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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August 2017

[번역] 최초의 성 해방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공장 시스템은 노동계급 가족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땅에서 쫓겨나 산업 시대의 새 공장과 도시로 빨려 들어가며 노동자들의 생활방식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맨체스터의 프리드리히 엥겔스에서부터 런던의 반동적 성향의 작가 로버트 칼라일에 이르기까지 좌파 측과 우파 측 모두에서 많은 평론가들이 정도는 달라로 공포와 경악을 느끼며 그것을 목격했다. 도시와 공장은 농촌 지역을 빨아먹는 흡혈귀 같았다. 도시와 공장은 젠트리가 공유지를 장악함에 따라 땅을 빼앗긴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영국 지주들이 나라 전체를 마른 수건 짜듯 쥐어짠 아일랜드 출신자들도 흡수했다.

19세기 중반이 되자 기득권층의 관심사는 노동자들의 도덕과 신앙이 어떤지 혹은 신앙이 없는지에 관한 것에서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일하고 다음 세대 노동자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지에 관한 것으로 옮겨 갔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본주의 국가와 교회는 노동계급 가족을 재건하기 위한 일련의 입법 활동과 캠페인을 벌였다. 그들은 더 복잡한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더 건강하고 더 믿음직한 노동자가 필요했고, 미래의 노동을 담당할 아이들을 낳고 기를 가족의 수립도 필요했다. 공장과 탄광에서 아동 착취를 제한하고 여성이 아이를 돌보고 기를 수 있도록 보건·안전 규제가 도입됐다. 지배계급은 개별 공장 소유주들이 자유 시장에 대한 제약을 받아들이는 것이 체제 전체에 더 큰 득이자 도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교회(영국국교회,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새 도시와 마을에서는 감리교 등 비국교회 교회 모두)는 죄악과 부도덕한 삶에 반대하는 도덕 캠페인을 벌였다. 노동자들 처지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모두 일하며 기숙 시설에 사는 것보다는 가족과 사생활을 가질 권리를 얻는 것이 투쟁할 가치가 있는 개혁이었다. 그 결과로 생겨난 이성애적 핵가족은 안식처인 동시에 성적·사회적 관습을 구축하는 억압 기구였다.

당시 우세한 강대국이었던 영국은 이러한 변화의 선두 주자였다. 물론 이 변화는 19세기 자본주의 도처에서 발견된 현상이었지만 말이다. 엄격한 도덕률과 행동 수칙을 갖추고 “더 높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복종하는 “점잖은” 노동계급 가족을 창출하는 것이 그 변화의 목표였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모자를 들어 올려 인사하는 노동자가 수많은 소설에 등장했다. 그는 자기 가족 내에서는 주인으로 행동하지만 자기 주인에게는 충성하고 복종하는 분수를 아는 노동자다. 이성애적 핵가족의 등장은 또 다른 결과도 낳았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나 죄악으로 여겨지던 동성애가 하나의 사회적 유형이 된 것이다.

《마르크스21》 20호(2017년 5~6월)에 실린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