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hing Time at Deauville

물가의 의자에 앉아있는 상류층 사람들

Eugène Boudin, Bathing Time at Deauville, 1865

몇 년 전 인상파 화가전을 보러 갔다가, 머리에 총을 맞은듯 멍하니 서서 하염없이 바라봤던 외젠 부댕, 의 그림. 이 그림은 아니다. 작품 제목을 적어두었어야 했는데. 지금 와서 외젠 부댕들의 그림들을 보니, 그다지 느낌이 오지 않는다. 아직 내가 봤던 그 작품을 찾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답답한 놈

“선생님, 예전에 제게 하셨던 그 질문은, 조금 문제가 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조건이 충족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거죠. 그런 조건대로 된다면, 전 말씀드린대로,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거에요. 하지만,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난 적은 여태껏 없었고, 앞으로 적어도 몇 년간은 없을 거에요. 그렇지 않나요? 결국 전 선생님께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일 뿐이죠. 그런 조건이 충족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것이지만, 그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는 거. 그래서 결국 전 계속 이렇게 있는거에요. 그 조건이 충족된다는거, 좀 어렵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남들의 기준을 제시한게 아니잖아요? 제 기준이었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전 좀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염려하시는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거북이처럼 지내고 싶다고 해야할까요. 제가 갖고 있는 문제는, 선생님의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실은 아니라고 답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라는게 아니라, 그런 상태를 지속해 나가는 것조차도 몹시 힘들다는데 있어요. 시간이 약이라지만, 전 지금 당장 약을 원해요.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약 말이죠. 약 없이는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요. 약을 먹지 않고도 괜찮을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걸요. 버드나무 아래에 누워있는, 거북이 한 마리가 되고 싶어요.”

생각해보면, 나도 참 답답한 놈이다.

MP3 문답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무작위로 음악을 재생해서 나오는 노래 제목들로 답하는 문답.


1. 시작하기 전 각오?

Jurassic 5 – Contact

2. 당신의 오늘 기분은 어떻습니까?

Coldplay – Square One

3. 삶에 성공할 것 같습니까?

Hocus Pocus – Normal (마음에 든다.)

4.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Addsp2ch – Legend (당황스럽다.)

5. 어디서 결혼하게 될까요?

Coldplay – Fix You (정비소에서?)

6. 당신의 라이프스토리는?

Jay-Z – Izzo (H.O.V.A.) (흥미롭군.)

7. 당신의 학교 인생은?

언니네 이발관 – 아름다운 것 (별로….)

8.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가요?

Eric B. & Rakim – I Know You Got Soul

9. 당신의 매력포인트는?

Hocus Pocus – Hip Hop? (웃음)

10. 오늘은 어떻게 지낼 것입니까?

m-flo – I Wanna Be Down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11. 이번 주말은 어떻게 지낼 것입니까?

Clazziquai – Gentle Giant

12. 나의 부모님은 무슨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Primary Skool – 날개짓 Pt.2

13. 할아버지/할머니의 성격?

Ne-Yo – Back to What You Know (흐음….)

14. 당신의 삶은 현재?

Kanye West – Roses

15. 당신의 장례식장에서 틀을 노래는?

Nujabes – Thank You (이런. 어떤게 고마운걸까.)

16. 당신의 결혼식장에서 틀을 노래는?

Bust This – Love DJ (좋군.)

17. 세상은 당신을 어떻게 봅니까?

2Pac – Picture Me Rollin’

18.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 것 같습니까?

김건모 – 너를 위해서

19. 당신은 밤에 어떻게 사나요?

Drunken Tiger – Beat (쿨럭.)

20.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합니까?

Time Machine – Who Needs a Mic?

21. 당신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집니까?

Verbal Jint – Trouble (젠장.)

22.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Goldfinger – Tell Me (말해줘.)

23. 당신의 반려자는 어떨까요?

Outsider – 나락에 핀 꽃 (미소가 예쁜 소녀는 말없이 손을 잡아당기네.)

24. 아이가 생길까요?

Alex – 그대라면

25.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Surreal & Sound Providers – The Rundown (뭔가를 줄여야 하는 걸까.)

26.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될까요?

Elcue – 생존보고서 (아, 정말….)

27. 당신이 춤춰야 할 노래는?

Kebee – 백설공주 (이 곡에 어울리는 춤은 어떤 것일까 상상하고 있다.)

28. 당신의 테마송은?

