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끝: 인권의 보편성 논쟁

논쟁을 계속하려 했더니, 논쟁상대자가 덧글을 달아주질 않네요. 그가 제 블로그 주소를 알아내서 들락날락하는 것이 별로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그에게 논쟁을 계속하자고 요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논쟁을 이쯤에서 마치게 될 것 같네요. 논쟁을 간단하게 정리해두려 합니다. 제가 별로 논리적이지 못한데다가 공부도 부족해 글에 이런저런 문제점이 많을 것 같은데, 지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든 이론체계에는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공리’라고 하죠. 공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론의 전개가 불가능합니다. 인권의 공리는 아마,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것이 되겠죠.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권이론의 전개가 불가능합니다.

논쟁상대자 (닉네임) Yahweh는 이 점을 공격하죠. 인간이 존엄한 존재가 아니므로 인권이론은 모조리 틀려먹었으며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는 크게 두 가지로 그 이유를 듭니다. 첫째로는 인간은 단백질 덩어리와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 둘째로는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사실 둘 다 황당한 지적입니다. 첫 번째 지적에 관해서는 마지막 답변에서 답을 한 바 있죠. 인간은 단백질 덩어리이지만, 단백질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배치’마저 같지는 않다는 것. 그 특별한 ‘배치’가 인간을 만들어내고, 그러므로 ‘존엄하지 않은 단백질 덩어리’와 ‘존엄한 인간’은 구분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인권’뿐만 아니라 ‘동물권’, ‘식물권’, ‘존재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발전시키기가 아직까진 쉽지 않네요.

두 번째 지적의 경우, 이 글을 시작하며 이야기한 바 있죠. 애초에 증명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을, 증명불가능하니까 안 된다고 주장을 하니…. 이런 식으로 들이대면 무너지지 않을 이론체계는 없습니다. ‘자본주의’를 예로 들어보죠. 자본주의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이기적 개인’을 가정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떻게 증명합니까? 게다가, 인간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동물이라는 것도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는걸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이론 상으로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민족주의’ 또한 마찬가지이겠죠. Yahweh는 덧글 상에서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되돌려주는 것 뿐이죠. 이론체계에 증명불가능한 공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권은 무너뜨릴 수 있을지언정 다른 어떠한 이론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도대체 그가 말하는 “민족주의를 해체해 냈다고 득의양양 깝쳐대는 속칭 ‘좌파 지식인’들”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한심한 주장을 하는 지식인은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그 ‘지식인 리스트’에 누가 있는지 저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저는 그 지식인들의 대변인이 아니고, 좌파도 아닌걸요.

덧붙임.
1. 인권이 보편적이라는 것(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것)이 앞뒤 생각않고 ‘인권문제’에 달려들어도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참을 수 없는 어떤 ‘인권의 보편성’의 가벼움은 북한인권단체들의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죠. 자본주의를 다시 예로 들자면, 인간이 이기적 존재임을 공리로 삼는다고 해서, 어떠한 사회의 여러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특정한’ 형태를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론은 보편적이지만, 그 이론의 적용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2. 사실 이 논쟁은 몇 달 전에 이미 끝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새로운 고민에서 니체의 말을 바꿔 “무엇이 보편적인가?”가 아닌, “왜 보편성에 대한 욕망이 생겨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이미 (오프라인 상에서 Yahweh에게) 제가 적절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인권은 보편적인가?”를 여전히 계속 고민하고 있었기는 합니다. 인권, 보편성과 끝없는 투쟁에서 이야기한 바처럼, 인권의 보편성(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를 논증할 수 없다면 구체적 권리들을 말하는 것은 결국 ‘생떼’와 구분할 수 없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죠.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공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생떼’가 되어버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3. 사실 이런 짓 무의미합니다. =_= 이럴 시간에 인권운동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고민하는게 백 번 낫죠. 이런 논쟁이 인권이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인권의 보편성’에 관한 이보다 훨씬 생산적인 논쟁이 역사상 많이 있었죠. (궁금하시다면 ‘인권의 문법’이라는 책을 보시길.)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로 논쟁에 매달려 여러 바쁜 사람들을 소환(?)한 저를 용서해주시길. ㅠㅠ

정말로 끝: 인권의 보편성 논쟁”의 24개의 생각

  1. 첫번째 지적에 대한 반론은, 인간이 단백질 덩어리와 ‘구별가능하다’는 것일 뿐, 그래서 왜 존엄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네.

