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민”의 21개의 생각

  1. 쿠쿠
    재밌겠다.
    내 경험에 비추어봐선,
    보편성에 대한 욕망이란 게
    모든 걸 다 통제하려는 욕망의 일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또 ‘다름’에 대한 참을 수 없음의 일종인 거같아.
    전제적인 이론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려고 하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반응. 그래서 그 요소를 배제하거나 체계안으로 굴복시키기.

    What about you?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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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실 제가 계속 쓰고 있던 것(아직도 쓰고 있어요 ㄱ-…….)이,
    보편이라는 것은 사실 개인심리적 차원에서의 보편성에 대한 욕망이 과대확장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었거든요.
    에구.. 이거 정리 언제 될지 -_-;;;;;;; 복잡하네요.. 젠장젠장..

    (사실 아수나로 활동을 쉬면서부터 계속 가지고 있던 고민인데, 피엡님이 다시 발동을 걸어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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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상대성의 망치는 토르의 망치 묠니르이다. 표면적으론 인권의 적을 무수는데 아주 유용한 무기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권을 개박살내는 무기이니… 인권이 그 것을 다시 받아낼 능력이 없다면 개박살 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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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민족주의를 해체해 냈다고 득의양양 깝쳐대는 속칭 ‘좌파 지식인’들을 보고 드는 생각… 과연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그런 관념의 매스를 들이 대었을때 해체되지 않는 개념이란 존재할까? 인권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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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제야 덧글 남겼구만. 닉네임 참….

    몇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1. 인권은 여태껏 ‘보편성’을 더 많이 이야기해오지 않았나?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원칙인양…. 하지만 그 후에 ‘문화상대주의’라던가 하는 쪽의 비판을 받으면서 조금씩 수정해 나갔고. 갑자기 ‘상대성의 망치’라니 이해가 안 되는 걸.

    2. “민족주의를 해체해 냈다고 득의양양 깝쳐대는 속칭 ‘좌파 지식인'”에 누가 있는지 궁금하군. ‘과도한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좌파들은 많이 봐왔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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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인권의 기본은 상대성의 망치에 존재하지. 보편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사회규범를 상대성의 망치로 깨는 것이 인권의 기본이지. 예를 들어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이다’라는 명제를 ‘동성을 사랑하면 안되는 이유가 뭐야? 이성애자는 이성애를 하고 동성애자는 동성애를 하면 안되?’라는 상대성으로 깨 부수는 매커니즘이겠지. 하지만 내가 저번에 말한 불완전성 정리처럼 어떤 논리체계엔 증명불가능한 공리가 존재할 수 밖에 없어 인권에도 그 기저명제에는 속된 말로 ‘증명 그 딴거 없으니 닥치고 믿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거, 내가 주장하는건 이 기저명제에 상대성의 망치를 휘두르면 인권이란 허상은 산산조각 난다는 거지. 아 그리고 이 이메일 주소 탈퇴한지 꽤 오래된 거니까 연락해도 소용없을 거라능 ㅋ_ㅋ 이메일 주소를 적어야만 글을 남기게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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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므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동성을 사랑하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로 깨는 것 아니었던가. 누구나 보편적으로 ‘행복추구권’을 갖고 있다는 것. 그 ‘행복추구권’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한, 그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

    아, 메일 주소 안 써도 되게 바꿨어. 이 블로그 프로그램 기본 설정인데, 별 생각 않고 바꾸지 않고 있었음.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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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피엡C를 위한 연습문제

    다음음 두 명제의 연결고리를 설명하시오

    1. 나는 살해당하는게 싫어

    2. 그러니 나는 남을 살해하면 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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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스스로 자명한(닫힌 체계로 증명되는) 당위명제가 없으면, 순환되는 논리적 당위 체계(이를테면 인권의 논리)는 ‘거부되어야한다’든지,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증명되어야겠네요.
    어떻게 증명하실 건가요.

    이 문제는 메타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저는 언어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에서 퇴장하면, 게임의 룰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관전자 주제에 게임에 관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실증적으로 인권의 보편절대성은 찾아낼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차라리, 인권이란 두둥실 떠다니는 실천의 맥락 속에서 수행적(performative의 번역어를 찾지 못해서 -_-)으로 규정되는 것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기저에 있을(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는) 절대적인 당위 전제를 찾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야훼님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대화의 전체를 보지 못해서, 그리고 제가 지금 상태가 영 아니라서 이해를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러나,

    야훼님이 어떤 커다란 담론 안에서 ‘나는 이 룰을 거부하겠다’라고 선언하기 위해 참가해야하는 그 과정에서, 이미 일종의 트랩과 같은 당위, 룰이 생겨나는 것 처럼 보이네요.

