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휴식

5월 초까지 잠시 휴식기간을 갖는다. 사실, 휴식기간이 아니라 시험기간이다. (웃음)
고등학교 들어와 첫 중간고사이건만,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5월 초까지 글 쓰는 일은 없을 듯하다.

능청맞게

요새 너무 무거운 글만 쓴 것 같다. 아닌가? (웃음)


우리 학교는 부산·경남 곳곳에서 오는 곳이다 보니, 지난 한 달간 어느 중학교에서 왔는지 물음이 참 많이 오갔다. 나도 몇 번 받았는데, 대부분은 “너 남학교에서 왔니?” 따위의 질문이었다.

아니라고 하면, 내가 여자애들한테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진다며 남학교에서 와서 그런 줄 알았단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저 웃고 만다. 내가 그런가? 하긴, 예쁜 여자애들을 보면 얼굴이 빨개지는 건 사실이긴 하다. 이런 말을 능청맞게 하고 싶긴 한데(웃음), 그저 빙긋 웃고 말 뿐이다. 남들이 다들 나보고 A형 같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이런 능청맞은 말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역시 혈액형으로 성격이 결정된다는(난 B형이다.) 헛소리가 맞긴 맞는 걸까? (웃음)

덧쓰기.
혈액형 테스트는 단순히 재미로 하는 것일 뿐인데 그걸 두고 헛소리라 하는 건 너무했다고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금의 혈액형 유행(요새 좀 시들해졌긴 하지만, 여전히 강력하다.)은 제정신이 아니다.

미학혁명 후기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 첫차는 아니고, 두 번째 차를 탄 듯하다. 보통 때 같았으면 여지없이 졸았을 텐데, 웬일인지 오늘은 잠이 오지 않았다. 전날 밤 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는데….

올 때야 빨리 와야 하기에 KTX를 탔지만, 갈 때야 그럴 필요도 없고, 돈도 없었기에 무궁화호를 탔다. 아침으로 간단히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었다. 그때쯤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도서관에 간다고 한 것치고 내가 너무 일찍 나간 탓이었다. 도서관이 7시가 아니라 6시에 시작하는 줄 알았다고 둘러대곤,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분명히 이번에도 반대하실 게 뻔한데, 나는 집회에 꼭 나가고 싶었으므로.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이런 단체를 규정하는 기준은 제멋대로인듯하다.) 집회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퇴학을 시킬 수 있다고 나와 있는 교칙이 버젓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학교이니(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퇴학은 아니지만, 다른 곳으로 쫓아내 보낼 수 있다고 교칙에 나와 있다. 실제로 적용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걱정하시는 어머니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교칙이 없었으면 나도 이런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니, 이런 교칙 때문에 집회에 참여하려는 거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지하철을 탈 때는 전혀 졸리지 않았지만, 기차를 타니 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속 졸았는데, 그러다가 옆 사람 어깨 쪽으로 머리가 기울어지기도 해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을 자고 나니 이젠 지루해졌다. 음악을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지루해졌다. 지루하게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1년 만에 오는 서울이었다. 서울은 너무나 복잡했고 너무나 광고가 많았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기도 했지만, 지하철 노선도도 정말 복잡했다. 노선도가 복잡하면 좀 많이 붙여두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노선도가 그리 많이 붙여져 있지도 않아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보느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광고는 왜 그리 많은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 광고가 붙어 있곤 했다. 그리 오랫동안 지하철을 탄 것도 아닌데, 그동안 광고를 도대체 몇 개나 본 걸까. 바닥에 광고를 도배해놓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참가한 집회였다. 2시 5분쯤에 도착한 것 같은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해밀님을 만나 어색한 분위기 속에 잠시 서 있다(웃음) 바닥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집회는 즐거웠다. 공연과 노래, 기타 연주도 좋았고. 지지발언으로 예전에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 두 분, 이용석 선생님과 다른 한 분(성함이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 이 분?), 그리고 예비 교사 한 분과 학부모 한 분의 발언이 있었다. 청소년들의 자유 발언 때, 나도 나가 발언을 했었는데, 준비가 되지 않았던 터라 하려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말하려던 내용 순서도 뒤섞이고….

집회 2부를 위해 교육부로 행진했다. 행진할 때 만성님께서 구호를 선창하셨는데, 확성기도 없이 소리를 계속 지르셔서 그러다가 목이 상하시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도 좀 크게 구호를 외치려고 했는데, 그리 잘되지 않았다.

교육부에서 2부를 계속했다. 구호를 외치고, 자유 발언을 계속했다. 학내 활동안내책자를 받고, 풍선을 불어 쓰레기봉투에 넣고 나서 교육부로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는 풍선을 잘 불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풍선을 받아 불어 보았지만 결국 불지 못했다. 물풍선을 던진 것도 아니고, 단지 풍선을 불어 교육부 담 너머로 넘겼을 뿐인데 전경들이 상당히 과잉반응을 했지만,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났다.

집회를 끝마치고 나니 오후 5시. 6시 30분 기차를 타야 했기에 5시 50분 정도에는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해밀님이 식사를 사 주신다고 하셔서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웃음), 뒷정리를 하다 보니 5시 20분이 넘고 말았다. 시간도 애매하고, 식사를 하러 같이 간다고 해도 다 먹지 못하고 나올 것 같아 다른 분들께 인사를 하고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기차 출발 전까지 30분 정도 남았기에,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 기차에 올랐다.

