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꾼 꿈 이야기

꿈 속에서 나는 그와 함께 걸었다.

수많은 하얀색 요트들을 지나, 풀밭으로 걸어갔다. 풀밭 위에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그와 나는 함께 의자에 앉았다. 그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식상할대로 식상한 이야기. 어제 읽었던 책, 오늘 같이 본 영화. 누군가 차를 가져왔다. 그와 나는 함께 차를 마셨다. 풀밭 위의 의자에 앉아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나는 다시 걸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의 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려 했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와 함께 혼자 서 있었다. 그는 존재하지 않았고, 수없이 많이 존재했다. 나는 혼란을 느꼈다. 나는 화가 났다. 너무나 화가 나서 나는 내 심장을 칼로 찔렀다.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시계는 재빨리 돌아가고 있었지만, 너무나 느렸다.


가끔씩 이런 글을 배설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행복하기에 불행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3개월 정도가 지났고, 수능을 친 것은 이미 까마득하게 지난 일로 느껴지는 5월. 나는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학교 안에서 정말이지 괴로운 나날을 보냈던 내가, 다시 그 괴로운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니.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학교의 그 모든 억압. 아침마다 머리를 내일까지 잘라오라며 누군가의 구레나룻을 잡아당기는 ‘학주’의 모습을 보는 것, 수업시간에 졸았다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겠다며 누군가의 손바닥을 때리는 교사의 모습을 보는 것, 2학년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면서 야자시간 중 1학년 교실에 들어와 고함을 지르고 가방 속 물건을 샅샅이 뒤지며 ‘소지품 검사’를 하는 선도부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 따위의 억압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거나 그립다거나 뭐 그런 이유일 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 수많은 억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나는 억압에서 벗어난 대가로 일탈의 기쁨마저 빼앗겨 버렸다. 지루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10분 동안 사회과학이라거나 인문학 따위의 ‘쓸데없는’ 책을 꺼내서 조용히 읽는 기쁨, 점심시간에 학교 안을 거닐며 따뜻한 햇볕을 쬐는 기쁨, 야자를 ‘째고’ 학교 밖으로 나와 느끼던 그 상쾌한 밤 공기의 기쁨, 그 모든 기쁨을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좀 더 일탈했어야 했다. 조금 더 야자를 많이 째고, 조금 더 햇볕을 많이 쬐고, 조금 더 많이 쓸데없는 책들을 읽었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게 지금은 너무나 후회스럽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곳 대학에도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고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행복이 나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행복하기에 불행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