다고 내게 말하곤 했다. 난민 신청 후 6개월간 머무를 수 있는 난민 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다 난민들은 대부분 난민 센터에조차 들어가지 못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내 친구조차 체불 임금을 받아내는 과정을 거치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영어도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 난민은 얼마나 많이 속으로 부당함을 삼켜야 할까?

친구는 근로감독관에게 자기 사정을 잘 설명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친구는 자신의 임금만으로 아내와 어린 자녀를 먹여살려야 하는데, 아내는 계속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임금을 두 달치나 체불당하다 보니 아이를 더 이상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 아내가 계속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친구의 통장을 보니, 1인가구가 한 달 정도 생활할 수 있는 생활비 정도의 돈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집트에 있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미어졌다. 친구는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이집트를 떠나 오다 보니, 자신과 연락한다는 게 들키면 부모님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서 돈을 곧장 받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난민을 환영한다

“돈 벌러 온 가짜 난민”이라는 난민 혐오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돈을 벌러 한국에 들어왔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이 아니지만, ‘진짜’ 난민으로서 한국에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두 눈으로 좀 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당신 같으면 이렇게 고생하며 한국에 살고 싶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난민은 아예 받지도 않겠다고 작정한 듯한 정책들을 펴며, 7월 1일부터는 난민 신청자들에게 건설업 취업을 제한했다(인도적 체류자에게도 제한했다가 항의 행동에 한발 물러섰다). 난민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조차 빼앗아 가는 것임은 물론, ‘난민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편견을 부추겨 난민 혐오를 강화하는 짓이다. 언어 지원도 안 하고, 난민 인정도 안 해주고, 취업까지 제한하면 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근로감독관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내게 여러 번 고맙다고, 당신은 한국에서 만난 또 다른 가족이라고 말했다. 나는 “You’re welcome”(천만에요)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welcome은 ‘환영한다’는 뜻이다. 당신을 환영한다. 당신은 환영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모든 난민이 환영받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했으면 좋겠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독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