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답변

마지막으로 답변하고자 한다. 이미 수없이, 조금씩 다른 표현을 사용하며 했던 답변들과 똑같은 답변이지만 말이다. 그가 요즘에도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마지막 답변이 될 것 같다. (나는 이 블로그에 누가 들어오는지 알지 못한다.)

1. 인간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인간이 단백질 덩어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단백질의 특별한 배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특별한’은 ‘special’이 아니라 ‘particular’를 의미한다.) 그 배치의 차이가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을 구분 짓는다. 여기서 구분 짓는다는 말이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 사이의 위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 맑스의 말을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것은 인권이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민들의 공동체는 인민들의 공동체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것은 민족이 된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를 해체해 냈다고 득의양양 깝쳐대는 속칭 ‘좌파 지식인’들”에 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해체란 ‘의미의 붕괴’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부여’를 뜻한다. 민족의 기원을 계보학적으로 탐사함으로써 우리는 민족의 신성성을 벗겨 내고, 민족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권은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발전하여 왔으며, 결코 절대적 존재자가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인권의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족 또한 마찬가지이다. 민족의 신성성이 벗겨졌다는 것이, 민족에 대한 ‘필요’마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민족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다. 인권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권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태껏 존재해왔듯 앞으로도 인권과 함께 존재할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마찬가지이다.

3.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들을 수 없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4. 마지막으로 충고 한마디 해도 된다면, 쇼펜하우어 좀 그만 읽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아, 나 왜 이리 무게 잡는 거야. ㅋㅋ

마지막 답변”의 7개의 생각

    1. 최근 덧글 목록에 ‘계보학적 탐구보다는 효용…’까지만 보여서 ‘계보학적 탐구’라는 단어를 부적절하게 썼나 싶었음…. ㅎㅎ

      효용 면에서의 탐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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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탐구의 초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 라면을 면 중심으로 볼 것이냐 국물 중심으로 볼 것이냐, 물리적으로 볼 것이냐, 화학적으로 볼 것이냐, 요리적으로 볼 것이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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