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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August 2014

맑시즘2014 참가기

위기의 시대, 대안을 찾아서 — 맑시즘2014

지난 8월 7일부터 10일까지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맑시즘2014>에 참가했다. 14년째 열리는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맑시즘>에 참가한 것도 이번이 네 번째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가했으니 말이다.

나는 주최 단체인 노동자연대 1에 2011년 1월경에 가입했다. 가입 이전인 2008년부터 이 단체를 알고 있었고 이 단체가 매년 여는 <맑시즘> 포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작 가입 전까지 <맑시즘> 포럼에 참가한 적은 없었다. 다양한 진보 사상에 관심이 있었던 데다가 <맑시즘>이 다양한 연사가 참석하는 대규모 포럼이라 한 번쯤 가보고 싶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맑시즘>에는 노동자연대 가입 이후에야 참가하게 되었는데, 첫 참가부터 그 매력에 매료되었었다. 그 이후 매년 여름마다 <맑시즘>에 참가하고 있는데, 참가할 때마다 여름 휴가를 다녀온 것마냥 활력을 재충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맑시즘> 참가 소감을 글로 적어 좀 알리고 싶다. 물론 내가 주최 단체의 회원이다보니 ‘제3자’의 입장에서 쓴 글일 수는 없기에 고민스러운 부분도 없진 않다. 하지만 단체 구성원의 입장에서 쓰는 소감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겠나 싶어 적어본다.

이번 <맑시즘>에서 나는 다음 워크숍을 들었다. 2

  • 국가자본주의 ― 옛 소련과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
  • 레닌의 사회주의 정당 이론
  • 비고츠키와 인간 발달 (패널 토론)
  • 위기, 곳곳의 세월호, 노동자 저항
  • 극단적으로 변하는 날씨,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패널 토론)
  • 1920년 이탈리아: 공장 점거 운동과 그람시
  •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 «자본론» 코드 풀기
  • 진보정치의 재건 ― 전망과 과제 (패널 토론)
  • 내란음모,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국가보안법 그리고 정치 사법
  • 역사유물론 ━ 저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
  • 파시즘, 유로 파시즘, 인종차별적 포퓰리즘
  • 오늘날 제국주의를 이해하기
  • 우리의 연금, 어떻게 지킬 것인가? ― 쟁점과 대안 (패널 토론)
  • 세월호 참사의 진상과 원인 그리고 대책은 무엇인가
  • 박근혜의 교육 공격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패널 토론)
  • 북한 사회의 진정한 성격 ― 국가자본주의
  • 오늘날 국제 계급투쟁

이렇게 갯수도 많고, 다양한 범위를 다루고 있다보니 내가 들은 워크숍의 내용을 전부 소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억에 많이 남고 꼭 알리고 싶은 내용을 위주로 돌아보고자 한다.

국가자본주의 ― 옛 소련과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

부산에서 새벽 6시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한 후, 처음 들은 워크숍이다. 주최 단체 노동자연대는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트로츠키주의 등을 이론적 바탕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중 다른 사회주의 단체와 구분되는 이론 중 하나가 ‘국가자본주의’ 이론이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옛 소련과 북한 사회 등은 단지 정치적 요소에서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소에서조차 ‘사회주의’가 아니며,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1948년 처음 주창되었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처음으로 주장된 책 «State Capitalism in Russia»(한국어판 제목: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는 1948년에 출판되었다. 연사가 워크숍 시작부에 말한 내용을 인용하자면,

혹자는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급조된 이론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특히 남한에서는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1991년 소련 몰락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알려지다보니 3 이러한 주장이 사실인양 받아들여져 있는 면이 꽤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나는 이 부분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소련을 모종의 사회주의라 여기던 사람들은 혼란을 겪었고, 많은 이들이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에 의심을 보내는데는 이러한 경험이 짓누르고 있는 역사가 있다. 그러나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련을 의심하던 194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이러한 비판적 이론이 나왔었고 이 이론이 쭉 살아 남아 1980년대 말부터 이어진 동유럽과 소련의 몰락을 설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무언가 ‘희망’을 주지 않는가?