    이영도를 인용하면, ‘권리’란 건 ‘양해’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지. 뭐 양해가 아니라 승인이나 허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인간의 존엄성 문제는 자신과 유사한 타자의 관계의 논의가 좀더 정리될 필요가 있는 문제야. ‘권리’가 뭐냐 하는 문제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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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첫번째 반론은…. 사실 글 순서상 두 번째에 넣었어야 하는 내용이네.
      가상대화를 꾸며보자면,

      “인간은 존엄하다는건, 증명불가능한 인권의 공리라고 생각해.”
      “인간은 단백질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럼 단백질 덩어리도 존엄한가?”
      “음, 그건…. 공리가 어쩌구저쩌구(두 번째 반론)”

      Yahweh가 첫 번째로 지적한 문제이다보니, 반론의 순서를 그렇게 해버렸어.

      그런데 ‘자신과 유사한 타자의 관계’란 무슨 말이지? 인간과 유사한 생물과의 관계? 나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대부분의 사람이 참이라고 믿지만 증명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공현은 증명가능하다고 보는지…. 아니면 다른 관점…?

      흠, 그리고 이영도 씨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말이 별로야. 인권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시혜’로 여겨지던 것을, 약자가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하거든. 약자를 자력화(empower : em- + power)시키는 것이 인권이라고 생각해. 물론 이론상 그렇다는 얘기고, 실제에선 행동을 통해 권리를 얻어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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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가 너를 죽일 ‘권리’라거나 ‘복수할 권리’ 같은 게 성립 가능하냐 뭐 그런 이야기일까 예를 들면. 눈마새에선 하늘치 등에 올라갈 권리, 나가를 멸종시킬 권리, 뭐 이런 이야기인데 -_- 강자 약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승인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랄까. 자력화도 결국은 그런 맥락이니까.
    —————————– 자신과 유사한 타자, 라는 건, 나라는 개인과 그 개인과 유사한 타자(즉, 대개는 같은 종인 인간이겠지만, 반드시 인간에만 한정되지는 않지)의 관계라는 거지.
    인간의 존엄성은, 증명은 불가능하지. 욕망은 가능해도. 그리고 보편적으로 욕망한다면, 증명[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욕망 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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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난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당신이 제안하는 토론의 의도는 당신의 자기만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는가? 당신은 그냥 당신이 옳다고 하는 것을 확인받고 싶을 뿐 즉 당신의 지적 자위행위를 내가 도와주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것이다. 지난 몇 개월동안 당신이 답답한 만큼 나도 답답했다. 당신의 주장에 나에게 먹히지 않은 것만큼 나의 주장도 당신에게 먹히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당신은 나를 비난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이런 되먹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 논리로 토론을 멋대로 종결 하는 것을 보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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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간은 단백질 덩어리인데 단백질의 배치는 특수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비인간과 구별된다. 이는 이런 공격을 회피하는데 사용되는 전형적인 논리다.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백질의 체계적 구조로서의 인간의 그 전체적, 유기적 체계속의 물리적 구조를 뛰어넘는,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의 지위를 획득하는 ‘창발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크나큰 모순이 있다. 하나는 소와 돼지 닭 또한 ‘창발성’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들도 ‘단백질의 체계적 배치로서의 창발성’을 가지며 당신의 논리 대로라면 똑같이 존엄하다. 