    게임판에 뛰어들어와서는, 외치는 것이죠, “난 이 게임 싫어!”

    게임을 나가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세상이 ‘의지 / 힘의 대결’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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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거부를 선언하기 위해,
    야훼님은 ‘대화의 맥락’에 뛰어드셨습니다.
    (대화에 맥락에 뛰어들었냐 뛰어들지 않았냐 여부의 문제는 데카르트의 악마 논증 차원의 문제까지 추락하니까, 따로 증명할 것까진 없을 듯 하구요;;;)
    대화가 자체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는, 일종의 불완전한 체계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야훼님이 이러한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대화는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더욱 더 저차원적인(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녜요) 층위로 대화는 ‘환원’됩니다. (이를테면 물리적인 힘을 행사한다든지, 호호)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건 나빠!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아쉽게도 그건 고차원(역시 우수하다는 의미는 아니구요)의 층위에서 저차원의 층위에게 월권 행사하는 것과 다름 없어 보입니다.

    상관 없습니다. 원래 인권은 상대적입니다. (라고 해밀은 생각해요. ㅋㅋ)
    그러나 인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이상, 인권은 무언가 ‘절대적’인 룰로 다가옵니다. 그것이 고정적이지 않을 뿐이죠.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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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님에게 묻겠습니다.. 게임의 룰은 정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모든 도그마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겠군요… 받아들이던가.. 걷어차던가 둘 중 하나일 테니 말입니다.

    님에게 답하겠습니다.. 님이 물으신 첫번째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거부’되어야’한다 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받아 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논증은 해밀씨가 자신의 논리를 전재하며 충분히 한 것 같군요.. 해밀씨가 어떻게 논증을 하든 거기엔 ‘합리’와’비합리’에 따른 수용과 거부의 구조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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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전 인권의 보편성이고 상대성이고 그런거 신경안쓰고 인권운동 하는데 말입니다… 물론 인권 개념의 정당화를 위해서 그런 논리를 차용하긴 하지만, 제 신념은 ‘가치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입니다.

    자유니 평등이니 인권이니 원래부터 그것이 있었고, 지금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뭐 그러한 개념들.. 이 아니에요. 단지 내가 원하는게 구속되지 않고 억압되지 않는 것일떄, 그것을 자유의 개념틀로 묶고, 나아가 자유를 외쳤을 뿐이지요.
    따라서 저는 모든 가치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이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마이너리티라는 것, 그들이 사회구조 속에서 받는 고통은 불합리한 것이며 그렇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가치들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져가야 한다는 것.

    전 어차피 관념체계에 대해 해체의 칼날을 들이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유물론적으로 차라리 해석해버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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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피엡// 보편성에 대한 고민이라면, 저 위의 해밀씨의 말을 차용하고 싶어 ㅋㅋ ‘거대한 일반화’에 대해 비트켄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라.’는 말. ㅎㅎ

    위 리플에서도 말했지만, 대중을 설득해내기 위해서는 ‘보편성’이라는 정당성이 어느정도 획득되어진 가치체계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적어도 사실 그런건 ‘허구’이며, 진실은 ‘내가 자유롭고 싶으니까’ ‘자유’를 외치는 것. 그거면 되지 않을까.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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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야훼 // “인권은 보편적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다른 몇몇 윤리들(규범들, 관습들)을 상대화시키는 행위가,
    “보편성”이라는 개념적 차원으로 환원되면서, 인권 자신조차 깨부순다,
    라는 논증은 뭔가 굉장히 이상한 연결방식인데요.

    인권이 보편적(이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른 것은 상대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보편성’이나 ‘상대성’이라는 형용사적 맥락에 속하는 성질에 대한 이야기가 될 이유는 없지요.
    이런 방식의 이야기 전개는, 입장의 보편성이나 평등에 대한 특정한 관념을 전제하고 계신 것 아닌지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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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보편성에 대한 욕망이라 -_-

    이영도 식의 말을 빌린다면, “내가 죽이고 싶으니까 죽였다”라고 말하지 않는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일까…

    보편적인 준칙에 대한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역시 홉스를 빌려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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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ㅎㄷㄷ 이건 먼가염

    쨌든 보편성에 대한 욕망을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가지고 있지만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갈피를 못 잡는 사람은 상처를 받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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