청중 토론에서 누군가가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맑스를 소련으로부터 구출하기’ 프로젝트인 것 같다고 말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우리는 소련의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구출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이 (1991년 이후의) 사후정당화가 아니라, 1948년부터 60여년간 이어져온 사전 프로젝트라는 것을 봐야 하지 않을까?

스탈린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는 다르다. 힘을 갖고 있는 나라는 자신의 체제를 다른 나라에 강요할 권리가 있다.

이 말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사상인 ‘노동계급의 자기해방’과 많은 차이가 있다. 노동자 국가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스스로 지배계급으로 새로 조직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사례만 봐도 어떤가?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힘으로 일본인들이 버리고 도망간 공장을 접수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조선 노동계급의 공장위원회가 확대 중이었다. 그러나 해방 직후 한반도에 들어온 소련의 탱크는 이것을 지원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억누르는 방식으로 북한을 세웠다. 북한의 탄생에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북한 같은 국가가 ‘사회주의’일 수 있는가? 만약 사회주의가 아니라면, 이를 탱크를 앞세워 ‘수출’한 모국은? 이런 문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니 ‘혁명 수출의 모국’인 소련에 대한 분석에 이른다.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러시아 혁명 이후, 14개국의 자본가 계급이 러시아를 침략하며 전쟁을 일으킨다. 혁명 러시아는 전쟁을 거치며 노동계급 투사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이후 독일 혁명 4 등 주변국의 혁명이 실패하면서 고립되며 어려움을 겪는다.

‘노동계급 없는 노동계급의 국가’ 러시아에서 관료 집단이 부상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혁명 러시아의 진로를 놓고 논쟁하면서 러시아 공산당은 세 분파로 분열된다. 세 분파는 당시 기반하던 세력이 각각 달랐다. 당시 ‘중도파’라 불리던 스탈린은 관료 집단을 기반으로 했고, ‘우파’ 부하린은 부유한 농민(과 관료 일부)을 기반으로 했다. 그리고 ‘좌파’ 트로츠키는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했다.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없던 새로운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지 않고도, 일국에 고립된 상황에서도,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분파 투쟁에서 트로츠키의 좌익 반대파는 분쇄되고 만다. 관료와의 싸움에서 좌익 반대파는 (노동계급이 내전을 거치며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이었기에) 세력을 동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28년경부터 반혁명이 시작되었고, 피의 숙청이 이루어졌다. 노동계급의 파업권과 단체협약권 등은 사라졌다. 노동조합은 산업부문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역할만 하게 되었고, 여행의 권리도 사라진다. 그 결과 1928년 착취율은 28% 정도였는데, 1936년에는 110%로 오르고 이는 서방 자본주의 국가의 착취율보다도 30% 높은 것이었다. 5

이러한 반혁명의 결과에 따라, 14개국이 침략해온 내전 하에서도 (노동계급의 필요를 위한) 소비재 생산이 많았던 반면 1928년 이후에는 소비재 생산은 급격히 떨어지고, 외국과의 경쟁에 종속된 생산이 이루어진다. 이는 내전이라는 참혹하고도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노동자 통제 하에 있던 산업 생산이 반혁명 이후 더 이상은 그러지 못하고 관료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좌파들이 “그래도 소련은 사회주의”라는 믿음을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 산업의 국유화가 유지되었다는 것.
  2. 정치적으로 공산당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

국유화가 곧 사회주의라는 것은 오늘날도 여전히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믿음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국유화는 소련 사회만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시기에 다양한 나라에 존재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학자들은 박정희 시절 남한 산업의 70~80%가 국유화되어 있었다고 본다. 박정희는 남한을 70~80% 정도 사회주의로 만든 셈이었는가? 더 분명한 예를 보자. 나치 독일은 산업을 100% 국유화시켰다. 나치는 사회주의를 이룩한 것인가?

산업의 국가 소유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자본주의 발전 단계 상에서 어느 나라든 있었던 시기였을 뿐이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국가 주도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소련·중국만 그러했던게 아니다. 심지어 미국조차 1941년~1945년 전시경제시기에는 산업을 대부분 국유화시켰었다.

다른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소련 국내에는 시장이 없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든 나라와는 좀 달라 보인다. 하지만 연사는 중요한 것은 경쟁의 형태가 아니라 경쟁의 존재 자체라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기본 동력인) 경쟁적 축적이 목표였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이 국내적 경쟁이냐 국제적 경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련에는 국내적 경쟁은 없었지만, 소련 경제에서 국제적 경쟁은 매우 중요했다.

