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법, 여전히 노동자・철거민은 DNA 채취 대상

얼마 전 여자친구가 자신이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 하나를 보여줬다. 헌재가 DNA법을 위헌 판결을 내려서 이춘재 같은 범죄자 DNA 채취를 못하게 됐다는 글이었다. ‘디엔에이신원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이 헌법불합치 결정(2016헌마344)됐는데, DNA법을 2019년 내로 개정해야 함에도 개정하지 않았으니 ‘못하게 됐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이춘재 같은 범죄자를 잡길 바라는 마음은 공감하지만, 우려스러운 글이었다. 여자친구가 의견을 묻길래, 법률 체계에 관해서 자세히는 모르니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수형자가 아닌 피의자에게까지 DNA 채취하는 것은 문제다. 둘째, DNA법은 흉악범죄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둘째를 얘기하며 기아자동차의 김우용 활동가가 DNA 채취 대상이 됐었다는 기사를 보여줬다.

지난 1월 9일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강원 원주을)이 대표발의해 DNA법이 일부 개정된 모양이다. 딱 위헌요소로 결정난 제8조만 개정한 듯하다(그리고 제8조의2 신설). “채취대상자는 채취가 이루어진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불복할 수 있으며, 불복이 받아들여진 경우 정보담당자는 이미 채취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삭제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채취대상자의 불복절차만 마련한 것이다.

즉, 용산참사, 금속노조 KEC지회 점거투쟁 등 노동자, 철거민의 투쟁은 여전히 DNA 채취 대상이다. (애초에 DNA법 헌법소원을 낸 사람들도 KEC지회 노동자들이었다.)

한 가지 사실을 더 짚고 넘어가야겠다. DNA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수형인 중 실형확정자는 27%에 불과하다. 나머지 73%는? 벌금, 집행유예, 조건부선고유예 등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래도 DNA법이 이춘재 같은 ‘흉악범죄자’를 잡는 법일까?

이슬람 여성이 히잡 위에 샴푸칠을 하는 광고, 진짜일까?

여자친구가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사진이 올라왔다며 보여줬다. “이슬람 문화권의 흔한 샴푸광고.jpg”라는 제목이 붙은 게시글이었는데, 히잡을 쓰고 샴푸 거품을 내고 있는 여성 사진이었다.

게시글이 지금은 지워져서 댓글 반응을 직접 읽어볼 수가 없어서 아쉬운데, 다른 커뮤니티들에 올라온 같은 종류의 게시글을 보면 “답 없는 종교”라는둥 하는 반응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이 광고는 샴푸 광고가 아니라 헤드스카프 광고다. 90년대식 샴푸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히잡이 법적 강제인 지역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건 차치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나? 편견 때문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알제리 대선: 독재 세력 복귀를 위한 부정선거를 거부하는 시위와 파업이 이어지다

12월 12일 알제리에서는 대중 항쟁으로 퇴진한 독재 정권이 권좌에 복귀하려고 조작한 대선이 강행됐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거부하고 시위에 나섰다. 이날 시위는 12월 8일부터 시작된 4일간의 총파업과 거리 시위에 뒤이은 것이었다.

“장성들을 쓰레기통에!”라는 구호가 거리를 휩쓸었다.

시위는 선거일을 넘겨 공식 휴일인 금요일에도 이어졌다(이번 금요 시위는 2월에 알제리 항쟁이 시작된 이래 43주째 이어진 금요 시위였다). 경찰이 시위대를 위협했지만 대중은 굴하지 않고 시위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 알제 도심을 행진했고, 지방 도시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알제리 제2의 도시 오랑에서는 경찰이 평화 시위를 공격해 400여 명을 체포했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공식 집계로도 알제리 대선 역사상 가장 낮은 39.93퍼센트를 기록했다. 중도 야당 ‘문화와 민주주의 연합(RCP)’은 실제 투표율이 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독립 언론들도 실제 투표율을 10퍼센트 내외라고 추산했다. 4일간 총파업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수도 인근 도시 티지우주와 베자이아에서는 공식 집계로도 투표율이 1퍼센트 미만이었다. SNS에는 투표 용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인증’ 동영상이 속속 업로드됐다.

정부는 이번 선거에서 독재 정권 시절 총리였던 압델 마드지드 테분이 58.15퍼센트를 득표해 대통령으로 당선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많은 알제리인들은 투표 결과가 사기라며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시위 참가자 오마 부레가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걸 선거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건 [군부의] 내정(內定)일 뿐입니다.” 알제리 독립 전쟁 참전 용사 출신이자 시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난 6월 체포된 자신의 삼촌이 운동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고 부레가는 전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테플리카를 끌어내렸고, 이 체제의 모든 인간들을 끌어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위 참가자 리아드 메케르시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알제리인들은 테분과 군부에 맞서 투쟁을 이어 갈 듯하다.