하지만 당신은 세상의 수많고 다양한 특수한 단백질 구조 사이에 인간만이 가장 존엄하다는 당신의 글에서 전혀 논증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으며 이 것은 당신이 인간이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것에 의한 편견에 불과할 뿐 전혀 논리성을 갖지 못한다. 또 당신의 글을 읽다보면 매우 큰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앞 문장에 인간은 다른 존엄하지 않은 단백질과 구분된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소리 쳐 놓고 동물권과 식물권에 대한 미진한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런 논리는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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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또 당신이 나와 토론을 요청하는 글을 보고 나는 매우 큰 회의를 느꼈다. 이는 인권운동가=기독교인 이라는 나의 도식을 더욱 더 강하게 하는데 큰 작용을 하였다. 내가 인권운동가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야 기독교인에게 신의 존재의 !!!!!!!!!!불확실성!!!!!!!!!!을 논증하는 것 만큼이다 어렵구나 라는 걸 세삼 자각하였다고나 할까….. 내가 주장한 것은 인권이라는 것도 하나의 종교적 도그마로서 그 것을 수용하는 이들의 정신에서 기독교와 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논증하였듯 인간이 존엄하면 돼지가 존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소가 존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인권운동가들은 순전히 자신의 인간적 견지에서 ‘모종의 이유’에 의해 발생된 인권이라는 개념을 절대화하고 보편화한다. 그리고 인권에 실체를 묻고 그 것이 과연 절대적인가? 라고 물으면 ‘인권은 수행적으로 규정됩니다’라는 개소리를 지껄인다. 이 문장을 ‘인권은 니 꼴리는대로 규정됩니다’라고 해도 전혀 맥락이 훼손되지 않으며, 이 자체가 인권의 ‘절대, 보편적’ 근거 없음을 방증한다. 나는 인권 그리고 그 기저명제의 ‘절대화, 보편화’를 비판하고 권리의 다극화를 주장해였을 뿐이고 내가 말한 것은 ‘인권의 절대성의 붕괴’일 뿐 ‘인권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다 ‘신의 부재’와 ‘신의 존재 불확실성’의 차이만큼이나… 분명 증명불가능하다고 넘어가야 할 것을 증명불가능하다고 걸고 넘어 질 수는 없다. 그 것은 내가 인권의 보편,절대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 였을 뿐 역으로 생각하면 모든 논리는 증명불가능성한 공리를 가지니 다극하된 권리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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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ㅋㅋㅋㅋ와 이렇게 반박을…
    나같으면 이렇게 말하고 끝냈을거야
    인간이 단백질 덩어리와 다름없다고? 그럼 너는 식약청에서 단백질 실험하듯 찢겨지고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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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당신 말에도 옳은 점이 한가지 있다면 ‘이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정말 이 논쟁은 무의미하다. 내가 이렇게 백날 떠들어 봐야 내 앞에 글쓴 무뇌아가 말하는 ‘하나님 안 믿니? 그럼 지옥에 쳐박힐래?’ 수준의 답변이 나오거나 당신처럼 예의바르(거나 그런 척하는)-ㄴ 인권운동가라도 무시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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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저 예의바름?ㅋㅋ
    무시하지 않아요
    음 단지 인권의 보편성이 -하나님 안 믿냐 지옥에 처박힐래..와 무슨 상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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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인권의 보편성은 관련 없습니다 관련 있는건 당신의 근거없고 감정적인 발언이죠 무엇을 지칭하는지 당신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상스럽고 감정적인 발언을 하고 그 발언은 지칭해서 비판하자 그 발언을 ‘인권의 보편성’이라고 추상화 시키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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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흠,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네요.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야훼의 생각이 이런 것인줄 알았더라면, 굳이 제가 ‘열폭’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부끄럽네요. =_=;;