또다른 반론이 있다. “소련에는 임금 노동이 없었지 않았느냐.” 연사는 이것은 간단히 얘기해서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소련 스스로도 자국내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했었다. 게다가 소련 사회는 높은 이직률과 낮은 임금으로 대표되었다. 노동자들은 파업권과 교섭권이 없는 대신 이직을 통해 자신의 교섭력을 낫게 하고자 했다. 관료들은 자기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질 좋은 노동자를 데려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배경에서 소련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의 수십 배 이직률을 보였다.

대부분의 좌파는 소련이 존속하던 때 소련에 비판적이든 그렇지 않든 소련의 경이로운 경제 성장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소련은 사회주의적 발전을 하고 있었기에 자본주의적 모순에 직면치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소련 또한 자본주의의 일부이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이는 1991년 소련 몰락으로 입증되었다.

소련 몰락 과정을 보면 지금의 자본주의 러시아가 이전의 소련 사회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KGB와 군대 같은 억압기구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산업 부문을 관리하던 관료들은 새로운 회사의 사장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푸틴 같은 자가 KGB의 관료 출신이었다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소련의 변화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반혁명’ 같은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이 지적했듯 사실상 ‘옆걸음질’이었을 뿐이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바로 서방 자본주의가 소련·북한보다 낫지도, 반대로 소련·북한이 서방 자본주의보다 낫지도 않은, ‘똑같은 자본주의’였다는 것이다.

1920년 이탈리아: 공장 점거 운동과 그람시

이 워크숍에서는 1919년~1920년 이탈리아의 붉은 2년을 살펴보았다. 나는 이러한 역사가 널리 알려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가 갖고 있는 함의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러시아 혁명은 기억하지만, 그 이후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혁명이 ‘전염’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러시아 혁명이 일국에서 고립되고 결국 타락하고 말았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다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러시아 혁명 직후 일어난 이탈리아에서의 붉은 2년의 역사 또한 그 가능성을 힐끗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당시 유럽 전반의 분위기였던 것이다.

또한 이탈리아의 역사는 혁명은 이렇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혁명적 정당이 미리 건설되어 있지 않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자의 의식은 급격히 변화할 수 있지만, 몇 달 정도의 혁명 기간 내에 다수의 의식이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미리 준비된 사람들이 없다면 기존의 세력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혁명을 가로챌 것이다. 이탈리아 공장 점거 운동의 지도자였던 그람시는 이 필요성을 빠르게 실행에 옮기지 못해 붉은 2년이 혁명으로 더 커지며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고, 혁명의 기운이 사그라든 후 자본가의 반격이 시작되어 파시즘이 집권해 감옥에 갇힌 후 이를 후회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붉은 2년은 혁명의 동역학을 보여주는 듯하다. 붉은 2년이 그 자체로 혁명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필요를 위해 투쟁에 나선 것이 어떻게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과정이 여기에 담겨 있다.

공장을 점거한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은 특정한 생산을 유지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 6한다. 공장을 멈추는 것뿐만 아니라, 빵과 같은 소비재를 생산할 필요는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을 자본가들의 통제 하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적으로 조율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조율은 공장 하나를 넘어 공장간, 그리고 사회 전반의 조율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모든 혁명에서 사회 전반을 조직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조직이 등장했었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등장했던 소비에트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집단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이전까지는 자본가의 지배 하에 일하느라 자신이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단적) 지배계급으로 스스로 조직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 노동자들은 모든 가능성을 다 시험해보고 나서야, 자신들 외에 그 누구도 사회를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권력을 스스로 쥐려고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전 사회에서의 무력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전에 사회를 운영하던 자들이 그 과정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회를 통제할 필요성을 빠르게 느끼고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옛 지배계급은 다시금 돌아와 이전의 영광을 그대로 이어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혁명 기간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노동계급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력감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해 미리 준비되어 있는 조직이 혁명 이전에 결성되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오늘날 제국주의를 이해하기