음료수를 살 때 먹을 것도 같이 사려 했지만, 가게 안에 과자밖에 없어 사지 않았었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다른 가게에 가서라도 뭘 좀 사 먹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팠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 온종일 샌드위치와 우유, 음료수 한 병밖에 먹지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배가 고프다. 집에서는 내가 저녁까지 다 먹고 온 줄 아니, 뭘 먹을 수도 없고. (웃음)

집회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을 느꼈다. 학교에서는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억눌려 있는듯한 느낌을 계속 받아왔었는데. 내가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학교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안한 기분도 들었다. 생각보다 기자들이 많았다. 최대한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 했지만, 가면을 쓴 것도 아니고 선글라스를 쓴 것도 아니니 분명히 찍히긴 찍혔을 건데, 편집되길 바랄 뿐이다. (웃음) 자유 발언 때 긴장감에 깜빡 잊고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했는데, 걱정된다. 그때는 이미 발언이 많이 이루어진 후라 내 사진을 찍은 분이 많지 않겠지만. 지금까지는 연합뉴스 TV에 잠시 모습이 비친 것 말고는 내 사진을 보지 못했다. 제발 무사히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후기를 쓰고 나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이만 줄인다.

한심한 프로크루스테스

사회·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쉬크(chic)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사회·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뭔가 유별난 것이 되어 버린 세상인 것 같다.

Moleskine Note 2007.01.12 (일부 수정)


나는 너무나 외롭다. 내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솔직하게 드러내자면, 이성이 필요하다. 나도 멋진 남성이 되고 싶다. 만약 가 내가 정치적이어서 —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 관련 책 —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 게 아니라, 여드름이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면 이렇게 슬프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드름이 없는 멋진 남성이 될 자신이 없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멋진 남성이 될 자신은 더더욱 없다.

이렇게 지난 일을 끄집어내 곱씹고야 말았다. 고백을 거절한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고 끝나버린 내 사랑(내가 정치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한 그의 말은, 직접 들은 것이 아니다.)이 몇 주나 되었다고, 다른 이에게 또다시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리는 끊임없이 아니라고 외치지만, 눈을 감으면 그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분명히 호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 나는 그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아닐 것이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그대가 필요하기에 그대를 사랑하는’, 그런 한심한 좋아함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이번의 그는 과연 정치적(신문을 펴 가장 마지막으로라도 좋으니 사회면 — 정치면이 아니다 — 을 보는 것)일까’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를 진정으로 좋아했다면, 그가 내 틀에 맞길 원하기 전에 내가 그에게 맞추려 노력했을 것이다. 멋진 남성이 되려 노력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여드름?) 그러지 못하는 나는, 단지 내 머릿속 이야기를 말로 털어놓고 내 어깨를 기댈 상대가 필요한 것을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그저 한심한 프로크루스테스일 뿐이다. 나는 그를 좋아할 자격이 없다.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미학혁명 포스터

작년에도 이러한 집회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집회가 있더라도 바뀌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바뀌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참가하려 한다. 남들이 다들 A형 아니냐고 하는 소심하디 소심한 성격이지만, 할 말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만약 이러한 집회가 없다면, 30년은커녕 60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식과 손녀·손자들이 소지품 검사를 두려워하며 어떻게 하면 휴대전화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지 않길 바란다. 이런 일은 우리 세대 이후로 끝나 버리길 바란다. 내 자식과 손녀·손자 세대들이 지금을 마음껏 비웃길 바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21세기 초까지 일어날 수가 있느냐고. 마음껏 비웃길 바란다.

나는 학교가 ‘규율을 잘 따르는 사람’ 이전에 ‘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책임감 있는 사람’을 길러내길 바란다. 규율은 어느 동물이나 다 따를 줄 아는 것이나, 자유는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마음대로 휴대전화를 쓸 거라는 주장은, 학교가 교육이 아니라 사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물론 교육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건 잘 안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학교 교칙은 단지 동물을 편하게 부리기 위한 채찍에 불과하다. 결코, 자유인이 책임감 있게 자발적으로 지키는 규칙이 아니다. 만약 학교 교칙이 자유인의 규칙이라면, 학교 교칙을 바꿔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화는커녕 툭하면 ‘퇴학시키겠다’는 협박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원래 그러니 타협하라고? 나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타협을 했다. 만약 더 타협을 한다면, 난 양심의 가책으로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사육이 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활개를 치는 세상에서 ‘그건 교육이 아니야!’의 ‘ㄱ’ 자도 외치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집회가 끝난 다음주 월요일에 학교에 가선, 두려움 때문에 또 착한 학생 행세를 할 나를 보고, 타협하라고 말하지 마라. 나는 나 자신이 정말 비겁하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타협을 해왔다. 나는 내 자식과 손녀·손자 세대들이 나를 두고 ‘철저한 비겁자’라고 비웃길 원치 않는다. ‘적어도 밟았을 때 꿈틀하긴 했던 지렁이’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비록 내가, 나를 밟는 발을 잘라버릴 용기는 갖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온건한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혁명보다는 개혁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상의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이들은 알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교육은,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내가 다음 주 토요일에 서울에 가고자 교통비를 꾸러 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웃음)

덧쓰기.
집회에 참가한다는,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거창하게 쓰는 것, 보기 거북하시더라도 참아주시길 바란다. (웃음) 내가 이 세상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자괴감에 나온 ‘거창함’인 것 같다.

국기 아이콘 삭제

덧글에 나오던 국기 아이콘을 삭제했다.

첫째로는 (덧글을 남긴 사람의 국적이 아닌, 접속한 국가의 국기 아이콘이긴 하지만) 국가라는 틀로 사람을 나눌 필요가 있는가 하는 코스모폴리탄세계인적인 생각(웃음) 때문이고, 둘째로는 덧글에 뜨는 국기 아이콘이 대부분 South Korea밖에 없어서 달아놓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치 채셨겠지만, 두 번째 이유 때문이다. (웃음) 물론 첫 번째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쨌든, 삭제했다. (정확히 말하면, 국기 아이콘 플러그인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