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권은 죽었다

청소년 인권은 죽었다 포스터

지난 7월, 부산의 한 중학생이 시험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오리걸음 체벌을 받다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이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체벌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때려서라도 잡아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고, ‘그깟 오리걸음 좀 했다고 죽느냐’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다른 잘못이 아닌, 시험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체벌을 받았는데도, 그 체벌로 사람이 죽었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앨리스 밀러를 떠올렸다. 체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그들도 분명히 청소년 시절 체벌을 수없이 많이 당했겠지. 결국, 체벌은 계속 돌고 돈다. 그 돌고 도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을 다치는지, 마음을 다치는지는 생각지도 않는다.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이 당한 체벌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과 체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들은 체벌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복수’를 바라고 있다는 것. 체벌의 피해자였던 그들이, 체벌의 가해자로 변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사망한 그 중학생은 낮은 시험 성적 때문에 체벌을 받았다. 시험 성적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이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낮은 시험 성적은 무엇보다 큰 잘못일 것이다. 이렇게 시험 성적이 낮다고 체벌을 받지 않더라도, 많은 청소년들이 낮은 시험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한다. 그러한 자살은 분명 스스로 자신에게 체벌, 무엇보다도 심한 체벌을 가하는 것일 것이다.

‘입시공화국’에서 ‘청소년 인권’은 죽어버린 지 오래다. 다른 이야기는 더 하지 않겠다. 그저 당신이, 입시공화국을 지탱하고 있는 당신이 생각을 바꾸길 바랄 뿐이다. 만약 당신이 시간을 내어 토요일에 열릴 (무척이나 작은 규모의) 추모제에 참석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지만.

입시공화국, 대학평준화

  • 한국 사람들은 ‘입시공화국의 종말’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 모두가 ‘서울대 졸업생’이 되길 바랄 뿐이다.
  • 대학평준화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이라니. 학벌이 곧 재산이 되는 입시공화국에서나 가능한 생각이다.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국가주의, 애국주의

  • 독도가 한국 땅인가요? 발해가 한국 역사인가요? ‘당연하다.’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이것 두 가지만 생각해보세요. 제주도는 한국 땅인가요? 울릉도는 한국 땅인가요? 당신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라고 하시겠죠.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당신은 제주도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으신가요? 아니, 제주도 사투리를 알아들으실 수는 있으신지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이 ‘우리 말’인가요? ‘우리 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전 언어학적 질문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전 언어학에 관해선 아무것도 몰라요.)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독도와 발해가 한국 땅이고 한국 역사라고 외치시기 이전에, ‘국가’가 무엇이며 ‘우리는 하나’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보시라는 거지요. 이것도 물어볼게요. 당신의 고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마오리 족은 뉴질랜드 사람인가요?
  • 난 ‘애향심’과 ‘애국심’을 교묘히 뒤섞는 자들에게 역겨움을 느낀다. 나는 외국에 나갔을 때 느끼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애국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딴 이유로 나에게 ‘애국심’을 강요하지 마라.

풍선껌, 우울, 경영노동자

  • 공부는 좀 못하지만, 풍선껌은 누구보다 잘 부는 아이에게 “넌 풍선껌을 참 잘 부는구나.”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 요새 좀 우울하다.
  • 발상의 전환 : 나는 인생을 경영하는 CEO → 나는 인생에 잉여가치를 부가하는 노동자. CEO도 ‘경영노동자’이건만 ‘노동자’가 아닌 이 세상. CEO를 꿈꾸는 이들이여, 이것 두 가지는 명심하시길. CEO는 경영노동자라는 사실을, 회사의 ‘이윤’은 과연 누가 만들어내는 것인가를. 세상의 모든 CEO들이 이 두 가지를 명심할 때, 세상은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