이번 <맑시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워크숍이었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기에,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제국주의에 관한 ‘상식’,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의미는 제국주의가 ‘한 강력한 국가의 깡패짓’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깡패짓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했다. 로마 제국이 있었고 중국 제국이 있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 좌파 중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상식을 기반으로 하여 제국주의를 판단하고 있다. 오늘날 제국주의는 곧 ‘미국’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 이해와는 거리가 멀고, 심각한 정치적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견해이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에서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의 특정한 단계로 분석했다.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만나는 곳에 제국주의가 있다. 이 중 경제적 경쟁은 자본주의의 주된 동력이며,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이윤을 축적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지정학적 경쟁은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 자체보다는 더 오래되었다. 과거 로마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과 경쟁했듯이 말이다. 국가들간에 더 많은 영향력을 얻기 위한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이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서 지정학적 경쟁은 자본주의적으로 포섭된다. 자본이 집중되고 커지면서 자본은 국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본가들의 경제적 경쟁도 국제화된다. 자본가들은 국제적으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의 국가에 기대기 시작하고, 각 국가들도 더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자국 자본에 기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본은 점점 국가가 필요하게 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져 있는, 자본에게는 국가가 필요없다는 식의 환상과는 달리 말이다.

19세기 말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영국은 독일과 미국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접하게 된다. 20세기 초가 되면 독일과 미국의 경제는 영국을 앞지르게 되고, 영국의 해군력 또한 앞지르게 된다. 그 이후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영국에 대한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이 갈마들며 벌어진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한 강대국이 나머지를 지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국주의는 주요 세계 자본주의 강대국의 경쟁 시스템을 뜻한다. 영국과 독일, 미국의 경쟁에서 볼 수 있듯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국가가 똑같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특정 지역이 유난히 빨리 발전하는 경향이 있고, 특정 지역 강대국이 나머지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역동적인 체제이다 보니 어느 지역이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치게 될 지는 계속 달라진다. 그래서 국가들간 경쟁은 사라질 수가 없다.

칼 카우츠키는 초제국주의 이론을 주장하며 초국적적으로 통합된 자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 정치에 이것이 반영되어 지정학적 경쟁은 사라질 것이라 여겼다. 오늘날 네그리 등의 «제국»과 같은 책도 비슷한 이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레닌은 국가간 불균등한 발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정학적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주장했다.

레닌은 독일이 영국의 지위를 위협하며 유럽의 맹주가 되기 위해 경쟁하는 새로운 강대국이 되기 5,6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후진국이었음을 지적한다. 불과 5,60년만에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세계 체제의 유동성 때문에 국가간 관계가 안정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많은 좌파가 미국이 유일한 제국주의라 생각하는 것일까? 두 가지 착시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1. 구소련이 사회주의였다는 오해가 있다. 때문에 많은 좌파들이 냉전 당시 소련과 미국의 경쟁을 제국주의간 경쟁으로 보지 못했다. 그 영향력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때문에 러시아가 미국보다 뭔가 낫다는 환상이 남아있다.
  2. 냉전이 종식된 직후 세계가 잠시 단극체제로 보인 때가 있었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고, 누구도 이에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상황이었을 뿐이다. 미국은 여전히 군사력으로는 압도적이지만, 특히 오늘날 경제적 지위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와 중국이 미국의 경제적 지위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2003년 미국은 하락하고 있는 자신의 세계 지배력을 굳히려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2011년 일어난 아랍 혁명은 중동 지역 모든 국가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지금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다. ISIS는 매우 반동적인 자들이지만, 이런 자들이 중동에서 활개칠 수 있게 된 건 미국의 지위 하락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미국의 지위 하락은 더 중요하게는 동아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무역투자에 힘입어 아프리카와 남미가 미국이 아닌 중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인근 해역에서 미국 해군을 몰아내기 위해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태평양을 지배해왔는데, 중국의 무역 수출입로는 미국의 통제구역 내에 있다. 그리고 중국 지배계급은 이걸 꺼려하며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남중국해 등에서 일본 등과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다. 때문에 동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가 군사력을 증강 중이다. 세계화 이데올로그들은 더 이상 영토 경쟁은 없을 것이라 주장했는데도, 세계화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지역에서 무인도를 둘러 싸고 전통적 영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인도를 둘러싸고 커다란 영향력의 세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 중국, 일본이 맞붙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전쟁을 벌이는 미치광이 짓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분명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제국주의적 경쟁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도 이러한 배경 하에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를 자기 영향권 내로 들어오게 하려고 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영향권에서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어느 쪽이든 우크라이나 민중에게는 끔찍한 일이다.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제국주의 국가이지만, 미국의 전세계적 지위 하락이 러시아가 이렇게 강하게 나올 수 있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에서도 발을 빼고 있던 미국 입장에서는 악몽 같은 일이다.

