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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5 참가기

맑시즘2015 - 위기의 자본주의 대안은 무엇인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맑시즘2015> 참가기를 써보고자 한다. <맑시즘2015>가 개막하기 두 달쯤 전부터, 많은 분들이 ‘맑시즘2014’를 검색해 내 블로그에 들어왔었다. 아마 <맑시즘2015> 참가를 고민하시면서, 이전의 행사는 어떠했는지가 궁금해서 들어와 보신 것 같다. 내년에 있을 <맑시즘2016>에 참가하실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참가기를 쓴다.

올해부터 <맑시즘>은 예년과 달리 겨울에 열리게 된다. 그래서 이번 <맑시즘2015>는 <맑시즘2014> 이후 (1년이 아니라) 6개월 만에 열리게 되었는데, 그 점을 고려해 열리는 기간이 나흘에서 사흘로 줄었다. 1 올해는 다소 짧은 느낌이라 약간 아쉬웠다.

이번 <맑시즘>에서 나는 다음 워크숍을 들었다.

  •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 국가자본주의 이론 ― 스탈린주의 체제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
  • 마리카나 학살 이후, 남아공의 새로운 노동자 운동
  • 박근혜 정부의 법질서 정책, 민주주의 그리고 저항
  • 노동자연대 단체의 기본 입장 ② ― 개혁인가 근본적 사회변혁인가
  • 신자유주의, 한국 노동계급의 변화, 그리고 노동운동
  • 유럽의 정치 양극화 ― 그리스 시리자에서 파리 공격까지
  • 성소수자와 그 아빠가 함께하는 이야기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다”
  • 북한 문제와 좌파 ― 북한은 과연 사회주의 사회인가?
  • 계급이란 무엇인가?
  • 반성폭력 운동과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정치
  •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 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들은 워크숍 개수가 많아 내용을 전부 소개할 수는 없겠다. 2 인상 깊게 들었던 워크숍인 ‘아나키즘과 자율주의’와 ‘북한 문제와 좌파 ― 북한은 과연 사회주의 사회인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강연 내용을 메모해가며 들었는데, 이 메모를 옮긴 것이라 실제 내용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먼저 ‘아나키즘’이라는 낱말을 분석해보자. 아나키즘이란 ‘archy’가 없게 하는 운동, 즉 지배·권위·통치가 없게 하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 상사, 학교 학칙 등에 의해 ‘쪼임’ 당하고 눌려 지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지배·강제가 없는 사회를 위한 운동이라니,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래서 급진화한 청년이 운동에 막 입문했을 때 아나키즘을 자신의 사상으로 택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그 이상을 의미한다. 운동의 목표를 넘어서서, 그 수단 자체도 지배·강제·권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공감할만하다고 느껴질 것이고, 이는 꽤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운동 내 개혁주의자들이 불필요한 타협을 하려 할 때, 이에 항의하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윽박지르는 것을 경험한 적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나키즘에는 난점이 있다. 파업을 예로 들어보자.

파업할지 말지를 투표해서, 투표 결과에 따라 파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는 파업에 반대했었으니 동참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를 그냥 놔두고 그러라고 한다면? 파업은 깨지고 말 것이다.

파업을 지속할지 말지를 투표했다. 파업 지속이 과반을 넘겼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수의 입장이 곧 진리는 아니”라며 이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파업파괴자—보통 ‘대체인력’이라고 부르는데—가 공장에 투입되려 한다면 이를 막아야 한다. 공장 출입문을 막아야 하고, 공장을 점거 중인 노동자들도 밖에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줄곧 이어져 왔는데, ‘피켓라인’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강제력’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모든 강제력을 반대해야 하는 것일까?

아나키즘의 또 다른 특성으로 세 가지 거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국가에 대한 거부인데, 이는 자본주의 국가만이 아니라 노동자 국가도 포함한다. 둘째로 정당에 대한 거부인데, 이는 개혁주의 정당만이 아니라 혁명적 정당도 포함한다. 셋째로 리더십(지도)에 대한 거부인데, 이는 권위적이거나 개혁주의적 리더십만이 아니라 혁명적 리더십도 포함한다.

자율주의도 아나키즘의 일종이다. 아나키즘의 세 가지 거부에 더해 조직 노동자에 대한 반감을 자율주의의 특성으로 들 수 있다.

