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

“누군가 내게 반론을 제기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래요, 그래, 자, 다른 것으로 넘어갑시다”라고요. 반론으로는 이제껏 아무 소득도 없었답니다. 일반적인 질문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고 벗어나는 것이죠.”

들뢰즈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그의 글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나에게 탈출구를 선사해 주었다. “그래요, 그래, 자, 다른 것으로 넘어갑시다”라고 말하고 싶은 나의 욕구가 정당하다는 종류의 탈출구 말이다.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면서도, 또는 진지한 토론을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질문들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잘’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때마다, 잘 대답하고 싶은 욕구보다는 이와 같이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 적이 많았다. “그래요, 그래, 자, 다른 것으로 넘어갑시다”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내가 무책임하거나 회피성 인간인가 하는 자책을 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들뢰즈는 정말 나에게는 시원한 폭포수 같았다. 내가 위와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경우는 이랬다. 질문을 하는 자와 대답을 하는 자가 모두 자기의 질문과 대답에서 맴돌고 있거나, 질문과 대답의 과정이 모두 자기를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거나, 아주 나쁠 때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혹은, 질문이 본질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거나, 우리로 하여금 질문이 전제하는 방식의 사유를 강요하는 경우. 이 모든 포획망으로부터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지를 가르쳐 준 것이 들뢰즈이다. 들뢰즈는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한다: 토론이란 건 전혀 필요없습니다. 이해되어야 할 것은 이미 이해되었고, 이해되지 못할 것은 토론을 해도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할 때면 들뢰즈가 소통에 관한 한 아주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앞에서 두 가지 질문을 다룬 바 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젊은이들에게 검술 수업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선 ‘존중’과 ‘용기’가 무엇인지 알야야 했기 때문에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불확실성 자체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했던 플라톤의 후예들은 ‘이데아’, ‘원칙’ 또는 ‘법칙’과 같은 어떤 확실한 지점을 상정해 놓고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들뢰즈에 따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원칙’과 ‘법칙’이 허구라는 것, 또는 적어도 이차적이라는 것을 보았고, 이런 질문이 그 자체로 이미 현실로부터 너무 멀고 현실에 비해 너무 헐거운 ‘일반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개별 사건들은 사건들마다 고유하기 때문에 비슷한 사건들끼리 모아 놓고 그것을 일반화시켜 그에 대한 일괄적인 질문을 만들거나 대답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라는 일반화된 질문에는 이미 이 질문을 하게 만든 구체적인 사건의 ‘의미’ 또는 ‘진실’은 빠져 있다. ‘존중’이라는 일반화된 원리는 각 사건, 각 존재, 각 삶이 가지는 유일무이한, 비표상적 의미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만약 이 의미를 각 순간 간파한다면 바로 그 사건이 요구하는 가장 정확한 행동이 무엇인지 그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원칙도 제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무원칙의 원칙이 사실은 가장 엄격한 삶의 원칙일 수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상 어떤 맹목적인 원칙을 세워 놓고 이것만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쉽고 또 안락하기 때문이다. 각 순간마다 그 의미를 제대로 보아야만 한다면, 그 순간이 보여 주는 견디기 어려운 진실을 외면할 수 없고, 또 그 순간이 요구하는 정확한 행동을 마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지영

책을 펼쳐든 순간, 사이다를 한 잔 마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시원한 폭포수’를 본 느낌?

몇 달간 나를 괴롭혀 오던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는 듯. 솔직히 말해서, 내용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웃음) 넓고 깊으며, 나에게는 정말이지 난해한 세계에 질려버리려 하다가도, 가끔씩 던져지는 시원함 때문에 계속 읽고 있다.

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의 5개의 생각

  1. 들뢰즈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인용해주신 글에서 저도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해법을 저렇게 통크게 말해주는 것이 대가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인용하신 이 전문은 어느 책에서 볼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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