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최근에, 미국 정부의 행동을 비판해온 사람들은 — 나 자신을 포함해서 — ‘반미적’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반미주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신성화되고 있습니다.

‘반미적’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미국의 기성 체제가 비판자들을 깎아내리고,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부정확하게 — 사용하는 말입니다. 일단 누군가가 반미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의 발언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시되며, 논리는 상처받은 국가적 자존심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반미적’이라는 용어는 무슨 뜻입니까? 재즈에 반대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언론자유에 반대한다는 뜻입니까? 토니 모리슨이나 존 업다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거대한 미국산 삼나무를 싫어한다는 것인가요? 핵무기에 반대하여 행진한 수십만 미국 시민들이나, 그들의 정부가 베트남으로부터 철수하도록 압력을 넣은 수많은 반전 운동가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반미적’이란 모든 미국인들을 미워한다는 뜻인가요?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여기에 대해서는 미국의 ‘자유언론’ 덕분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슬프게도 거의 아는 바가 없는데)을 미국의 문화, 음악, 문학, 숨막히게 아름다운 땅,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즐거움에 대한 비판으로 혼동하게 하는 것은 고의적이며, 극히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이것은 마치 퇴각하는 군대가, 적(敵)이 민간인을 향해 포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인구가 밀집된 도시 속에 숨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정책과 자신이 연관되는 것에 대해 모욕을 느끼는 미국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정책의 모순과 위선에 대한 가장 학문적이고, 신랄하고, 예리하며, 통쾌한 비판은 미국 시민들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미국 정부의 속셈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면,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사이드, 하워드 진, 에드 허만, 에이미 굿맨, 마이클 앨버트, 찰머스 존슨, 윌리엄 블럼, 그리고 앤서니 에이무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수백이 아니라 수백만의 사람들이, (테러리즘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카시미르 계곡에서 자행된 국가적 테러리즘은 논외로 치더라도, 구자라트 주정부의 감독 아래 무슬림들에 대해 저질러진 최근의 학살만행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는 현재의 인도 정부의 파시스트적인 정책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대해 심히 부끄럽게 여기고 매우 분개할 것입니다. 인도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반인도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입니다. 물론 인도 정부 자신은 주저없이 그렇게 나갈 것이지만 말입니다. ‘인도’나 ‘미국’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다거나,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를 밝힐 권리를 인도 정부나 미국 정부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양도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반미적’이라고(또는 ‘반인도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인종주의적인 발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력의 결핍입니다. 기성 체제가 제시해준 것 이외의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없는 무능력입니다. 부시가 아니면 탈레반이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천사가 아니면 악마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면 테러리스트들과 한패다. 이런 식입니다.

작년에,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9 . 11 이후의 수사(修辭)에 대해 그것을 어리석고 교만한 것으로 무시하면서 비웃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전혀 어리석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잘못된, 위험한 전쟁을 위한 모병 작전이었습니다. 날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반대가 곧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탈레반을 지지하는 것과 같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경악하곤 합니다. 이 전쟁의 애초의 목표 —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산 채로든 시체로든) — 가 좌절된 것으로 보이는 지금, 과녁은 이미 다른 데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 여성들을 ‘부르카’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전쟁의 목적이 있었던 것처럼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합중국 해병대가 페미니즘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우리더러 믿으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인도에는 ‘불가촉 천민’,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리고 여성들을 억압하는 혐오스러운 사회적 관행들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는 소수집단과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더욱 혹심합니다. 그러니, 거기에도 폭격을 해야 합니까? 델리와 이슬라마바드, 다카도 파괴해야 합니까? 인도의 저 완고한 관행을 폭격으로 퇴치할 수 있을까요? 폭격을 통해서 우리가 여성해방의 낙원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런 식으로 미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었습니까? 노예제는 어떻게 없어졌습니까? 미국은 수백만의 토착 아메리카인들을 학살하여, 그 시체 위에 건국을 하였습니다. 지금 산타페를 폭격함으로써 그 인종학살이 보상될 수 있을까요?

Arundhati Roy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의 정치평론집, 9월이여, 오라.

반미?”의 3개의 생각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