아나키즘이나 자율주의 같은 것을 표방하는 단체가 있었는가? 있었고, 하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1920년대부터 2008년 촛불 운동까지 역사를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더 광범위한 설명이 필요하다.

아나키즘을 에토스(ethos), 즉 정신·기풍·태도·정서 등으로 본다면 부분적으로 아나키즘 경향을 보이는 사람은 많이 존재한다. 내가(연사) 만나기에,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자신이 아나키스트가 아니라는 사람 중에 오히려 진짜 아나키스트가 많았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서도 실제로는 아나키스트인 사람도 많았다.

아나키스트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국가에 테러 등의 방식으로 폭력을 주저하지 않고 직접 공격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나키즘’하면 떠올리는 인상이고,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도 여럿 있었다. 두 번째로 국가를 피하는 사람들인데, ‘라이프스타일 정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평화적인 아나키스트가 압도 다수를 차지한다.

첫 번째 유형을 먼저 살펴보자. 이들은 자신들이 주장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선전한다고 자처한다. 신채호와 의열단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었다. 과거 노동운동가 중에서도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낭만적 혁명관’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지만, 노동자 국가는 결단코 세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레닌은 국가를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고, 분쇄해야지 고쳐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군대, 경찰 같은 기존 권력이 이를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깨뜨린 후에는 노동자 국가를 세워야 한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이것을 거부하는데, 그 점이 문제다. 왜냐하면, 기존 권력은 쫓겨났어도 다시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병을 고용하거나, 해외와 연계하여 군사적으로 공격해올 수 있고, 경제적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힘을 이용해 목을 조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 경제적 혼란을 자체적으로 조정할 필요도 있고, 세금을 거둬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지를 제공해야 할 필요도 있다.

파리 코뮌의 실험이 이러한 필요를 잘 보여준다. 당시 파리의 지배계급은 베르사유로 후퇴하는데, 이후 다시 쳐들어와 3만여 명을 학살한다. 러시아 혁명에서도 이전의 지배계급은 여러 방법으로 공격해왔는데, 경제적으로 목을 조르고 해외와 결탁하여 내전을 일으키기도 했다.

두 번째 유형을 보자. 이들이 오늘날 아나키스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노암 촘스키, 토니 네그리, 존 홀러웨이 같은 사람들이 그러하고, 한국에서는 박홍규 교수나 조약골 같은 사람들이 있다. 함석헌이나 장정일 씨 같은 사람도 아나키스트라 볼 수 있다. 환경, 교육, 문화, 평화, 종교, 여성 운동 활동가 중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는 편이다. 학술적으로는 수유너머, 다중지성의 정원(자율주의), 갈무리 출판사 같은 곳을 들 수 있다. 미셸 푸코 같은 신니체주의자도 아나키스트라 볼 수 있다.

이들은 노동조합, 좌파 정당 안에도 적잖이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를 들자면, ‘디소베디엔티(불복종)’이라는 그룹이 재건공산당(리폰다치오네) 안에서 활동한다.

가이 스탠딩의 프레카리아트론에 기초한 운동, 단체도 있다. 가이 스탠딩 그 자신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라 좌파 개혁주의자이지만 말이다. 프레카리아트론은 ‘프레카리아트’를 프롤레타리아와 대비시키는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프레카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의 일부이다. 마치 별개의 집단인 것처럼 부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1,700만 임금 노동자가 전부 단결해도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부족한 판에 ‘기존 정규직은 썩었으니 안 된다’? 이는 결국 소수파 운동이 될 수밖에 없고, 힘을 못 낼 뿐만 아니라 노동자 운동을 분열시킨다.

그리고 프레카리아트론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일부 집단을 같은 집단으로 보기도 한다. 예컨대 소상공인과 중소자본가를 포함하는 ‘금융피해자’를 프레카리아트로 규정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는 실천적으로 계급협조주의를 낳을 수밖에 없고,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집단을 하나로 묶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흐리고 결국 개량주의화할 위험이 있다.

아나키즘이 국가에 대한 회피가 불러오는 약점에 대한 예를 몇 가지 들겠다. 먼저 아나키즘 사상을 일부 받아들인 좌파들의 사례다. 2009년 쌍용차 투쟁의 대안을 놓고 좌파 내 논쟁이 있었다. 노동자연대는 당시 쌍용차의 국유화를 주장했다. 국가가 부당하게 정리해고 당할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다른 단체 하나 정도를 빼고는 모두 국유화에 반대했었다.

