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공화국의 종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 내가 합격한 학교에 갔던 나는 그날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외국어고등학교. 나는 원래 그곳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나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웹 퍼블리셔가 되고 싶었고, 그곳에 가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산에 살고 있던 나는, ‘서울, 경기도 중학생’만 받는 그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2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학을 가야 했다. 부모님께선 반대하셨다. “네 생각은 알겠지만….”으로 시작하신 부모님의 말씀은, “…아직도 이 나라에선 학벌을 무척이나 따진다. 네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실업계 고등학교라는 사회의 낙인을 뛰어넘을 수 있겠니?”로 끝났다. 결국,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3학년, 그러니까 작년 여름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외국어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말이 길어진다. 부모님이 가라고 하셨냐고?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잠시 말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부모님도 더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나는 프랑스에 가고 싶었다. ‘이 나라에선 희망이 보이질 않아서’였다고 해야 할까? 내가 과연 웹 퍼블리셔로 계속 먹고살 수 있을까, 아니 40대까진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비정규직이 60%에 육박하는 이 나라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하든 정규직으로 살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무척이나 비관적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무슨 ‘모든 일이 해결될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프랑스에 가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 훨씬 더 나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프랑스에 가고 싶었다. 2006년 초에 있었던 학생 시위. 그런 시위가 가능한 국가라는 사실이 나를 유혹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프랑스는 많은 것으로 나를 유혹했지만.)

그래서 나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간 뒤, 주말에 프랑스어학원을 다니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프랑스로 유학.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나는 좌절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의 계획을 뒤집어 생각했다. ‘외국어고등학교에 가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동시에 컴퓨터 실력을 쌓자.’ 아마 그 뒤집힌 계획에는 ‘일반계 고등학교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지금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부산에 있는 한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하고 나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나는 그날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부산 최고 명문고등학교에 합격한 여러분을 축하합니다’라는 특목고 전문학원의 현수막을 본 이후부터였다. 별생각도 않은 채 덜컥 지원하고, 맹목적으로 두 달간을 달려왔던 나였다.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후회를 했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후회가 들기 시작한 것은 학교 입학 후부터였다. 입학하기 몇 달 전, ‘입시경쟁 반대’를 외치는 청소년 인권단체에 가입했기 때문이었을까? ‘전국 10위권 내 학교’라는 학교장의 말이 거슬렸다. 친구들은 그 말을 ‘말도 안된다’며 비웃었지만, 그래도 ‘부산에선 어느 정도 순위권에 드는 학교’라는 생각은 다들 가진 듯했다. (특성화 고등학교이긴 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려 했지만 가지 못하고 이곳에 왔기 때문이었을까? 실업계 고등학생들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비웃음도 참기 어려웠다. 나는 점점 후회하기 시작했다.

‘가출을 해서라도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편입할까?’라는 생각을 3월 한 달 내내 했다. 하지만, 부산에 사는 내가 과연 편입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고, ‘이왕 온 것, 그냥 다니자’라는 마음속의 소리도 나를 유혹했다. 결국, 어영부영하다 편입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점점 변해가고 있다. 나도 이젠 ‘부산에선 어느 정도 순위권에 드는 학교’라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아직은 그에 대한 거부감이 더 많이 느껴지지만, 점점 나도 그런 생각을 마음속에 새기게 될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같이 웃음을 짓곤 한다. 웹 퍼블리셔라는 꿈도 흔들리고 있다. 교육노동자, 그러니까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름의 거창한 이유를 대지만, 그것이 과연 내가 진정 바라는 꿈일까 묻는 물음에 할 대답이 없다. ‘공무원’이 장래희망이라는 아이들과 내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생각을 한다. 나는 과연 ‘교육에의 열정’ 때문에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가. 확신할 수 없다. 만약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갔다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겠지?

친구들이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 불안하다. 나는 늘 놀고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불안하다. 내가 과연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나는 결국 ‘입시 공화국’에 완전히 적응해버리고 말 것인가.

‘입시 공화국의 종말’을 바라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심 ‘고교등급제’를 바라는 나는 분명히 위선자다. 나는 이 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차고 나가고 싶지도 않다. 내가 요즘 괴로운 이유다.

입시 공화국의 종말

은빛늑대님의 이벤트를 위해 쓴 글. 어찌하다 보니 또 푸념이구나.
나는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