    나는 인권 그리고 그 기저명제의 ‘절대화, 보편화’를 비판하고 권리의 다극화를 주장해였을 뿐이고 내가 말한 것은 ‘인권의 절대성의 붕괴’일 뿐 ‘인권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다 ‘신의 부재’와 ‘신의 존재 불확실성’의 차이만큼이나… 분명 증명불가능하다고 넘어가야 할 것을 증명불가능하다고 걸고 넘어 질 수는 없다. 그 것은 내가 인권의 보편,절대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 였을 뿐 역으로 생각하면 모든 논리는 증명불가능성한 공리를 가지니 다극하된 권리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인권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은 적 없어요. 제가 반대했던 것은, ‘인권의 절대성의 붕괴’를 ‘인권의 붕괴’와 동일한 것으로 보는 태도였습니다. 윗 글에서 제가 분명히 이야기했었지 않나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이론 상으로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절대성의 붕괴’일 뿐, ‘자본주의의 붕괴’가 아니듯이, ‘인권의 절대성의 붕괴’일 뿐, ‘인권의 붕괴’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제가 ‘열폭’한 이유는? 당신이 모든 사상들을 붕괴시킨 자리 위에 ‘파시즘’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세우려고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_=;;; 그래서 만약 당신의 망치가 ‘인권’ 자체를 붕괴시켰다면, 마찬가지로 ‘파시즘’ 또한 붕괴된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덧글을 보니, 그런 의도는 전혀 없는 것 같네요.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사실 좀 어리둥절합니다. 제가 인권의 절대성 같은 걸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여러 번의 글에서, 저는 ‘인권의 절대성은 무너지지만, 그것이 인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써왔어요. 인권, 보편성과 끝없는 투쟁, 고민이라는 글에 잘 나와 있지 않나요. (인권운동을 하는) 아르님이나 무직인꿈틀이님의 덧글에서도, ‘인권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만….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의 우위에 선다는 것을 논증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인권이 탄생되기 전까지 저항운동,정치이념, 문화 등등이 총합, 논의되면서 생성되고 발전되어 온것이 인권인데, 과연 그것의 중요성과 역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권이라는 개념이 마치 그런것들에 무관하게, 혹은 독립적으로 형성되었다거나, 존재 및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세계인권선언과 사민주의(혹은 복지국가)를 정말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지요)

    제가 야훼님이 이야기해왔던 것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인가요. 제 생각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왠지 허탈해지고, 미안해지네요.

    기독교인에게 신의 존재의 !!!!!!!!!!불확실성!!!!!!!!!!을 논증하는 것 만큼이다 어렵구나 라는 걸 세삼 자각하였다고나 할까…..

    제가 님한테 논증하려 여러 번 시도했던 것 아닌가요…. 솔직히, 어떤 것이 당신의 생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이야기했던 것을 돌이켜 볼 때면,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참 많았어요. 지금 기독교 이야기도 그렇고….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어떨 땐 당신이 파시스트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에요. 오늘 덧글을 보니, ‘어떤 것이 당신의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커지네요.