테분은 “시위대에 손을 내밀어 대화를 청할 것”이라며 시위대를 다시 기만하려 하지만, 테분의 앞에는 정당성 위기뿐 아니라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항쟁의 배경이 된 근본적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알제리인 넷 중 한 명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이 공식 통계로만 28퍼센트에 이른다. 알제리 외화 수입의 95퍼센트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는데, 유가는 2014년 급락 이래 계속 낮은 상황이다. 그래서 알제리 정부는 이미 2020년 예산안에서 공공 지출 예산을 9퍼센트 삭감했다.

기만적인 대선은 대중의 분노를 무마하지 못했다. 알제리 항쟁이 더 강력하게 지속돼 독재 정권을 퇴진시키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

알제리 총파업: 퇴진한 독재 정권이 대선 조작으로 복귀하려는 시도에 맞서다

알제리에서 12월 12일로 예정된 대선에 항의해 파업과 시위가 분출했다. 대중 항쟁으로 퇴진한 독재자 부테플리카 일당이 다시 대선을 조작해 집권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8일부터 시작된 4일간의 총파업으로 티지우주·베자이아·부이라 등 수도 알제 인근의 도시들이 멈췄다.

이번 투쟁은 2월부터 시작된 항쟁의 최신 물결이다. 당시 20년간 장기 집권 중이던 대통령 압델 라지즈 부테플리카가 5선 연임을 시도하자 대중 항쟁이 분출했다. 알제리 공휴일인 매주 금요일마다 거대한 항쟁이 이어진 끝에 4월 부테플리카가 퇴진했다.

그러나 부테플리카 퇴진 후 알제리 지배자들은 부테플리카의 동생, 전 정권 총리 2명(12월 10일에 각각 15년형·12년형을 선고받았다) 등 인기 없는 몇몇 인물을 내치는 정도에 그치려 했다.

시위대는 만족하지 않았고 금요일 시위는 계속됐다. 시위가 멈추지 않자 봄·여름에는 알제리 전역에 휴교령이 내려져 모든 대학이 문을 닫기도 했다.

대선은 애초 예정됐던 4월에서 12월로 미뤄졌다.

그러나 이번 12월 대선도 알제리인들을 분개하게 했다. 선거에 총 23명이 후보 등록을 신청했지만 오직 5명만 후보로 등록됐고, 그들은 부테플리카 정부 때의 총리 2명과 문화부 장관, 관광부 장관, 여당 인사였기 때문이다. 야권·독립 후보들은 모두 등록이 거부됐다. 과거 정권 인사들이 대선을 조작해 다시 집권할 것이라는 시위대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부테플리카 퇴진 이후 실세로 떠오른 아흐메드 가이드 살라 알제리 육군참모총장은 선거 반대가 “조국에 반대하는 음모”라고 비난하며 투표 참가를 독려한다.

이에 항의해 시위대는 “투표를 거부하자!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고 외친다. 

12월 6일 대규모 시위에 참가한 교사 파티하 벤다마네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는 부테플리카 정권 인사들을 재활용하는 것만 도울 뿐이다. 이런 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알제리 경제를 파괴한 똑같은 정책을 이름만 바꿔 되풀이할 것이다.” 

이날 시위는 11월 1일 이후 최대 규모였다. 

알제리 항쟁의 배경에는 빈곤, 불평등, 경제 위기가 있다. 알제리인 4명 중 1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으며, 청년실업률이 공식 통계로만 28퍼센트에 달한다. 지배계급의 부패에 대한 분노도 광범하다.

알제리 지배계급은 기만적인 대선으로 대중의 분노를 무마하려 한다. 그러나 부테플리카 퇴진 이후 지배계급은 불안정한 처지다.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대중 투쟁이 성장해 승리하기를 바란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

난민 친구가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것을 도우며

이집트 출신 난민 친구가 몇 주 전 연락을 해 왔다.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 두 달째 임금을 받지 못했는데, 임금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내게 물어 왔다.

아는 노무사에게 연락해 체불 임금을 받아내는 방법을 물어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가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가 직접 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친구를 도와 체불 임금을 받아내는 과정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 과정의 첫 단계로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노동부에서 임금 체불 확인서를 받아야만 민사소송 과정을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대리해 진정을 넣은 후,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근로감독관의 연락을 받았다.

통역을 위해 친구를 따라갔다. 근로감독관은 통역이 되는 사람이 같이 간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아랍어를 통역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영어를 할 줄 아는데도 반가워하는 것을 보면서, 난민에 대한 언어 지원이 정말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친구도 언어 지원이 정말 절실하다고 내게 말하곤 했다. 난민 신청 후 6개월간 머무를 수 있는 난민 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다 난민들은 대부분 난민 센터에조차 들어가지 못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내 친구조차 체불 임금을 받아내는 과정을 거치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영어도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 난민은 얼마나 많이 속으로 부당함을 삼켜야 할까?