입시 공화국의 종말”의 13개의 생각

  1. 축하합니다.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당첨이라고 하기에도 좀 이상하네요. ^^
    제 블로그 방명록에 비밀글로 주소 남겨 주시면 빠른 시일 내로 책 보내 드리겠습니다.
    참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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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읽어보란 것이 이거였쿤…근데 또 2년 후엔 똑같은 고민을 시작해야… 또 그 2년 혹은 4년 후에 똑같은 생각…..또 그 2년 후 쯤에 고민… 입시공화국, 병영공화국, 부동산공화국, 직장공화국, 이 수많은 난간들, 과연 언제쯤이면 고민 멈출날 있을지….고민을 해도 언제 행복한 고민 한번 해볼지.. 너무 우울한 소리만 했나?ㅎㅎ 다만 아수나로 모임에서의 고민이나 친구들 선동하는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긴 하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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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근데 개인적으로 나의 현재의 시각으론 부외고 간 거 잘한 것 같은데 ㅋㅋ 서울 안가고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으니까 서울(중앙)중심운동이 아닌 지역운동에 기여하고 있는 거고, 지금 부외고 친구들 선동 열심히 잘하고 있고ㅋㅋ.. 자신이 어떤 공간에 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의 하는 일’같으니 너무 자책 같은 건 하지 말고, ‘3불논쟁은 허구다’ 이 책도 추천… 나중에 교육관련 서적들 빌려주는 것도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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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선동이라는 게 그러니까… 이런 천민자본주의에선 금기시된 언어긴 한데, 난 선동은 전혀 어떠한 폄하의 목적이나 별뜻을 담고 쓴 언어가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언어로 난 쓴 건데…그러니까 사실 이세상엔 어떠한 행위도 선동이 아닌 것은 없다고 보오. 학교에서 받는 논술수업, 사회수업조차 천민자본주의를 세뇌하는 선동이지만 너무 일상적인 선동이기에 느낄 수가 없는 것이지. 우리들의 행동이 ‘불법선동’으로 규정당한 게 현실이고 체벌 같은 것은 단지 ‘훈육’이 된 것. 기존 사회들이 머릿속에 넣어둔 언어에 대한 의심과 제대로된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봐. 그러니까 자신이 현재 머리속에 품고 있는 언어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재정립할 필요가 난 있다고 보오.(물론 참살이 나 자신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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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러니까 나는 선동을 어떠한 특별한 언어로 쓴 것이 아닌 그대로의 어떠한 폄하나 농담으로 쓴 게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는 일상적으로 선동을 당하고 있잖소. 학교에서 받는 논술, 사회(경제)수업, 국기에 대한 경례도 국가주의, 천민자본주의 맹신을 위한 선동이지만 그것은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그건 선동으로조차 받아들여지지도 않지. 난 자신이 머릿속에 품고 있는 언어관에 대해 끊임없이 재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오.(나도 당근이고)
    ‘선동’이란 말이 불순하거나 기분 나쁜 언어라면 우리는 끝끝내 ‘내란 선전선동을 처벌받는다’던 국가보안법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고 우리의 삶은 저당잡힐 거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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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쓰이는(학교 등) ‘병신’이란 언어를 들으면 난 정말 화가 나고 분노하는 스타일인데, 그건 병신은 본디 ‘몸 어딘가가 불편한 사람’을 조롱-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기 때문이오. 내가 원래 장애인권운동을 하길 희망했던 사람이고 지금은 주가 청소년인권운동일 뿐이지, 장애인권운동에도 발을 내밀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무튼 ‘다수가 규정한(만든) 어떤 특정한 불순한 혹은 금기시된 언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소. 언어 또한 평등해야 민주주의가 아닐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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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전 ‘선동’이라는 단어를 ‘개인의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어떠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미리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제가 그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지요. 인간이 어떠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데에 있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저는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 끝없이 나아가길 바랍니다.

    저도 이 (자본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적인) 사회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선동을 펼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맞서는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두고 ‘선동’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건 물론 앞서 말한대로 제가 ‘선동’이라는 단어를 가치 중립적인 뜻이 아닌, 좋지 않은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설득’이나 ‘호소(號召)’ 정도의 단어로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선동’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제가 ‘선동’이라는 단어의 뜻을 부정적인 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한국의 오랜 기간의 암울한 역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 선동이라는 단어를 굳이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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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음…. 제가 사용하고 있는 이 블로그툴에서는 덧글 수정/삭제 기능을 제공하지 않아요. 덧글 수정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확장도구는 있긴 한데, 굳이 설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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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음 맨날 장학사나 학생부장 애들과 유치한 논쟁만 하다 이런 논쟁을 아수나로에서 하면 재미있지…
    난 운동이 ‘설득’ ‘호소’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내가 선동이란 언어가 개인의 자율권과 자기선택권을 박탈하는 의미로 썼다면 안 썼겠지욤…
    분명 나도 선동이란 언어를 쓰는 빈도는 상당히 낮고 안 쓰려고 노력하는 언어긴 한데, 상황에 따라 그것이 ‘타인에 의해 행해진 행동’으로 폄하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겠죠.
    내가 그냥 서로 평등한 관계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선동이란 언어를 그냥 한번씩 쓸 때가 있는데 그때 내가 쓰는 선동은 ‘함께하는’ 혹은 ‘평등한’ 의미의 선동이라고 말하고 싶. ‘문서나 언동으로 대중의 감정을 부채질하여 일정한 행동대열에 참여하도록 고무·격려하는 행위’ 난 네이버 사전에 의미를 따르고 있는 것일 수도!(퍽)
    뻥이고, 언어는 사람마다 쓰는 스타일이 다른 건데, 이때동안 역사과정을 보면 끊임없이 어떠한 가치들이 누군가들에 의해 훼손되고 기득권화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난 선동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오.
    ps.근데 나, 계몽은 싫어하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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