    언제 한 번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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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아뇨, 당신의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파시스트”입니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리죠, 인권 사상은, 적어도 당신의 인권 사상은 기독교처럼 ‘보편, 절대’를 부정하면 그 것으로 와르르 무너집니다. 당신에게 있어 ‘보편, 절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적어도 내가 말하는 의미의 맥락이 무엇인지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요.(기독교가 신의 존재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존재할 수 있을까요? 목사가 ‘난 예수가 인간인지 신인지도 모르고 그건 니들이 꼴리는 대로 생각해’라고 하면 교회가 유지될까요?) 당신은 제가 사료컨데 내가 말하는 ‘보편,절대’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저의 파시즘 사상은 다극화된 권리의 영역을 기반으로 존재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인권이라는 것은 편견으로 얼룩진 “도그마”의 총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이 것은 당신도 인정한 바이기에 그 것은 결코 “보편, 절대 법칙”으로 성립 불가능합니다. 이는 따라서 저는 저의 ” 권리의 법칙 ” 을 재정립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때 ‘권리’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생각하는 그 권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니까… 저에게 있어 보편과 절대, 흔히 말하는 일반화의 원칙은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저에게는 저의 법칙만이 필요할 뿐 그 것을 일반화 시키는 것 저에게 있어선 ‘헛지랄’ 입니다. 물론 이 것이 보편적 ‘적용’에의 불가능을 말하지 않습니다. ‘보편화’와 ‘보편적 시행,적용’은 전혀 다른 개념이죠….. 또 당신이 오해하는 것을 짚어드리자면, 인권의 보편성은 인권의 심장입니다. 심장을 버리고 인권이 살 수 있을까요? 인권을 하나의 선택가능한 도그마로 인정하고 각자가 권리의 체계를 성립하게 용납하고도 (당신이 말하는)인권이라는 개념이 가능할까요? 깊이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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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두 도그마 체계의 비타협성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맥락이라면 이 논쟁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어야하며, 논의는 이미 종식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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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논의 체계의 전복이란 참 재미있는 일이지만, 뭐랄까 상대방의 논의 노력을 ‘지적 자위’로 매도하는 것은 ‘지적 영웅심’으로 다시 해석해야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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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야훼 //

    당신의 파시즘은 사상적으로 무척 약한 듯 하군요. 스스로 사상을 완성시킬 수는 있었겠지만, 그런 사상이 인민들을 선동하는데 얼마나 유용할지는 의문입니다. 파시즘의 후퇴인건가요? 파시즘이 다시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렇게 돌아온 파시즘이 여전히 강력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죠. 당신이 다시 불러낸 파시즘은 골골거리고 있는 것 같네요. ㅎㅎ

    ‘인권은 보편적이다’와 ‘인권은 보편성을 욕망한다’를 혼동하고 계신듯 합니다. 인권은 분명 보편성과 절대성을 욕망하지만, 그것을 욕망한다고 해서 인권의 속성 자체가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이전 덧글에서 “인권은 니 꼴리는대로 규정됩니다”라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어떤 권리가 인권이 되고, 어떤 권리가 인권이 되지 않는가 문제는 인권담론 속에서 ‘꼴리는대로’ 규정되죠. 물론 거기엔 어느 정도의 논리적 일관성이 있습니다만, 결국 따지고 보면, 그 담론권력이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일 뿐이죠. 정신병리학이 어떤게 정신병이고 어떤게 정신병이 아닌지를 ‘꼴리는대로’ 규정하듯이. 네, ‘일종의 폭력’입니다. 그리고 이 폭력은 법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뒷받침되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권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되길 끝없이 욕망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도그마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겠군요… 받아들이던가.. 걷어차던가 둘 중 하나일 테니 말입니다.

    정확합니다. 담론들 간의 논의는 ‘서로의 담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죠. 다만, 인권담론을 걷어찰 경우 ‘인권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해지겠죠. 권력이 없으면 주체가 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권력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 권력’들’ 중 어떤 권력이냐가 문제일 뿐이죠. ‘보호’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억압’은 감수해야 하는 법. 어떤 억압이냐가 문제일 뿐.

    기독교 얘기를 꺼내셨는데, 기독교와 인권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지금 국가와의 관계’죠.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 인권도 기독교 꼴이 날 수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 꼴이 아니죠. 아예 무너져 버릴 겁니다. 인권이 기독교처럼 행동하고도 무사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전환점이 될 ‘사건'(événement)이 언제 일어날지가 문제이죠. 인권이 특정한 ‘사건’ 이후에 태어났듯이, 중대한 전환점이 될 그 ‘사건’ 이후, 인권은 무너질 겁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파시즘마저 불가능하게 해버리겠죠. 인권의 붕괴은 곧 국가권력의 붕괴을 뜻하니까요.