친구는 근로감독관에게 자기 사정을 잘 설명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친구는 자신의 임금만으로 아내와 어린 자녀를 먹여살려야 하는데, 아내는 계속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임금을 두 달치나 체불당하다 보니 아이를 더 이상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 아내가 계속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친구의 통장을 보니, 1인가구가 한 달 정도 생활할 수 있는 생활비 정도의 돈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집트에 있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미어졌다. 친구는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이집트를 떠나 오다 보니, 자신과 연락한다는 게 들키면 부모님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서 돈을 곧장 받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난민을 환영한다

“돈 벌러 온 가짜 난민”이라는 난민 혐오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돈을 벌러 한국에 들어왔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이 아니지만, ‘진짜’ 난민으로서 한국에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두 눈으로 좀 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당신 같으면 이렇게 고생하며 한국에 살고 싶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난민은 아예 받지도 않겠다고 작정한 듯한 정책들을 펴며, 7월 1일부터는 난민 신청자들에게 건설업 취업을 제한했다(인도적 체류자에게도 제한했다가 항의 행동에 한발 물러섰다). 난민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조차 빼앗아 가는 것임은 물론, ‘난민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편견을 부추겨 난민 혐오를 강화하는 짓이다. 언어 지원도 안 하고, 난민 인정도 안 해주고, 취업까지 제한하면 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근로감독관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내게 여러 번 고맙다고, 당신은 한국에서 만난 또 다른 가족이라고 말했다. 나는 “You’re welcome”(천만에요)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welcome은 ‘환영한다’는 뜻이다. 당신을 환영한다. 당신은 환영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모든 난민이 환영받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했으면 좋겠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독자편지.

배우 정우성이 말하는 난민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

배우 정우성이 책을 썼다. 자신이 직접 만난 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정우성은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로 활동하고서 2015년 6월부터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배우인 그가 공개적으로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면서 여러 비난으로부터 난민들을 방어하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난 난민들의 이야기를 더욱 널리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이 책은 네팔, 남수단, 레바논, 이라크, 방글라데시 등 저자가 방문했던 난민 캠프에서의 경험을 주로 다룬다. 난민 캠프의 열악한 환경, 전쟁과 박해를 피해 난민이 된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집 앞 거리에서 아버지가 총탄에 쓰러졌지만 위험해서 이틀 동안 창 너머로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숨이 턱 막혔다. 어서 빨리 평화가 찾아와 난민들이 그리운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책은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들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 있었던 논란도 다룬다.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하는 배우로서 당시 비난을 많이 받았을 텐데도, 정우성은 평소 난민 문제가 체감하기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그는 “잘못된 정보와 엇나간 감정을 거두고 차분하게 눈을 맞추면서 대화해 나가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는 여러 오해를 정리해 반박한다.

무엇보다 이 논란이 생겨난 원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 깊었다. 수많은 댓글을 다 읽어보면서 저자는 사람들이 난민 자체가 아니라 자기 삶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소득과 기본 생활을 제대로 돌봐 왔는지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이 20대에서 높았다는 조사 결과를 ‘20대 보수화론’의 근거로 삼는 주장에 반대한다. 오히려 “등록금, 취업, 결혼 뭐 하나 해결되는 것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삶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원인이라고 옳게 지적한다.

우리 자신의 문제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난민을 도와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난민 지원이 무슨 이득이 되느냐는 질문에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난민 지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슴 뭉클한 말이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노동자 계급의 잠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를 날려버린 퇴진 운동도 그 이전 철도 파업, 민중총궐기 등 노동자들의 투쟁이 누적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퇴진 촛불 시위에 노동계급 수십만 명이 참여했다. 노동계급은 세상을 돌아가게 만들고 있기에, 세상을 바꿀 힘 또한 있다. 

그렇기에 지배계급은 언제나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 한다. 국경 단속을 통한 이주민 차별, 난민 배척도 그중 하나다. 지배계급은 필요할 때는 난민·이주민들을 불러들이면서, 동시에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경제 위기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희생양으로 난민·이주민들을 이용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아일랜드인에게 적개심을 보이는 잉글랜드 노동자들을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러한 적대 관계야말로 영국 노동계급이 자신의 조직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기력한 비밀이고 자본가 계급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자본가 계급은 이 사실을 아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동계급에게는 인도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난민을 도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난민·이주민과 연대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자’는 황교안 같은 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이 낮아지면 내국인 노동자들도 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고, 바닥을 향한 경쟁에 내몰릴 것이다. 이처럼 난민을 배척하는 것은 잠깐의 심리적 위안을 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고 ‘박탈감’도 커질 것이다. 난민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단결할 필요성을 아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책 전체가 왜 난민과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저자가 말한 “우리 모두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보다 나은 세상”을 상상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상을 같이하게 되길 바란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서평 기사.

