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ING TOO LONG?
CLICK/TAP HERE TO CLOSE LOADING SCREEN.
CLOSE SEARCH
MONTHLY ARCHIVES: June 2014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정치적으로 좌파적 견해를 갖게 되었던 15살 무렵부터, 나는 승용차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첫째 이유는 바로 기후 변화 때문이었고, 둘째 이유는 교통사고로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나의 다짐에 대해 주변에서는 대체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탄소 배출이 없는 승용차는 당시에는 물론이고 2014년 현재에도 아직 요원하다. 교통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승용차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주변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도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의 개인적 선택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자본주의»는 내가 당시에 느꼈던 그런 종류의 좌절감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이 책의 저자 조너선 닐은 급진적 변화를 통해서만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개입 없는) ‘자유 시장 경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기기 위해 경제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모든 기업이 전쟁물자 생산에 집중하도록 강제했고, 그 결과 1941년 조선소에서 ‘리버티 선’ 한 척을 만드는데 평균 245일이 소요되던 것이 1943년 말에는 평균 39일로 단축될 정도였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경제를 급격하게 바꿀 수 있다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 경제를 급격하게 바꿀 수 없을 이유는 무엇인가?

조너선 닐은 “진정으로 인류의 생활수준을 높이면서도 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안적 전략을 탁월할 정도로 명료하고 일관되게 서술한다.” (마이크 데이비스) 예컨대, 운송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23%를 차지하고, 그 중 82%가 승용차, 비행기, 트럭에서 나온다. 승용차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희생이 아니라 정부의 총체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라고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3~5분마다 운행되며, 정시에 도착하고, 너무 붐비지 않으며, 스물네 시간 운행하는 버스와 기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승용차가 여전히 다닌다면, 도로는 여전히 비좁고 출퇴근 시간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일 것이기에 대중교통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유류세 인상, 통행료 징수 등 시장 논리를 도입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부자들만 차를 몰고 다니고 노동자들은 먼길을 걸어 지저분하고 시간도 못 맞추는 버스나 타기를 원한다고 여길 것”이다. 게다가 석유 회사와 자동차 회사 등이 반격에 나서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고 환경주의자들은 부자를 대변하는 양 몰아세울 것이기에 이러한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도시 내 승용차 운행을 금지하고 질적으로 훨씬 향상된 대중교통을 공급하는 것이 사람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으면서도 배출량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책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내게 온몸이 찌릿찌릿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승용차 운행 금지는 도시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길을 꽉 막고 있는 승용차가 더는 없을 것이고, 그 남는 공간은 자전거 도로로 사용하거나 나무와 잔디, 꽃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는 경우도 줄어들 것이다. 교통사고로 매년 100만~150만 명이 사망하고 80만 명이 영구적으로 장애인이 되는데, 이런 비극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대안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 비현실적인 것이 무엇인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연구자에 따라 다르지만, 길어야 30년 정도다. 그 이후에는 되먹임 현상 때문에 탄소를 줄이더라도 기후 변화를 막을 수가 없다. 언제 가능할지도 모르는 ‘핵융합’이니, ‘탄소 포집’이니 하는 기술에 희망을 거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기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작년에 필리핀에서 있었던 것 같은 대재앙이 몇 번씩이고 일어날 수 있는 기후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물론 북극곰도 중요하지만) 기후 변화는 단순히 북극곰이 물에 빠져 죽거나 몇몇 작은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간은 많지 않다. 우리 사회와 경제의 급격한 변화 없이는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고, 기후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인류가 멸망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수억의 평범한 사람들은 삶이 파탄 날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있다. 문제는 행동에 나설 수도 없고 나서려 하지도 않는 기업들과 권력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힘, 강력한 대중행동을 준비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자본주의»는 그러한 대규모 행동을 위한 많은 영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