    당신, 파시스트 맞나요? 당신의 생각은 이제 알겠는데, 당신이 파시스트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파시즘을 다시 불러내기만 하면 그 파시즘이 골골거리던 어쩌던 상관없단 건가요? ㅎㅎ

    그리고, 지적 자위 맞습니다. 파시즘이 인권을 받아들일 수 없듯이, 인권도 파시즘을 받아들일 수가 없죠. 이건 사상의 다원화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건, ‘인권의 절대성의 붕괴’가 ‘인권의 붕괴’로 필연적으로 귀결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권의 절대성이 해체됨으로써, 인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게 가능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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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그만하죠 당신의 저의 의미에서 ‘병신’입니다. 몇개월간 당신과 저의 논쟁에서 건질만한 것은 당신과 저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 뿐, 당신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군요 그토록 말씀드려도 제가 말하는 것의 기본적 맥락조차 파악하지 못하십니다.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으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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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할 말이 떨어지면 욕설부터 하고 보는 분이군요. (웃음)

    그만하던 말던, 알아서 하세요.
    애초에 당신 마음대로 시작되고, 당신 마음대로 떠들었던 논쟁이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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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당신 논리의 주제는 ‘인권은 절대적 보편적이지 않지만 보편, 절대를 욕망한다’이죠. 저는 이 명제는 100%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때까지 골백번도 넘게 정신병자 마냥 되뇌인 말은 그럼 ‘당위적이지 않은 보편, 당위를 욕망하는 일은 다른 행위와 어떤 구별지어지는 당위성을 지니는가?’ 입니다. 요컨데 인권의 절대적 보편 당위를 부정하고 ‘욕망’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대체할 경우 당신이 말하는 인권은, 살인을 한다거나 인종차별을 한다거나 홀로코스트를 한다는 것 등 다른 행위와 아무런 구별이 불가능합니다. 즉, 당신의 논리적 자살선언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치 ‘예수는 삼위일체이다’라는 명제가 비기독교 입장에서 아무런 당위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제가 당신을 ‘병신’이라고 부른 이유는 할말이 없다는 이유보다는 해도 씨알도 안먹힐 상대이기 떄문입니다. 기분 나쁘다면 취소해 드리죠 당신도 골수 기독교인과 대화해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기독교 목사가 ‘하나님이 존재할 아무런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는 그 것을 ‘욕망’합니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욕망-이라는 용어는 인권의 보편절대성이 전재되고 나서야 의미가 있습니다. 인권의 보편절대성이 부정된 상태에서 보편 절대의 욕망이라는 단어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이 걸 1%라도 받아들일지는 참으로 의심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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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저의 주장은 권리 영역은 다극적이라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제 주장의 핵심은 ‘인권’은 권리영역의 하나일 뿐이고 파시즘이라는 권리영역과 비교해서 당위적 수용, 거부의 매커니즘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저는 당신과 저의 권리영역이 구별되며 파시즘이 당위적으로 거부되고 인권이 당위적으로 수용되어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을 논증하려 했을 뿐이죠(벽에다 대고 예기하는 기분이 드는군요.) 한 마디로 ‘내가 인권을 존중하건 침해하건 나의 의지’라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 아무런 당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그 뿐입니다. (이 것은 제 파시즘 사상의 최고 기저에 존재하는 기존 사상의 비판에 대한 방어지계에 불과하죠 더 자세한 예기를 해 드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전개 맥락으로 봐서 여기에는 당신도 동의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하나 재미 있는 점은 당신의 글에서 당신은 이 대화의 무용성을 인권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논거를 들었죠, 이 자체가 당신 사고 구조의 모순을 방증합니다. (절대보편적)인권에게 대한 논쟁에 뛰어들면서 그 자체에 대한 신념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 당신의 맹점을 아주 잘 보여주는 군요 이 것은 ‘인권의 보편성 욕망’이라고 주장하는 당신의 논증의 치명적 오류라고 앞에서 논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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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음, 학교에서 이야기를 좀 나누었지만, 답글 달겠습니다.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드디어 이해하셨군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웃음) ‘논리적 자살선언’ 맞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누구나 인권을 지켜야 할 당위가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말이죠. 그런데 전 그런 말 한 적 없는 것 같습니다만…. 인권을 지켜야 할 절대적 근거 따위는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아실텐데요. 저는 그냥 ‘파시즘’ 또한 마찬가지로 따라야 할 당위가 없다고 이야기했을 뿐이죠.

