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1318

지난 일요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든 ‘시선’ 시리즈 중 네 번째, <시선 1318>을 봤다. 이전의 시선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옴니버스식 영화이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시선’은 ‘청소년인권’이 주제이다. 솔직히 말해서, 전반적으로 좀 실망스러웠던 영화였다. 이전의 ‘시선’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말이다.

춤을 추고 있는, 교복을 입은 30여명의 여자 중학생들

첫 번째 영화, <진주는 공부중>은 그 중 최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들게 만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중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시험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전교 1등’과 꿈이 있지만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늘 무시당하는 ‘전교 꼴등’이 나온다.
이 영화는 학교 내 경쟁과 같은 여러 문제들을 너무나 단순화시켜 버린다. 전교 1등의 문제는, 시험 한 번 빠지고 (전교 꼴등과 답안지 이름을 바꿔쓰는) 조그마한 일탈을 한 뒤 ‘늘상 전교 1등’이 아닌 ‘가끔은 2, 3등도 하는 1등’이 되는 것으로 쉽사리 해결되어 버린다. 전교 꼴등의 문제도, ‘성적이 오르는’ 것으로 쉽사리 해결되어 버린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그것이 ‘해결’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 끝 부분에 나래이션을 통해 “학교가 그리 쉽게 변하겠느냐”고 스스로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영화가 ‘인권 영화’가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흔하디 흔한 ‘청소년 드라마’라고 부를 수는 있을 지언정, 이 영화를 ‘인권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민망하다. 왠만한 ‘청소년 드라마’에서 보여준 문제의식보다 더 떨어지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문제를 ‘심각하게’ ‘무게잡고’ 다루라는 뜻이 아니다. 발랄한 것과 생각이 없는 것은 구분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전교 1등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고, 전교 꼴등이라고 해서 꼭 불행한 것은 아니다”는 식의 이야기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밤 12시까지 학원을 ‘돌리는’ 학부모조차도.

허공을 쳐다보는 여학생과 그 뒤에 손을 주머니에 넣은채 서 있는 남학생. 바닷가에 서 있다.

두 번째 영화, <유 앤 미>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다. 내가 영화를 보는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주제를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정’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역도를 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지만 그것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여학생과, 적응력 부족으로 호주로 유학을 가야 하지만 내켜하지 않는 남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외적 갈등이랄까 하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특정한 ‘인권’을 보여주기에는 유리하지만,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간과하게 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청소년의 미래에 대한 어떠한 결정이, “이거 해!” “싫어!”라는 단순한 갈등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보다 많지 않은가.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나름의 방법으로 뭔가 저항을 해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해 보려 하지만, 결국 그냥 무심하게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갈등을 조금 더 드러낸다 해서 이 영화의 매력 자체가 반감된다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약간만, 아주 약간만 더 드러냈으면 좋았을텐데. 물론 전계수 감독의 말대로, 조절을 잘하지 못할 경우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릴 위험은 있지만.

아기 침대 옆에서 아기를 보고 있는 여학생 3명

세 번째 영화, <릴레이>는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다. 비혼모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데, 줄거리는 꽤나 흥미롭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교과서적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많지만, 과연 그 말들이, 관객들이 모르던 것일까? 다들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말을 전달하는 것에만 주력하는 듯 보인다. “미혼모는 왜 학교를 그만둬야 하죠?” “왜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는 없는 거죠?” 등등. 결국 다들 ‘이해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야기만 실컷 하다가, 뻔한 결말로 끝나버리고 만다. 현실이 그렇게 경쾌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눈을 찡그리며 웃고 있는, 빨간 옷의 청소년 여성. 그 뒤에 교복을 입고 있는 두 명의 여학생이 등을 돌리고 서 있다.

