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은 가장 긴요한 것은 물어보는 적이 없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 애가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이지? 나비를 수집하는지?”라는 말을 그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이가 몇이지? 형제는 몇이고? 체중은 얼마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야?”하고 그들은 묻는다. 그제야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턱에서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분홍빛의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아, 참 좋은 집이구나!”하고 소리친다.

…차라리 나이나 형제가 몇인지 따위를 물어보는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나는 처음 만나자마자 ‘출신 학교’나 ‘사는 곳’ 따위를 묻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들을 전부 싫어하자면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한 가지 기준을 더 두게 되었다. 나는 처음 만나자마자 ‘출신 학교’나 ‘사는 곳’ 따위를 물은 뒤, 그에 대한 답만으로 나에 대해 꽤나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도대체 그러한 것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출신 학교’나 ‘사는 곳’ 같은 것들이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것들이 궁금한 것이며, 그에 대한 답을 해주고나면 더 이상 궁금한게 없어져 버리는 것인가. 나는 당신에게 나에 관한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잠을 매일 8시간 이상 충분히 자길 원하지만 그렇게 하는 날은 거의 없는데,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잔다 하더라도 7시간 밖에 자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말과 같이 더 많이 잘 수 있는 날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그 일들을 하느라 8시간 이상 자는 법이 잘 없다. 그 ‘하고 싶은 일’이란 보통 음악을 듣거나 짤막한 칼럼 따위를 읽는 것이다. 나는 4년 전부터 힙합 음악을 좋아했는데, 요새는 예전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힙합 중에서도 재지 힙합을 좋아한다. 그냥 간단하게, 재즈 선율의 힙합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즘에는 좋아하는 음악이 좀 더 다양해졌다. ‘브로콜리 너마저’나 ‘3호선 버터플라이’ 같은 밴드를 좋아하는데, 이들의 음악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뭐. 나는 내 손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내 손만큼 아름다운 손을 본 적이 없다. 적당한 길이의 손가락, 다듬지 않아도 가지런한 손톱, 손등 위의 털. 남들에 비해 나는 손등에 털이 많은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손을 들여다보다 친구들의 손을 봤는데, 아무도 나처럼 손등에 털이 많이 나 있지 않아 깜짝 놀랐다. 손등에는 털이 많지만 팔에는 털이 많이 없다. 그래서인지 팔에 털이 많은 사람을 보며 속으로 놀리곤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팔에 털이 많은 것을 보고 속으로 놀리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손톱을 자주 기르곤 한다. 손톱을 짧게 깎으면 손톱에 자주 때가 끼기 때문이다. 매일 깨끗이 씻어도 그 때뿐, 몇 시간만 지나도 또 다시 지저분해지곤 한다. 그래서 손톱을 기른다. 게다가 나는 손톱이 빨리 자라는 편인 것 같다. 어차피 깎아봐야 금방 다시 자라기 때문에, 그냥 놔둔다. 역시 나는 좀 지저분한 녀석인 것 같다. 나는 잘 웃는다. 당황스러울 때에도 웃고, 심지어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웃곤 한다. 슬픔을 잊기 위해 웃는게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게 웃는 것. 나는 무척 슬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길래 그렇게 웃고 있냐고 하면 더 슬퍼진다. 나는 ‘귀엽다’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그 말은 내게 최고의 칭찬이다. 나는 귀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카레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좀 까다로워서, ‘3분카레’ 같은 건 맛이 없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강황이 많이 들어간, 약간 매운 카레를 좋아한다. 인도식 카레도 좋아하는데, 너무 비싸서 자주 못 먹는게 아쉽다. 그리고 정말 인도식 카레가 그런 맛일까도 궁금하다. 인도에 가면 꼭 먹어보고 싶다.

이것말고도 말할 것은 많다. 적어도 이 정도는 알려준 다음에, ‘출신 학교’나 ‘사는 곳’ 따위를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사람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지랄하네.

내가 누구인지”의 20개의 생각

  1. 지랄 -> 간질병 환자의 병증을 비하하는 ‘병신’ ‘애자새끼’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말임.. 인권 운동가 답지 않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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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말씀하신 것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것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주변환경탓도 있는 거 같아요. 저도 뭐 이문제에서 찔리는 바가 없지 않구요. ^^ 아. 그리고 저도 카레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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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야훼
    알고 있음. 욕은 좀 쓰고 싶은데, 이걸 써야 할지 10분 정도 고민했지. 줄 그은 것도 그 때문이고. 적절한 욕 좀 추천해줘, 그럼.

    가즈랑
    그렇죠. 저 또한 찔리는 바가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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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린왕자..몇번을 읽어도 배울 게 많았던 책.. 난 어린 왕자가 지구에 처음와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참 좋아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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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헉 ‘병신’이 장애인 비하 욕이라는 이유로 어떤 욕이 그래도 가장 적합할까 친구와 고민한 끝에 지랄하네는 괜찮다고 합의봤었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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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네, 어떤 욕을 써야 할지 고민이에요. (뭐, 안 쓰는게 좋긴 하지만…. 쿨럭.)
    ‘음식물 쓰레기만도 못한 놈’은,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데다 자신이 원해서 쓰레기가 된 것도 아닌데 좀 그런 것 같고…. ‘이X박만도 못한 놈’은 명예훼손이다 뭐다 해서…. =_=
    뭐가 좋을까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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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피엡’은 피엡의 모든 걸 설명해주진 않지, 단지 지칭하는 방법-이름부르는 것일뿐. ㅎㅎ
    그러나 명명됨으로 그것은 너의 정체성의 되어비리지.

    비판해야 하는 대상은 ‘인식과 언어의 불완전성’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자를 인식하는 몇몇 기준들’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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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 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자를 인식하는 몇몇 기준들’을 비판하려고 쓴 글인데…. 엄밀히 말하면, ‘한국 사회’만을 염두에 두고 썼긴 하지만.

    철저하게 비판하려고 한 건 아니고, 글갈래가 말해주듯 그냥 불평 같은 잡담 정도?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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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힐스테이트의 광고카피 였죠???

    인간을 스펙으로 계량화 하는것은 불가피 한 면도 있지만

    항상 씁쓸 함을 가져다 주죠 ㅠㅠ

    인간성에 반하는 제도들이 도대체 언제 극복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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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음, 제가 이 글을 봤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요. ㅎㅎ
    친구에게 제 이야기를 A4 용지 8장에 걸쳐서 써서 보내줬었던 때가 있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학습 노동에 지쳐 학습지를 덮고는 키보드를 여섯 시간 동안이나 두드려 가면서…(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침 오늘 비도 오고… 아마 이 비 때문에 먼 곳에서 고생하고 있을 친구가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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