히잡을 쓰는 무슬림 여성과 그 가족은 보수적일까?

내게는 무슬림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그중 한 명은 알제리인 여성인데, 이 친구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공유하고 싶다.

알제리에서 히잡은 강제가 아니며, 실제로 여성의 3~4할 정도는 히잡을 쓰지 않는다. 알제리 사진을 보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친구는 히잡을 꼭 쓰고 다니며, 해수욕장에 갈 때는 부르키니를 입는다. 무슬림의 의무 중 하나인 하루 다섯 번의 기도도 절대 빼먹지 않는 독실한 신자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보수적 가치관을 지닌 것은 전혀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친구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대학 공부가 마무리돼가면서 몇 달 전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그 후 알제리에서 대중 항쟁이 일어나 대학이 무기한 휴교 중이기에 현재는 일만 하고 있다. 제약 관련 연구하는 일인데, 친구는 그 일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른 도시로 인사발령을 받게 됐다. 가족들이 전부 이사를 해야 했다. 친구는 가족들과 떨어지기 싫어서 일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친구에게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건 중요한 일이라며 말렸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 혼자서만 그 도시에 머물러서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걸 듣고는 정말 너 혼자 사는 것이냐고 여러 번 물어봤다. 한국에서도 젊은 여성 혼자서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것을 용납 못 하는 가정이 종종 있는데, 이슬람권에서 그게 가능할까 하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다행히도 내 편견 섞인 질문을 이해 못 한 듯했고, 앞으로는 혼자 살게 될 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최근에는 더 놀라운 일도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친구에게 결혼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 친구의 아들, 그러니까 ‘엄친아’와 결혼하라는 것이다. 그 ‘엄친아’는 독일에 사는 엔지니어라고 했고, 당연히 돈도 많이 버는 듯했다. 그래서 친구 어머니는 친구가 좋은 남자와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데, 친구는 결혼하기 싫다고 했다.

사랑 없는 중매 결혼은 싫은가보다 하고 위로(?)를 했더니, 그게 아니라 ‘엄친아’의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여성이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꼭 일을 해야겠고, 따라서 그런 가치관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말은 이후에 있었다. 친구가 자신은 조만간 튀니지로 친구들과 여행을 갈 건데, 결혼을 안 하겠다고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터라 엄마가 여행을 반대하며 붙잡고 늘어질 테니, 일단 약혼을 해놓겠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약혼하면 무를 수가 없는데 어쩌겠다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은 이미 다른 약혼을 한 번 무른 적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약혼을 두 번씩이나 무르고 나면 엄마도 자신의 가치관을 알고 포기할 것이라며 웃었다. 

그리고서 덧붙인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뭐든지 할 수 있어(I can do anything I want).” 페미니스트들의 ‘소녀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라는 구호가 떠오르는 말이었다.

그리고서 친구는 아버지는 이 다툼에서 자기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길 바라시며 응원해주고 계시니, 어머니 뜻대로 만은 못 할 거라는 것이다.

친구의 자취와 결혼 두 사례를 보면서 내 편견이 많이 깨졌다. 이슬람에 여성 차별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엄친아’처럼 여성이 집 안에만 있길 바라는 무슬림 남성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건 무슬림 남성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친구의 아버지처럼 여성의 선택을 응원하는 무슬림 남성 또한 있다.

무엇보다 히잡을 쓴 여성이라고 해서 전통을 보수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친구의 사례를 들으면서 최일붕 씨가 프랑스 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쓴 글이 생각났다.

“필자가 1994년 말쯤 읽은 국내 일간신문은 프랑스 〈리베라시옹〉 신문의 기사를 인용했는데, 그 기사는 프랑스 일부 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것이었다.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라고 해서 전통을 보수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오히려 히잡 착용을 하지 않는 여성보다 진보적인 경우도 많았다. 즉, 부모가 결혼 상대를 정해 주는 것을 거부한다든지, 가정 바깥에서 직장을 구한다든지, 권리의 불평등을 성토한다든지 등의 태도를 보였다.”

https://wspaper.org/article/17336

친구의 사례는 정말이지 이를 잘 보여 주는 경우가 아닌가! 히잡을 늘 착용하는 여성이지만, 여러 면에서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다.

이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이슬람 혐오로부터 무슬림들을 방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겠지만, 나처럼 구체적인 문제에서는 체제가 강요하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사례가 편견을 깨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노동자 연대〉에 실린 독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