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보편성과 끝없는 투쟁, 고민

인권은 결코 내생적 당위가 아니다. 처절한 저항과 투쟁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사회적 합의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역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명명에 불과하다. 인권은 구성된 당위로서 모든 지금-여기에서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하며, 그리하여 끊임없이 다시 추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멈추지 않는 저항과 투쟁을 요구된다.

아르

아르님의 2008 인권선언 지지 글 중에서. 한 친구와 한 달 이상 논쟁(?)하면서, 그에게 이야기하려 했던 것을, 짧게 요약한 느낌이다.

인권의 역사상, 저절로 주어진 권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늘날 당연시 여겨지는 권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비록 오늘날 인권으로 여겨지지 않는 권리를 주장한다고 하여도,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그 권리가 미래의 인권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날 인권으로 여겨지나, 그것의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권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다시 말해 인권의 보편성 개념은 여러모로 불완전하다. 인권 개념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가장 많이 비판을 받은 부분 아닐까. 그 친구와의 논쟁도 대개는 이에 관한 것이었다. 인권의 보편성을 공격하며, 인권이 보편적이지 않다면 인권침해를 반대할 근거도 없는 것 아니냐는 친구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설명을 했던지. 인권의 보편성 개념은, 일종의 전략적인, 관념적 수사라고 봐야 하는 면도 있다며, 결국 현실에서 인권은 투쟁을 통해 얻어질 수 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일종의 ‘생떼’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생떼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어감의 말이었다.) 나는 결국 국제협약을 들이댈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옹호하는 인권침해는, 이미 국제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이므로, 침해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두발을 규제하는 교칙을 왜 따라야 하냐는 주장에 ‘교칙이니 따라야 한다’고 반박하는 교사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인 것 같아, 아직까지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게다가, 국제협약에 보장되어 있지 않은 권리를 옹호할 근거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인권의 보편성은 여러모로 불완전한 개념이지만, 어떠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며, 현실에서 인권은 끝없는 투쟁을 통해 쟁취된 것이다. 그리고 그 쟁취된 인권은, 국제법과 국내법 등을 통해 공고히 된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걸까. 인권은, “보편적이지 않음에도 보편적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정신병’에 걸려(이건 그 친구가 직접 사용한 표현이다.) 그 목록에 “이 권리도 넣어달라”고 ‘생떼’ 쓰는 것”, 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 밖에 없는가. 어차피 그런 비아냥을 듣던 말던, 현실 속에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지만.

답을 찾고 싶다. 지금은 보편적 인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권리를, 어떠한 근거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권리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한 것이라고 논증할 수 있을까.

인권, 보편성과 끝없는 투쟁, 고민”의 5개의 생각

  1. 제가 쓴 글의 마지막 줄에 “가치에 공감하며, 지지를 표한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의 가치관에 의거한 지지일 뿐입니다.

    가치는 모두 고유하기에 본질적으로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의 우위에 설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추구할만한 가치와 배척할만한 가치에 대한 규칙이 구성될 수는 있지요. 민주 사회에서는 이러한 규칙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축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축된 규칙이 특정한 행위를 규제 혹은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합니다. (물론 여기서도 이 규칙에 가치를 두지 않는 개인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권 투쟁은 특정한 가치가 추구할 만 하다는 특정한 집단적 인식을 더 큰 공동체에서도 인정받고자, 혹은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권이라 명명한 가치들이 보호받도록 하는 적법한 강제력을 구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UN의 세계인권선언은 이러한 노력이 거둔 나름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의 우위에 선다는 것을 논증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가치와 그에 기인한 행위가 용인되어 마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회는 나름의 규칙을 구성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규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법률과 같은 가시적인 규칙이든,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 같은 체화된 실천의 논리든간에 말이지요. 인권이라 명명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을 의도한 방향으로 굴절시키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특정한 가치의 내생적 우위를 논증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권 투쟁이 근본적으로 치열한 것은 인권(즉, 무엇이‘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개념 규정에 한 시도 태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권이 여타의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본원적 당위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임은 물론, 무엇이 인권에 포함되는가(피엡 님께서 지금 고민하시는 부분도 여기에 포함되리라 생각합니다)에 대한 규정도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한 시도 고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규정은 (그에 대한 유효한 강제 혹은 권유와 함께) 사회적인 합의 속에서 구성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가치관이 인권 투쟁의 추동력을 약화시킨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도 다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추구되는 대부분의 가치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지지합니다.)

