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주의 선언

로자는 계몽주의자들, 즉 ‘전위당 노선’과 달리, 대중으로부터 ‘저절로’ 나타나는 힘들에 운동을 맡겨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용한 이 ‘저절로’라는 말은 추수주의자들이 곧잘 빠지곤 하는 낙관론이나 숙명론과는 관련이 없다. 이 말은 오히려 기계적 필연성을 깨뜨리는 어떤 결정 불가능성의 필연적 도래, 다시 말해 결정을 불가능케 하는 대중의 자발성과 능동성에 대한 선언을 담고 있다. 어떻게 결정 불가능한 대중, 자기 극복의 잠재성을 지닌 대중을 지도하거나 추종할 수 있겠는가.

고병권

그러나 실제로 현실은 이분법적이지 않고, 차악의 선택으로 제시된 대답들은 엉터리일 때가 많다는 점에서 이런 이분법은 환상이다. (중략) 가령 우리는 약육강식의 자연 상태를 피하기 위해 국가를 차악으로 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상 약육강식의 논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 질서의 내부에 기입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이다. 많은 이들이 빈곤을 피하려고 신자유주의로 편입을 택하지만 우리는 이런 편입을 통해 모라토리엄 상태에 빠진 국가들을 목격한다.

진은영

코뮨주의 선언. 아직 다 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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