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요즘 신세대 커플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정욕망에 길들여지면 당연히 외적 조건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된다. 남들이 보기 좋은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을 위한 것으로. 참, 희한한 이타주의(?)다. 근데, 그럼 그게 사랑인가? 쇼 혹은 비즈니스지.

계몽의 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잘 배울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한테서만 배울 수 있다고 간주하고, 또 자신도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한다. 해서, 남보다 많이 알면 금방 교만에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곧 열등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남보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감추려 든다. 수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학벌을 취하게 되면, 그 지식은 반드시 특권으로 작용한다. 더 결정적으로 어떤 단계에 이르면 이들은 더이상 배움의 열정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몽의 구조는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다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이상 자라기 어려운 까닭이다.

고미숙

여울바람님이 추천해주셔서 읽게 된 책. 좋은 책이다. 나의 ‘남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책 목록’에 오를만한 책. (웃음) 다만, 추천해줘도 사람들이 (제목 때문에) 읽어보기도 전에 거부감을 갖는 게 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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