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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봤다. 다양한 평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트로츠키가 자서전 «나의 생애»에서 학생 시절을 되돌아보며 쓴 구절이 떠올랐다.

이상이 말하자면 내가 겪은 첫번째 정치적 시련이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다음과 같은 그룹이 형성되었다. 즉 한쪽에는 고자질쟁이와 질투심이 강한 그룹이, 그 반대편에는 표리가 부동하지 않은 용감한 소년 그룹이, 그리고 중간에는 중립적이고 늘 동요하는 우유부단한 그룹이 생겼다. 이 세 그룹은 훗날에 이르러서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후의 인생에서, 실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여러 번 이런 그룹들을 만났다.

안형우에서 재인용.

주인공 산드라를 포함해도 생산직이 17명밖에 안 되고 비서 등 여타 노동자를 다 합해도 얼마 되지 않을 듯한 작은 작업장을 배경으로 해서, 더욱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다.

주인공이 우울증으로 휴직했다가 어느 정도 회복해서 복직하려 한다는 설정도 좋았다. 우울증을 겪어본 입장에서, 일희일비하듯 왔다 갔다 하는 산드라의 심정과 행동에 공감이 많이 갔다. 산드라보다 훨씬 덜한 수준의 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고 내가 남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건 참 괴로운 경험이었다.

결국, 사장은 투표에 부쳤던 두 선택지 전부 들어줄 수 있을 여유가 있었던 셈인데, 끝까지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서로 갈라서게 하려고 하는 모습에 분노스러웠다. 그래서 산드라의 단호한 거절은 더욱 빛나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옆에서 누군가가 함께 영화를 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현실은 이보다 더해.”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표리가 부동하지 않은 용감한 소년 그룹”이 뭉쳐서 함께 행동해야 할 필요가 커진다. 줄리엣이 비록 미숙한 형태지만 열렬한 지지와 도움을 주었듯이 말이다. 그래야 “[산드라의 복직에 투표하기로 결정한 동료가] 나 말고 또 누가 있어?”라고 하나같이 묻는, 중간의 “중립적이고 늘 동요하는 우유부단한 그룹”을 설득하고 끌어당길 수 있다.

작업반장이 투표를 앞두고 몰래 협박을 하고 전화를 돌리는 것처럼, 세상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비밀투표 같은 방식은 그리 썩 좋지는 않다. 1 강자에게서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를 보장해주는 듯 보이지만, 영화에서 재계약을 앞둔 계약직 노동자 알퐁스가 걱정하듯 이는 생각보다 잘 보장되지 않거니와, 오히려 사람들을 원자화시킨 상태에서 세상의 압력만 그대로 받는 채로 선택하도록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드라가 주말 내내 동료들을 만나러 다니지 않았다면 투표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뭉쳐야 하고, 원자화된 방식이 아니라 집단적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물론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 이사할 때 필요한 집기를 사기 위해 친했던 동료의 복직을 버리는 사람, 복직에 투표하겠다는 동료의 멱살을 잡는 사람(트로츠키의 비유로는 “고자질쟁이와 질투심이 강한 그룹”)마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가능성 있는 해결 방식이다.


  1. 산드라의 경우 투표가 아닌 다른 방식을 택하게 할 힘이 충분치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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