Drunken Tiger – Rhyme Sharks

29.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테마송?

The Procussions – Good Morning Colorado

30. 당신 타입의 남자/여자는?

P-Type – 부메랑 (음…..)

31. 소감?

Loquence – 월하독주 (달밤에 혼자 술 마시는 기분.)

32. 문답의 끝을 앞두고 있는데 원래 예정돼 있는 다음곡은 무엇?

Funky DL – Turntables Hate Me

어린 왕자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물어보지 않는다. 어른들은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냐? 그 앤 무슨 놀이를 좋아하지?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어른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진 얼마나 버니?” 어른들은 이렇게 묻고 나서야 그 친구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굴이 시뻘건 신사가 살고 있는 별을 하나 알고 있어. 그는 꽃향기를 맡아본 적도 없고, 별을 바라본 적도 없어. 그는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어. 오직 계산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해본 것이 없어. 그리곤 온종일 아저씨처럼 이런 말만 되풀이하지.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오만에 가득 차 있어. 그러나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건 버섯이야!”

그리고 그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디 있니? 사막은 좀 쓸쓸한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도 쓸쓸하긴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높은 산에 올라갔다. 그가 알고 있는 산이라고는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세 개의 화산이 전부였다. 불이 꺼진 화산은 걸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높은 산에서라면 이 별과 사람들 모두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바늘 끝처럼 뾰족뾰족한 바위산 꼭대기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안녕.” 그는 혹시나 하고 말을 해 보았다. “안녕…… 안녕…… 안녕…….” 메아리가 대답했다. “너는 누구니?”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너는 누구니…… 너는 누구니…… 너는 누구니…….” 메아리가 대답했다. “친구가 되어줘. 나는 외로워.”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메아리가 대답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참 이상한 별이로군! 메마르고 뾰족하고 험하고.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도 없이 남이 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내 별에는 꽃이 한 송이 있었지. 그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었는데…….”

“그럼 너도 목이 마르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물은 마음에도 좋을 거야…….” 나는 그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이렇게 얘기했다. “넌 좋은 독을 가지고 있니? 날 오랫동안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니?”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 우뚝 멈춰섰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읽었다. 1년 만인가. 어릴 땐 이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술주정뱅이는 왜 계속 술을 마시는지. 사업가는 왜 별을 계속 세는지.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슬프다. ‘어린 왕자’는 분명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나는 사막이 싫었었다. 우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왕자가 사라진 곳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Le renard

Bien sûr, dit le renard. Tu n’es pas encore pour moi qu’un petit garçon tout semblable à cent mille petits garçons. Et je n’ai pas besoin de toi. Et tu n’as pas besoin de moi non plus. Je ne suis pour toi qu’un renard semblable à cent mille renards. Mais, si tu m’apprivoises, nous aurons besoin l’un de l’autre. Tu seras pour moi unique au monde. Je serai pour toi unique au monde….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Tu me manques

Tu me manques. 보고 싶어.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직역하자면, 나에게 네가 부족해. 누군가 그립다는건, 어쩌면 부족함일지도. 독일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이런 구조로 표현한다고 한다. Du fehlst mir.

나눔의 능력

대전에 있는 할아버지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어릴 적에는 할아버지의 묘비에 새겨진 이 글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다. 할아버지 옆의 다른 묘비들은 전부 뭔가 멋들어진 말, 이를테면 국가니 민족이니 헌신이니 한 길만 걸었다느니 하는 말들이 새겨져 있는데, 할아버지 묘비의 이 글귀는 뭔가 흔히 볼 수 있는, 묘비를 만든 사람이 아무것이나 대충 뽑아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어릴 땐 왠지 초라해 보이고 식상해 보이던 그 글귀가, 정말 소중한 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지난 5월 초, 할아버지 산소에 몇 년 만에 찾아갔었다. 할아버지 주변의 묘들을 둘러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과연 저들은 글귀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한 길만 걷는’ 삶을 살았을지. 대개는 다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전 직업을 생각해볼 때, 그 말이 진실이라면 더 문제다. 군인으로서 국가에 헌신하는 삶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삶과 공존 가능할까.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결국 군인은 타인을 죽이는 것을 일로 하는 직업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더욱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나 민족 따위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어젯밤, 선경과 대화를 하다 할아버지 묘비의 글귀가 다시 생각났다. 선경은 나에게 타인과 대화할 때 늘 ‘벽’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나눔의 능력’, 공감의 능력이 절실하다.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