제국주의의 체계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 국가만 제국주의라 이해할 경우 심각한 정치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좌파의 상당수가 냉전 시기 ‘진영 논리’를 많이 따라갔다. 미국 제국주의 블록에 맞서는 모종의 ‘진보적 국가들’이 있고 좌파는 이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소련 지지 등으로 나타났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등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였음에도 좌파들은 이를 간과했다.

오늘날에는 두 가지 형태의 ‘진영 논리’가 좌파들 내에 존재한다. 첫째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편을 드는 것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지지하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가 옛 식민지를 되찾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꼴이다. 두 번째로 시리아에서 아사드를 지지하는 행태이다. 아사드는 이스라엘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악독하게 다룬 역사가 있다. 무엇보다 자국민 수십만 명을 죽인 자를 지지하는 꼴이다.

혁명가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원칙에 입각해서 반대해야 한다. 제국주의는 어떨 때는 단극 체제로서 작동할 수도 있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그렇다. ISIS는 매우 반동적이지만, 이를 폭격하는 미국이 훨씬 더 큰 악이다. 우크라이나와 동아시아에서는 다극 체제로 작동한다. 다수의 제국주의 국가가 경쟁하고 있다. 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억압에 저항하는 약소 민족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 예컨대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있다. 이를 지지할 때는 1916년 아일랜드의 민족 해방 투쟁을 레닌이 취급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 민족 해방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투쟁을 통해 제국주의를 끝장낼 수 있기 위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

청중 토론에서 한 동지가 제국주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몇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좋은 보충 설명이 되었다. 먼저 일본을 제국주의로 파악하지 못한 조선 개화파가 있다. 이들은 결국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인 갑오농민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일본이 ‘개화’를 가져올 것이라 봤다. 일제시대 기독교도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 제국주의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은 소련을 제국주의라 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조선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 탱크를 모종의 해방으로 보는 오류를 저질렀다. 최근의 사례로는 티베트의 해방 투쟁에 대한 일부 좌파의 태도가 있다. 중국을 제국주의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티베트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국제 계급투쟁

폐막식을 겸해 이뤄진 이 워크숍에서는 오늘날 이데올로기적 급진화가 실제 행동에 미치고 있지 못한 현실을 분석하고자 했다. 오늘날 경제 위기는 1930년대에 비견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매우 심각하고, 많은 이들이 이러한 현실에 고통받으며 분노하고 있음에도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은 1930년대와는 다른 점이 여럿 있겠지만, 당시에 비해 노조 관료의 주도력이 훨씬 크다는 것이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정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구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지속적으로 다시금 하락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한다. 노동자들이 노조 관료를 뛰어넘어 투쟁하지 못하기에 투쟁은 노조 관료에 의해 잦아들고,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다시금 자신감을 잃고 노조 관료를 뛰어넘는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선진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조 관료의 ‘나이’가 150년 이상 되었고, 이들의 주도력을 뛰어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가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모여 있어야 하고, 이러한 구실에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앞장서서 나서야 한다.

여러가지 인상 깊은 발언이 많았다. “마르크스주의를 실천과 떨어져서 책에 있는 것으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쓸모없는 것”이라는 발언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실천으로 바꾸는 것은 혁명적 조직의 몫”이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발언은 이것이다.

2008년에 거리로 나온 청년들의 상당수는 촛불 운동이 나아가는데 조직 같은건 필요없다고 여겼고, ‘자발성’, ‘자발성’만을 외치며 찬양했다. 그런데 6월 11일 촛불이 역대 최대 규모로 모이고, 갈림길에 서게 되자 어떻게 되었는가. 이전까지 [청년들을 뒤좇아] 자발성을 찬양하기만 하던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뭐라고 했는가? 이제는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느니 하며 운동이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은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직을 거부하고 자발성을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2008년 촛불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이를 반성하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를 깊이 고민해보야 할 때다.