또 다른 예로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당시 광장을 점거했었는데, 국가가 적당한 시점에 그들을 공격하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국가를 회피해 만든 ‘자율적 공간’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미국의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도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아나키스트의 모든 리더십 거부에 대해 다뤄보겠다. 박근혜의 리더십이나, 온건한 기성정당의 리더십에는 우리도 똑같이 반감이 있다. 그러나 운동에 리더십이란 것이 없을 수가 있을까? 2008년 촛불 운동 당시, 여중생들이 교육 문제와 광우병 쇠고기 등을 묶어서 노래도 만들고 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이 힘을 받아 널리 퍼져나갔고, 거대한 촛불 운동이 일어났다.

모든 운동에는 겉보기에만 ‘자발적’이지 누군가 “합시다!”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리더십이다. 리더십이 없다는 것은 공상이고, 그 공상을 뚫고 개혁주의자 등 몇몇이 운동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역사는 계속 반복됐다. 그보다는 리더를 뽑고, 그가 잘못하면 언제나 소환할 수 있게 하고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리더십을 견제하는 것, 즉 민주적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 대안이다.

아나키즘의 정당에 대한 거부를 살펴보자. 사람의 의식은 결코 고르게 발전하지 않는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투쟁 경험이 다르다. 누군가는 의식이 정체하거나 퇴행하는 반면, 누군가는 의식이 어느 정도 전진해서 개혁적 사상을 가진다. 또 어떤 누군가는 매우 앞서 나가서 급진적 사상을 가진다. 이 모두를 대표하는 정당이라면, 그 정당은 불균등성 때문에 효과적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앞서 있는 소수가 별도로 조직하여, 나머지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지만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혁명 정당의 필요성이다. 그런데 아나키스트는 원래 모든 조직을 반대해왔지만, 2000년대 이후 최근에는 좀 달라졌다. 혁명 정당은 안 되지만 ‘범좌파정당’은 좋다는 식이다.

아나키즘의 조직 노동자에 대한 거부는 앞서 언급한 프레카리아트론에 대한 설명으로 대신하겠다.

정리 발언 3

알바노조와 같은 독자적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당연히 지지한다. 모두가 다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지도부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정규직 노조가 모두 정치적으로 부패했다? 사실과 다르다. <한겨레>가 ‘아름다운 연대’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정규직의 연대를 예로 들고 싶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공감 못 하는 집단이 아니다. 정규직 모두가 썩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 단정적이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좋은 지도력이 있다면 잘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정규직들이 대체로 잘 싸우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 인정할 수 있다. 경제위기 이후 공격을 계속 받고 있고, 자신감이 위축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감에는 굴곡이 있고, 오르내리곤 한다.

22일간 최장기 파업했던 철도노조도 처음에는 자신감이 낮았다. 그런데 어떻게 파업할 수 있었는가? 전교조의 규약시정명령 거부, 학교 비정규직과 택배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이어지면서 영감을 받았고 싸울 자신감이 생길 수 있었다.

정규직을 싸잡아 이야기하기보다는 노동조합 지도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중개하는 중개인의 위치이다. 그래서 어느 때는 나서서 싸우지만, 어느 때는 투쟁을 말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부를 어느 때는 활용하고 어느 때는 뛰어넘을 전술을 고민하는 게 더 유의미할 것이다.

빅토르 세르주라는 아나키스트 출신의 혁명가가 있다. 평전이 있고 자서전도 나와 있다. 아나키즘적 청년들이 자신의 반골 기질을 전투적, 건설적,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게 해줄 좋은 사례를 배울 수 있을 테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북한 문제와 좌파 ― 북한은 과연 사회주의 사회인가?

북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논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얘기해보자.

얼마 전 신은미 씨의 토크 콘서트를 ‘종북’이라며 공안이 탄압하고 우익이 매도하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탄압과 매도에 우리는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탄압은 북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가로막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여기 <맑시즘>과 같은 자리에서는 신은미 씨의 주장을 토론해볼 만 할 것이다. 토크 콘서트를 연 책은 아니고, 신은미 씨가 이후에 출간 계획하고 있었던 기행문이 있다.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간혹 사람들이 ‘우리는 북한 정권과 북한동포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동포들이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은 별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북한 시민혁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 <오마이뉴스>

내 눈에 비친 북한은 전 국토가 요새화돼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수백만 명이 결사항전을 벌이는, 한마디로 ‘빨치산 국가'(partisan state)였다.