네 번째 영화,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다섯 편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였다. 앞의 세 편을 보면서, “설마 윤성호 감독마저 이런 식으로 만들진 않았겠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중산층 청소년이 대부분인 중학교를 나왔다. ‘중산층 청소년’의 실제를 담아내고자 한 이 영화가, 정말 현실 그대로이다, 라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테고, 현실의 대부분을 ‘날 것 그대로’ 담아냈다는 느낌. 영화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며, 정말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각본을 청소년들이 직접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
개인적으로, 보면서 김용민 씨가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10대, 너희에게도 희망이 없다”고 막말하려나. (웃음) 윤성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을 이 “영화에서 은근히 야유”했다가 “얼마 뒤 그들이 가장 먼저 촛불을 드는 것을 보고 ‘이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하던데, 촛불 시위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후에 이 영화를 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야유’가 있다면, 그것은 비단 청소년만이 아니라, “현재를 유예하는, 합리성을 도외시하는, 검증되지 않은 경제의 신화만 좇는모든 이들에 대한 것일게다.
이 영화는 그것을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청소년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대안의 방향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영화의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담이지만, “이명박이 이길 것 같으니 이기는 쪽에 찍으면 기분좋지 않겠냐”며 “이명박을 찍으라”고 엄마에게 말하는 청소년이 극 중에 나오는데,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청소년을, 대선 당시 정말로 봤기 때문에.

정면을 응시하는 짧은 머리의 여학생

다섯 번째 영화, <달리는 차은>도 참 좋았다. 주제 자체는 그리 새로울게 없지만, 그저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마음 속에 깊이 닿았던 영화. 청소년인권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권을 잘 섞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인권은 다 연결되어 있을 것인데…. 요즘 들어 인권에 관한 생각이 좀 정형화(?) 되었던 면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참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티내지 않고도 그렇게 아름답게 찍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텐데. 초반부부터 결말까지 정말 잘 짜여진 영화이면서도,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덧쓰기.
그나저나, 구글에서 시선1318을 검색해봤는데 왜 이리 박보영 씨 이름이 많이 나오는 거야. 어떤 블로그 글은 대놓고 ‘박보영이 나오는 시선1318’ 같은 식으로 제목을 정하질 않나. 박보영 씨 이름을 제목에 집어넣어서 박보영 씨 이름으로 블로그 방문자를 늘려보려하는건 이해하지만, 그런 식으로 박보영 씨 이름을 제목에 집어 넣으면서까지 박보영 씨 덕을 보려 하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블로그 내용도 박보영 박보영 박보영… 아무리 <과속스캔들>이 아니라 <릴레이>가 박보영 씨가 데뷔한 영화라지만. 나 같으면 그런 식으로 박보영 박보영 하면서 박보영 씨 이름으로 블로그 방문자 수나 늘리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선 1318”의 14개의 생각

  1. 확실히 전작들보다 아쉽기는 했죠. 그래도 청소년 인권을 다루는 것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만한 물건이 나왔다는 것에서 약간의 위안을,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좋았을 것만 같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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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긴 해요. 다음 번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인권 영화가 나왔으면! 국가인권위 예산이 줄어서 당분간은 ‘시선’이 더 나오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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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도 이거 소개하는 것만 봤는데, 좀 아쉬워 보이더라구
    그래도 역시 이런 주제가 다뤄졌다는 것에서 위안?

    와 박보영 언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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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흠 입시경쟁 문제를 다루는 걸로는 차라리 별별이야기의 ‘사람이 되어라’가 좋았지?

    제작진들이 청소년인권 문제에 대해서 머피인을 읽어보고 영화를 만들었으면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았을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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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 그거 좋았지.

      청소년들이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했더라면 좀 더 괜찮은 영화들이 나왔을 것 같은데. 아님 제작진들이 머피인을 읽어보던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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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권영화가 아닌 보영영화로 주목받게 된 게 참 아쉽고, 센스만점의 윤성호가 참여했다고 해서 기대 쩜 했는데 흠…. 다운받아 봐야지 ㅡ.ㅡ;
    그나저나 앞으로 인권위가 더이상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구료. 다음에 또 청소년인권영화가 제작된다면 경기도 교육위원들하고 교육감, 싸대기교사의 특별출연이 필수일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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