맑시즘에 참가하며

알찬 토론과 주장에서도 많은 영감과 활력을 얻지만, 한편으로 맑시즘 진행팀을 맡으면서도 그렇다. 마지막날인 일요일에는 진행팀을 자원했다. 네 번의 참가 중 세 번 진행팀을 맡았었다. 연인원 4천여명이 참가하는 맑시즘 같은 큰 행사를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회원들이 단지 강연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 준비와 진행, 정리를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의무감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진행팀 일을 맡아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도 느끼는 바가 많다. 그것이 꼭 하고 싶지만은 않은 일이더라도 말이다. 학교나 군대, 직장 등에서 조직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발벗고 나서고, 서로 존중하며 일이 조직되고 운영된다. 이 커다란 포럼이 매끄럽게 굴러가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나는 몸이 약해서 맡기 힘든 일이 꽤 있는 편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느끼는 점이 많다. 학교나 군대에서처럼 누구도 ‘쓸모없는’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 모두가 나설 때 포럼이 매끄럽게 굴러갈 수 있다. 누구는 명령하고 누구는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면서도 이렇게 큰 행사를 얼마든지 괜찮게 준비, 진행,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발성이 충만한 사회라는 건 이런게 아닐까 힐끗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런건 내가 글로 설명한다고 해서 제대로 전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행팀을 실제로 맡아보면서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있지 않고, 각각의 ‘개인’으로 존재했다면 이러한 대규모 포럼 진행은 커녕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렇다.

‘오늘날 국제 계급투쟁’ 워크숍에서 “체제에 포섭되는 유혹을 느낀 적 없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답한 것이 떠오른다.

사실 나는 살면서 ‘시험’ 받을만한 일이 없었다. 만약 내가 감옥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봐달라. (웃음) 이집트의 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감옥에 가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나도 그러길 바라는데, 그것이 만약 가능하다면 [이집트의 혁명가처럼] 혁명적 이론과 함께 나에게 혁명적 조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결코 ‘개인’으로 있을 수 없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코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적어도 사람들이 ‘조직’을 꺼리고 ‘개인’으로서 무언가 변화가 가능할 거라는 환상을 깼으면 좋겠다. 오늘날 이러한 환상은 너무나 만연하다.

나의 이러한 생각이 모종의 ‘종교’ 포교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여느 ‘종교’처럼 강요하지도, ‘신자’가 나가지 못하게 막지도, 끼리끼리 ‘부흥회’만 하지도 않는다. 만약 부흥회가 필요했다면 <맑시즘> 같은 대규모 공개 포럼 같은건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 번 선택해보고, 경험해보길 바라고 싶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노동자연대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개인’으로 남아 있지 말고 어느 조직이든 선택해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그래야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속한 이 조직, 꽤 괜찮다고 권하고 싶다.

이 글과 더불어, 맑시즘2014 참가자들의 후기와 생생한 목소리도 읽어보길 권한다.


  1. 당시 이름은 ‘다함께’. ‘다함께’ 이후 ‘노동자연대다함께’를 거쳐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2. 60여개나 되는 워크숍을 나흘 동안 진행하다보니 시간표가 정해져 있다. 같은 시간에 겹치는 워크숍은 못 들을 수밖에 없다. 매년 참가 계획을 짤 때마다, 듣고 싶은 워크숍이 너무 많아 ‘헤르미온느의 모래시계(타임 터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3. 한국어판은 1993년에야 처음 출간되었다.
  4. 당시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러시아 혁명 이전부터 혁명 러시아는 주변의 자본주의 강대국에서의 혁명 성공 없이는 존속할 수 없을 거라 봤다. 이후 역사를 보면 혁명 러시아는 존속할 수 없었다. 다만 혁명 이전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관료 집단의 지배라는 새로운 형태로 바뀐게 달랐을 뿐이다.
  5. 재밌는 것은 이것이 소련 당국이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스스로 발표한 수치라는 것이다.
  6. 예컨대 이전까지는 전쟁을 위한 탱크를 생산하던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필요에 맞춰 버스를 생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