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중립적인 교육?

공현의 글에 달린 덧글들을 보고 쓰는 글. 두서없이 적었다.

간단히 말해서, 교육에서 ‘가치중립성’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가치판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몇십 년간 지구의 평균온도가 오르고 있다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도 가치판단이 이루어진다. 혹자는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화석 연료를 과도하게 사용해서 발생한 것이고, ‘많은 문제를 불러올 것이므로 좋지 않다’고 판단을 내릴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것은 맞지만, ‘북극 항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좋다’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가치판단을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라는 말 속에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지구온난화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애석하게도 아무 말도 않는 것 또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옳다’는 판단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가치중립적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수많은 정보 중에, 어떤 정보를 선별하여 어떤 시기에 얼마나 제공하여야 하는가? 자연과학적 정보 제공 또한 중립적일 수는 없을진대,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적인 정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교육은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그러나 교육이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이, 어떠한 가치판단을 내리는 발언이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곡’과 ‘불관용’을 일삼는 교육은 ‘불관용’되어야 할 것이다. 공현의 글에 나오는 교사가 잘못된 이유는, 학생의 정당한 서명 참여를 관용하지 않고 체벌이라는 폭력으로 대응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나중에 시간을 내어서 일제고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 될 일이다. 학생이 참여한 서명이 ‘일제고사 반대’가 아니라 ‘일제고사 찬성’ 서명운동이라도 마찬가지이고, “보수 노인들”의 “빨갱이 때려잡자”(gg님의 덧글)는 서명운동이라도 마찬가지이다. “빨갱이 때려잡자”는 “보수 노인들”의 서명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서 학생에게 폭력을 가한다면, 그 교사와 “보수 노인들”이 무엇이 다른가?

‘왜곡’과 ‘불관용’을 일삼는 교육은 ‘불관용’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왜곡’과 ‘불관용’을 일삼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교육이던 ‘관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일제고사에 관해 자신이 취하는 관점을 수업시간에 말하는 것 따위 또한 말이다. 앞서 말했듯, 일제고사에 관해 ‘가치중립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무 말 않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강요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여태껏 그런 교사는 없었지만) 만약 어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무조건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태껏 이런 교사는 많았지만) 만약 어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무조건 봐야 한다’고 말했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학생들은 ‘미성숙’하므로 교사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과연 학생들이 ‘미성숙’한가,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판단을 하는 능력이 떨어지는가의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바로 그래서 어떠한 교육이던 허용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다양한 가치판단을 접하고, 자신의 가치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 만약 그런 판단을 내릴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가치판단을 접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사회의 지배층에게 유리한 가치판단만을 학교에서 접하고 있지 않은가?

요약해보자. ‘가치중립적’인 교육이란 불가능하며 ‘왜곡’과 ‘불관용’, 그리고 ‘강요’ 따위를 일삼지 않는 교육만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교사는 그런 교육이 아닌 한 어떠한 교육이던 할 수 있다. (현행법상에서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그럴진대, 인권운동가는 왜 안 되는가? 게다가 공현이 한 것은 교육도 아니고, 단지 서명을 받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학생들에게 설득시키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벌이라는 폭력으로 막으려 한 교사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며, 그 교사가 그렇게 행동한 근거인 ‘학생들은 미성숙하고 가치관이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보호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학생들은 (학교의 방침에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는) 특정한 가치관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하양이

언젠가부터 우리 집 안에 뭔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하얀색의, 꼬리가 달린 생명체인 것 같았다. 새로운 바퀴벌레 종을 발견한 걸까 기뻐하며 한국곤충학회의 회원이 된 내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에이 이게 뭐야 고양이잖아.

…며칠간 생각한 농담인데, 전혀 안 웃긴 것 같다.