    찾고 계신 답을 지목하는 답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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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가 생각하는 인권의 보편성?!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은 “쇠 귀에 경 읽기”…
    아직 인권에 대한 인식도 덜 성숙한 상태이고, 보편성이면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시행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논할 때가 아니다.
    먼저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누구란 인권은 있고, 그것을 존중해줘야 한다”를 현실적으로
    받아드리게 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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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 자연권으로서의 인권외에는 인권의 보편성을 설명하거나, 정당성을 부여해 줄 다른 논거나 개념이 없는 건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권의 유용함(주관적 유용함이 아니라 객관적 유용함입니다. 인권을 보장할 경우 완전히 억압하는 경우 ‘보편적으로’인류에게 좋다는 것이죠)도 될 수 있을지도요.

    2. 친구분은 인권이 보편적이지 않으면, 인권침해를 반대할 근거도 없지 않느냐인데, 예를 들어 여러 나라에서, 혹은 시기별로 성폭력에 대한 형법이 보편적이지 않다면 그걸 지킬 근거도 없지않냐고 되물어 볼 수 있지요. 즉, 인권에 보편적이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그것을 지킬 이유가 사라진다? 이 명제의 타당성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실제 형법상 성폭행은 남자대남자 또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 적용안 되죠. 불합리하고 차별적이니깐 안 지켜도 되는건지 물어보면 되죠)

    3. 인권의 보편성 개념의 정의가 뭔지, 의미가 뭔지에 대한 성찰 또한 필요하겠죠. 국제협약 혹은 문서상으로는 갖고 있는 모든 인간의 기본권이지만, 실제로는 투쟁을 통해 앞으로 갖어야할 추상적 권리? 그렇다면, 국제협약과 문서상에 있는 내용만으로 충분한가? 만약에 아니라면 범위확장, 재수정, 보완 등등이 필요할 것인데, 그럼 기존의 협약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일단, ‘국제협약 = 인권의 전부’ 라는 생각은 당연히 좁은 생각이고 오류이죠.
    그럼 ‘인권 = 사회문제 해결의 전부’는 어떤지요? 세상에 모든 문제를 권리의 개념으로 풀 필요가, 그것이 가장 적절한 건 아니겠지요? 세상에 어떤 문제는 도저히 인권의 개념으로 풀기가 어렵거나 적절치 않은 것들도 있잖아요.(기후변화나 동물해방의 문제 등등) 인권의 (논리적)보편성 혹은 정당성에 문제가 있거나, 앞으로 있을 것이 것이라도 그게 인권을 폐기할 이유가 되는가? 논리적 보편성과 타당성이 그대로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인권 외에 다른 수단(정치이념,사회문화 및 제도,윤리 등)이 없는가?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추구가 그것을 빌미로 어떤 강요나 다른 수단에 대한 폄하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조건과 태도가 필요한지 성찰한다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한 성찰도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그럼 도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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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간단히 덧붙이자면, 인권의 절대적 자립화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겠지요. 인권이 탄생되기 전까지 저항운동,정치이념, 문화 등등이 총합, 논의되면서 생성되고 발전되어 온것이 인권인데, 과연 그것의 중요성과 역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권이라는 개념이 마치 그런것들에 무관하게, 혹은 독립적으로 형성되었다거나, 존재 및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세계인권선언과 사민주의(혹은 복지국가)를 정말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지요) 제가 만약 권하고 싶은게 있다면 인권이 인권 홀로 서는게 가능한건지, 다른 요소들은 역사적으로 무엇들이 영향을 끼쳤고, 최근에는 어떤 것들이 끼치고 있는지 성찰해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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