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문답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한 1~2주 전만 해도 전혀 평안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평안하다.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당연히. 좋아한다는 게 많이 읽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면. (부끄럽다.)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아니 그전부터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때는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좋다. 글쓴이의 생각을 알고 그와 소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 같다. 분명히, 음악에서는 음악가와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매번 다르다. 중간/기말고사가 있는 달은 한두 권 정도. 이번 달에는 다섯 권 읽었다.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주로 인문/사회 관련 책들. 성공하는 방법, 자산운용·부동산 따위의 돈 버는 방법 같은 부류의 책은 초등학생 때 이미 충분히 많이 읽었기에 읽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다.)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내 생각을 열고 글쓴이와 소통하는 과정.

한국의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책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다. 성공하는 방법·돈 버는 방법 같은 책이 많이 팔리는 이유도 그런 책들은 확실한 무언가주기주는 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 보듯, 음악 듣듯 책 읽으면 안 될까?

책을 하나만 추천하시죠?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블로거분들에게서 좋은 책을 많이 알아가기 때문에, 추천해봐야 다들 아시는 책일 것이다. 그냥 내 나이에 맞게(?) 한 권 추천.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치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 정치가 국회의원들만 하는 거라는 생각이 그런 오해를 낳지 않았나 싶다. 책의 내용이 내 마음에 100% 드는 건 아니지만, 추천해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만화책도 책이라 여기시나요?

물론. 나는 인터넷 만화를 주로 보기 때문에, 만화책을 보는 일은 잘 없지만.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아니면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과하다 싶을 만큼 비문학에 치중되어있다.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 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둘에서 별로 재미를 못 느껴(작품성이 있다고 하는 책에서조차도) 읽은 책이 거의 없어서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냥 작가가 하기 나름 아닐까?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다. 가끔은 되어보고 싶다.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상상해서 적어본다면, 나와 소통한 누군가의 반응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겠지.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어려운 질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는 작가가 없어 쓰지 못하겠다. (이 문답 왜 시작했지.)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다섯 명 이상, 단 “아무나” 는 안 됩니다.

왜 항상 다섯 명 이상인 건가. 세 명 이상 정도로 하면,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불만이다. (웃음) 실례가 될지 모르겠다. 부담 갖지 마시고, 하지 않으셔도 상관없다. ZF님, 해밀님, 빵발님, 뽀리군님, camino님께 바톤을 넘긴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시.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읽어본 적이 있지만, 권정생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얼마 전에 이 시를 우연히 보게 되어, 권정생 선생님이 어떤 분일까 찾아보니 17일에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체벌

체벌 없는 교육을 상상하지 못하는 교사도 많다. 그들이 체벌을 선호하는 것은 스스로가 폭력 속에서 성장하여, 아주 어릴 때부터 체벌의 ‘파괴력’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어린이의 고통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심성을 아예 키울 수가 없었다. 또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그것을 학습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체벌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공격적인 행동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집에서 매를 맞는 아이가, 교실의 걸상에 앉아서까지 위험을 모면하는 일에 주의를 쏟아야 한다면, 수업에 집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체념에 빠진 아이는 교사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관찰하며, 피할 수 없는 매라면 차라리 맞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분명히 말하건대, 매와 벌로는 아이의 학습 의욕을 일깨우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의 불안감을 이해해줄 때, 가끔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아이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면, 교사는 아이가 학대 받는 현실을 사소한 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Alice Miller

앨리스 밀러(Alice Miller)가 그의 책 사랑의 매는 없다(Evas Erwachen)에서 한 말. 내가 이전부터 생각했던 것이 그대로 들어 있는 책이었다.

여태껏 수없이 많은 매를 맞았기에, 아이들은 더 이상 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조건반사적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척할 뿐.)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체벌로 인해 받은 정신적 외상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이 약자 위에 군림하고 억압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온갖 트집을 잡으며 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벌주려 한다.

나는 이런 모습이 체벌로 인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남에게 이해받은 적이 없고 사소한 잘못에도 (폭력적인)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에, 남(특히 약자)을 이해못하고 그들에게 를 만들어내고 자신이 받은 그 벌을 떠넘겨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좋은 예일 것이다. (물론 체벌만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늘 매를 맞는 어린 아이가 자신의 동생에게 하는 행동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체벌은 아무런 교육적 효과도 없다. 그것은 다만 아이들이 조건반사적으로 움츠러드는 모양을 보며 자신이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매를 맞고도 당당하게 머리를 치켜드는 학생에게 교사가 취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말을 하더라도 머리를 치켜들고 말하면 어김없이 계속해서 매가 날아들며, 그러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고개를 푹 숙이고 움츠리면 매는 곧 그친다.

교육적 효과도 없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상처만 줄 뿐인 체벌이 왜 필요한가? 나는 체벌에 반대한다. 아이와 부모, 학생과 교사가 체벌이 아닌 대화로 서로를 바꾸는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