이럴수가… “조국통일 만세!” 크게 외쳤습니다, <오마이뉴스>

북한에 명백히 존재하는 계급 지배와 차별을 보지 않는 관점이다.

진보 진영이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또 다른 극단이 있다. 북한이 남한보다 본질에서 못한 사회라는 것이다. ‘봉건제 사회’, ‘전체주의 사회’ 등으로 북한을 묘사하는 경우가 이런 관점에 속한다.

이처럼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진보 진영 내 매우 첨예한 쟁점이다. 진보 정당에 있었던 두 번의 분당에 북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점점 커질 듯하다. 특히 미·중 갈등으로 인한 동아시아 불안정이 심화될 수록 이 문제는 진보 진영에 압력을 줄 것이다. 북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논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또한, 세계 경제는 오늘날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게 진정한 대안이 중요해지는데, 만약 북한이 진정으로 사회주의라면,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타도할 노동계급의 정치적 확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노동계급이 사회를 통제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는 타도되어야 하고, 노동자 국가를 완전히 새로 건설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국유화’ 정도로 흔히 오해되곤 했다. 그러나 국유화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100년도 더 전에 엥겔스도 지적한 부분이다. 만약 국유화가 곧 사회주의라면, 산업을 국유화했던 군국주의 일본도, 나치 독일도 사회주의였다는 말이 된다. 핵심은 국유화된 자본을 누가 통제하느냐이다.

북한에서 노동자 혁명은 일어난 적이 없었다. 소련의 군사력으로 ‘사회주의’가 세워졌다. 오히려 북한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은 소련 탱크에 의해 차단되었다. 북한 관료는 건국 때부터 모든 생산수단과 권력을 장악했다.

모든 자원은 중공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었다. 노동 대중의 소비재에 대한 필요는 희생되었다. GN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9.7%에서 58%로 낮아지는 동안, 투자의 비중은 21.1%에서 35%로 높아진다. 공업 투자의 80%가 중공업에 투자되었다. 그 결과 소비재 투자가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53년 62%에서 1984년 34%로 떨어지는 동안, 생산수단에 투자하는 비중은 38%에서 65.4%로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북한 경제가 잘 나갈 때조차 소비재의 질은 떨어졌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노동자의 희생에 바탕을 둬 엄청난 축적이 이뤄졌다. 1949년 국민소득을 100으로 놓았을 때, 1964년 국민소득은 479로 대폭 뛴다. 그러나 1949년 실질임금을 100으로 놓았을 때, 1964년 실질임금은 고작 218이 되었을 뿐이다. 이는 북한의 공식 통계에서 나온 것인데, 공식 통계조차 이러하다.

북한에서 노조 결성이나 언론, 집회·결사의 자유는 애초에 주어진 적이 없었다. 주민통제를 담당하는 ‘인민보안성’은 국가공무원의 40%를 차지한다. 다른 정보 인력을 빼고도 이 정도 수준이다.

평양화장품공장의 사회주의 경쟁실적판
평양화장품공장의 사회주의 경쟁실적판. ©민족21 정창현.

북한에는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사실과 다르다. 사진을 보면 ‘사회주의 경쟁도표’라고 적혀있다. 공장별로 실적 경쟁을 시키는 건데, 이걸 통해 성과급을 준다. 직장에 다녀보신 분이라면 ‘성과급’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아실 것이다. 북한은 성과급제를 일찌감치 도입했었다.

이처럼 북한은 노동자·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했다. 1970년대 초에는 2~30%대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는데,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나가는 국가로 여겨졌다. 북한 관료를 추동했던 최우선순위는 남한과의 군사 경쟁이었다. 이를 위해 처음부터 매우 과도한 목표를 잡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당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기에, 국가가 자본주의를 통제하는 것은 그리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이러한 경향이 지배적이었는데, 강력한 국가가 자원을 집중해 경제에 쏟아붓는 식이었다. 이집트의 나세르, 남한의 박정희 등이 대표적이다. 이것을 ‘국가자본주의’라고 하는데, 북한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국가자본주의의 한 극단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는 근본 모순이 있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투자 대비 평균 이윤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7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게 된다. 또한,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국가자본주의에서 ‘세계화’로 나아가는 경향이 생겨난다. 북한은 여기에 뒤처지게 된다.

