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자동차

분명 국가는 사람들 개개인이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국가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자동차와 마찬가지이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용하고,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동차에 충성하지는 않잖은가. 물론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몇몇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사랑을 남들에게도 강요하던가?

신기하게도, 국가와 자동차 둘 다 좋은 점만큼이나 나쁜 점도 무척이나 많다. 아니, 나쁜 점이 좋은 점보다 훨씬 더 많다.

수업시간 중에

수업시간 중에 ‘한반도 대운하’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싫어하는 선생. 나는 대개 선생님들의 좋은 면을 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친구들이 다 욕하는 선생님도 나는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너는 도대체 그 선생의 어디가 좋다는 거야?’ 하는 소리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한반도 대운하’ 이야기가 나온 수업은 ‘내가 싫어하는 선생’이 들어오는 수업이었다. 왜 그 선생을 싫어하느냐. ’88만원 세대’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니까 SKY를 가야 비정규직을 면한다’ 소리를 하는 선생을 내가 왜 좋아해야 하는가 그걸 먼저 물어봐야 할 듯싶다. 내가 싫어하는 선생이라는 건, 대개는 이런 타입들이다.

어쨌든 그 선생의 수업시간 중에 ‘한반도 대운하’ 이야기가 나왔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경부고속국도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청계천 이야기가 나왔다. 경부고속국도는 그렇다고 치자. 청계천 복원이 성공적이었다니. 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내가 싫어할만한 이야기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자리 앞의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거봐, 운하도 성공할 거라니까.’ 라고 이야기 한다. 대선 기간에(아니 그 이전부터) 내가 그렇게나 이야기를 했건만. ‘청계천 복원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잖아’하고 대꾸하니, ‘어쨌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어쨌든’이라는 말 속에는 ‘어쨌든 대운하도 성공해서 한국 경제를 살릴 거야’라는 말이 들어 있겠지. 한국 경제를 살린다…. 좀 더 설명을 잘 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선생의 수업이, 계속된다. 제발 남은 시간 동안은 내가 싫어하는 소리를 하지 말아줬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친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주면 좋을까 고민한다. 아차, 딴생각 할 게 아니라, 수업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