    물론, ‘따라야 할 당위가 없다’는 것과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건 무척이나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두 번째가 이 이야기이고요. 예를 들자면, 당신이 살인을 저지르고서 “인권을 따라야 할 당위는 없지 않은가. 죽이고 싶으니 죽였을 뿐이다.”라고 말해보아야 소용없다는 것이죠. 당신의 그러한 ‘언표행위’는 철저히 무시되며, 인권담론 내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인권’담론’은 내적 논리의 완결성으로 지탱되는게 아니라, 근대적 국가와 법 체계라는 외부 조건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법으로 보장되지 않은 인권은? 그냥 ‘인권으로 주장되는 권리’일 뿐이죠. 제대로 된 권리인지 아닌지, 누가 확증해줄 수 있을까요. 인권의 역사는, 여러가지 권리들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대개는 근대적 국가에 의해) 보장받을 수 있게 되길 욕망하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음, 오해하실까봐 덧붙이자면, 이것이 반인권적인 국내법을 옹호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국제협약’과 같은 국제법이 우선하기 때문이죠.

    제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권을 무조건 따라야 할 당위는 없다. (‘공리’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말을 전제하죠.) 근데 그건 파시즘도 마찬가지 아닌가?
    2) 인권의 내적 논리의 완결성이 무너진다고해서, ‘현실에 존재하는’ 인권체제가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인권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언표행위’는 인권담론 내에서 무시되어지며, 그것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권담론을 떠받치는 외적 조건이며, 외적조건이 변화할 때 인권담론에도 변화가 생긴다.
    3) 물론, 인권체계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그건 ‘근대적 국가’가 무너지는 것과 동일한 때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파시즘 또한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짓이 무의미하다고 한 말은 ‘저에게’ 그렇다는 말이죠. 오히려 제 입장에 부합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의 ‘언표행위’가 ‘인권담론’ 내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므로, 무시하려 하는 것이죠. (물론 그게 잘하는 짓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인권주의자’가 아닙니다. 제가 아는 것 중에, 저의 소망을 달성하기에 ‘인권’만한 이론이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요즘에는 인권이 다양한 소수자들을 ‘인간’이라는 동일자로 포섭시킴으로써 또 다른 ‘배제’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글에 달린 덧글들에서 제가 쓴 몇몇 용어들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아보시면, 좀 도움이 될 듯합니다. 누가 쓴 용어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영 오독한 것 같아서….ㅠㅠ

    그나저나, 당신의 파시즘은 사전적 정의하고는 꽤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던데 물어보지 못했군요. 당신의 파시즘은 어떤 것입니까?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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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또다른 두통거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절대 사양하죠.. 또 모든 논리체계가 제가 절대적인 신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서 하찮은 인간인 당신이 거부감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당신이 ‘드디어 이해했다’라고 한 것은 애시당초 저의 의도였습니다. 제가 집중 추궁한 것은 당신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도 ‘인권운동가’ 임이 가능한가? 였는데 이 의문도 풀렸군요.. 당신도 많이 피곤했겠지만 저도 많이 답답한 논쟁이 이걸로 끝나서 기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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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죄송하지만 저는 절대적인 ‘신’입니다. 이런 글 자꾸 올리면 까칠하신 블로그 주인장님이 상당히 열받으실 텐데. 앞으론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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