북한 관료들이라 해서 이런 변화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1970년대에 이미 외자 도입을 시도했고, 수출을 늘렸다. 그러나 당시 있었던 세계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고,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게 된다. 결국, 북한 관료들은 옛 타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이후 국가자본주의와 세계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런데 1990년대 냉전 해체 시기에 북한이 빗장을 열려 하자, 미국이 이를 재빨리 닫아버린다. 북한의 결정적 위기였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공식 경제성장률을 발표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정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내내 북한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북한 GDP의 30%가량이 날아간 것으로 추정한다. 거기에 장마 피해까지 겹쳐,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사했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는 겉보기에는 부드럽게 이뤄졌다. 그래서 당시 일부 학자들은 북한 체제가 당분간 안정될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예상은 옳지 않았다는 것이 장성택 숙청이 잘 보여준다. 장성택 숙청 과정은 북한 대중이 어떠한 불만을 느끼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보면 “생활비(임금)적용문제를 비롯 … 평양시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 …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 등을 장성택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 2009년의 화폐 개혁 실패도 언급하는데,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라는 것이다. 여러 문제에서 관료 내 갈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1988년과 2010년 북한 주요 산업 생산실적 비교
1988년과 2010년 북한 주요 산업 생산실적 비교. ©레프트21.

북한 경제는 2000년대에는 조금 회복했으나, 북한 스스로 내세우는 ‘강성대국’ 목표조차 1988년의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여러 지표에서 1988년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 비중 추이
북한의 대중국 무역 비중 추이. ©레프트21.

북한은 대외 무역 비중을 계속 늘려왔다. 이는 또 다른 취약점을 불러오는데, 바로 북한 경제가 세계 경제의 등락에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 경제는 중국 경제의 사정에 달려 있고,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도 커져 왔다. 유출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면, 김정일이 북한을 ‘동북 4성’이라 자조할 정도였다.

7ㆍ1조치로 인한 물가 인상
7ㆍ1조치로 인한 물가 인상. ©레프트21.

7ㆍ1조치로 물가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쌀 가격이 550배, 옥수수가 330배, 주택사용료(북한에서 주택이 공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한 채당 5~10원에서 무려 한 평당 7~15원으로 올랐다.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가능한지 회의하는 분이 많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매우 좋지 않은 경제 사정을 오래 겪었기에 노동계급의 자신감이 높지 않고, 미·남의 군사적 압박을 북한 지배계급이 내부 단속용으로 사용하기에, 이 두 가지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좀 더 개념·원리적으로 얘기해보고 싶다. 북한 또한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피할 수 없다. 북한의 경제 위기는 경직된 관료 체제를 내부로부터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로 인해 아래로부터 저항이 가능할 ‘틈’이 보이게 될 것이다. 2011년 아랍 혁명처럼 동아시아에서도 저항이 분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에서의 커다란 저항이 예상되고, 이는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그리 긴 미래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정리 발언

무엇보다 자본주의는 세계 체제다. 한 국가를 분석할 때도 그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본은 ‘관계’로 규정되는데, 두 가지 관계를 말한다. 첫째로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임노동 관계이다. 둘째로 다수 자본 간의 경쟁 관계이다. 이러한 세계적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동역학을 이해할 수 있다. 자유주의 학자들도 정치·외교적인 면에서 남북이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지적하곤 한다. 그리고 경제적 관점에서 이를 보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투표, 국민토론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나라가 있는가? 없다. 모든 나라가 철저한 비밀주의를 통해 핵무기를 만들고, 이는 군부의 위상을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핵무장을 하는 나라는 그 본질에서 반민주적이다. 민중이 자신의 안전을 결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나라다. 이러한 비민주적 행위를 가장 먼저 저질렀고, 가장 많이 저지르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에 대항하여 나온 것이 북한의 핵무기다. 이렇게 균형 있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미 제국주의의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북핵을 비판해야 한다.