팔 안에 안겨 있는 하얀 고양이

소파쿠션 뒤에 숨어 있는 하얀 고양이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하는 하얀 고양이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터키쉬 앙고라 암컷. 원래 (앙)카라라고 이름을 지었었는데, 부르기 어렵다는 이유로 ‘하양이’로 이름을 바꿨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하양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게 무척 기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저 녀석이 우리를 좋아할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기쁘자고, 억지로 데리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그래도 뭐, 내가 키우자고 한 것은 아니니깐, 그런 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웃음)

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3850144&server=vimeo.com&show_title=1&show_byline=0&show_portrait=0&color=c9ff23&fullscreen=1

하양이는 아마 애가 탈텐데, 하양이를 놀리는게 왜 이리 재밌는 건지.

전쟁과 군대에 관한 자문자답

전쟁과 군대에 관한 자문자답, 그 중 일부.


갑 : 하지만, 군대가 없어진다면 누가 우리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을 : 군대가 우리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그 말은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깡패들이나 할 소리 아닌가? 군대는 깡패지.

갑 : 어째서?

을 :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결국 다른 나라 군대이니까. 다른 깡패들로부터 보호해준답시고, 보호비를 뜯어내는 깡패랑 뭐가 다르지?

갑 : 보호비라…. 국방비로 내는 세금?

을 : 뭐, 그것도 있고…. 강제로 군대에 가야 하니까. 깡패 비유를 계속 들자면, 깡패 조직 간의 싸움에 ‘시다바리’로 끌려가는 거? 이건 뭐 깡패들보다 더하구만! (웃음) 깡패들이 상인들을 자기네들 싸움에까지 끌어들이지는 않잖아.

갑 : 그런 식으로 비유를 들면, 왜곡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건데. 군대-시민의 관계가 깡패-상인의 관계와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을 : 흠흠, 뭐 그렇긴 하지. 그렇다 하더라도 군대가 우리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건 순 거짓말 아닌가?

갑 : 하지만, 전쟁의 주체로 꼭 국가만 있는 것은 아니지. 이를테면, 만약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군대를 없앴는데, 어디선가 반군이 들고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지?

을 : 차라리 외계인들이 쳐들어온다고 하지그래? (웃음)

갑 : 이봐,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크지 않나?

을 : 물론 그렇지. 음…. 우선 말하고 싶은 건, 그 말에는 ‘반군은 악이고 정부는 선이다.’라는 식의 이분법이 깔려 있는 것 같은데.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서 외계인과 세계인(미국인)의 관계처럼. 예를 들어 만약 그 반군이 ‘사파티스타‘ 같은 저항군이라면, 난 오히려 그 반군들을 옹호할지도 모르겠어. 그렇다고 뭐 내가 ‘사파티스타’들을 좋게 보는 건 아니고….

만약 네가 반군들에게 ‘누가 봐도 나쁜 놈들’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가정을 하나 더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군대가 없어진다는 건 단순히 그러한 조직이 사라지는 것만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는 억압적인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거지. 이상주의라고? 인간의 본성이 폭력적인데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뭐, 이상주의, 맞지. 뭐시기…. 그 본성인가 하는게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뭐 본성이 그렇다면 전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아예 처음부터 거부되어야 하나? 평화는 주어지는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거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고.

그리고, 전쟁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싶어. 깡패 비유를 다시 들자면, 독재정권 당시 깡패들을 ‘삼청교육대‘로 보냈잖아? 당장에 깡패는 눈 앞에서 사라졌겠지만, 그것이 평화인가? 군사독재라는 더 커다란 폭력으로 억누른 것에 불과하지. 그리고, ‘삼청교육대’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인권유린은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것이 평화인가?

다시 말하지만, 깡패든 전쟁이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몰라. 중요한 건, 그런 세상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지.

조금씩 벗어던지기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 자신을 옥죄던 몇 가지의 것들을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참마음’이라던지 ‘진정성’이라던지 하는 것에 대한 강박과, 몇 가지의 (주로 성적인) 편견들 따위.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벗어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