남한의 국가인권위는 국제적으로도 다른 나라의 인권위들에게 “쟤네와는 같이 못 하겠다”며 따돌림당하는 상황이다. 이런 나라가 ‘북한 인권’을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 논란은 인권과 민주주의가 외삽(外揷) 가능한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자유북한방송’ 같은 것은 냉전 시기 서방이 동유럽에 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한 독일 학자가 냉정히 평가하길, (헝가리 혁명, 연대노조 운동 같은) 동유럽의 위대한 저항운동에 이러한 단파 방송은 전혀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방송은 저들 지배자가 저항운동을 매도하는 것을 쉽게 만들고, 제국주의적 압력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저항은 노동계급 대중이 자주적으로 스스로 나서야 할 문제다. 북한 인권의 향상을 바라지만, 결의안이나 법 같은 것에 찬성할 수 없고, 오히려 반대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의 군사 행위는 옹호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짓이고, 한반도 긴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가 왜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큰 시각이 필요하다. 1999년의 나토의 코소보 공습, 미국의 북한 핵무기 의심시설 사찰 등 긴장이 높아지던 속에 서해교전이 일어났다. 천안함, 연평도 등은 서해에서 미·중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이명박이 이에 화답하던 차에 일어났다. 우리 쪽 지배자에 반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북한으로 남한 문화가 흘러들어 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문화의 교류는 좋은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남한은 북한 문화를 받을 수가 있는가? 공식적, 합법적으로 접근할 방법은 없다. 북한 방송 청취는 국가보안법의 위반사항이다.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듣고 남한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하듯이, 남한에서도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우익이 주장하듯 남한 문화의 유입이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보지는 않고, 이러한 주장에는 비판적이다.

북한의 진정한 사회 변화 가능성은 거시적 차원에서 볼 때 중국과의 관계에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북·중 관계를 핵심으로 지적하며 ‘한반도 북부와 만주는 언제나 비슷한 운명을 겪어왔다’고 한 바 있다. 이 두 지역은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유사성이 크다. 그리고 탈북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중국에 건너가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동북부 지역은 노동자 운동이 강한 지역이다. 여기서 저항이 커져서 중국을 흔든다면, 그 저항은 압록강을 건널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 투쟁은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개별 투쟁들이 일반화된 투쟁으로 발전한다면 북한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은 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맑시즘에 5년째 참가하며

2011년부터 <맑시즘>에 매년 참가해왔으니, 올해로 5년째이다. 참가할 때마다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느끼는데, 비슷한 주제의 워크숍을 여러 번 들으면서 이전보다 그 주제에 대한 내 이해가 풍성해졌음을 깨달을 때 특히 그렇다. 게다가 비슷한 주제를 여러 번 들을 때도 배워가는 것이 있지만, 아직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주제가 여전히 많기에 더욱 많이 배운다.

<맑시즘>에 참가하기 이전에도 여러 진보 인사들의 강연회에 자주 참가했었다. 늘 배울 게 많았는데, 요즘에는 예전보다는 그런 강연회가 줄어든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점에서 몇십 개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맑시즘> 같은 포럼이 매년 꾸준히 열린다는 점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장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바로 ‘청중 토론’ 시간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다른 강연회에서는 대체로 강연을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고, 짧은 질문을 할 시간 정도만 주어지거나 그마저도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맑시즘>에서는 청중들이 나와서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리한 질문도 많이 나오는데, 그러한 질문에 연사뿐만 아니라 다른 청중들이 답하시는 걸 들으면서도 많이 배운다.

나도 이번 <맑시즘> 때 청중 토론 시간에 많은 이바지를 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분의 질문에 답하려 시도해보기도 하고, 주제에 관해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기도 했다. 워크숍을 듣던 중 생긴 궁금증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내 발언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더라면 좋겠다.

지난해 참가기에도 썼듯이, <맑시즘>에 참가할 때마다 활력을 재충전하게 된다. 이번 <맑시즘>에 다녀온 후로는 노동자연대의 다른 회원들과 현대 자본주의 개설서인 «좀비 자본주의»를 주제로 책 읽기 모임을 해보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맑시즘> 포럼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라는 급진적 사상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언제나 가슴이 뛴다. <맑시즘> 포럼에 참가를 고민하는 분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다음번에는 <맑시즘> 행사장에서 만나자고 권하고 싶다.


  1. <맑시즘2016>부터는 다시 나흘로 돌아갈 것 같다.
  2. 이번 <맑시즘>에서는 워크숍이 전부 다 합쳐 약 40개 정도가 열렸다.
  3. <맑시즘>에서는 연사가 발언한 이후, 청중 토론을 한다. 그 후 청중 토론 시간에 나온 질문과 주장 등을 바탕으로, 연사가 정리 발언을 한다. 청중 토론 시간은 메모하지 않아 옮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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