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ING TOO LONG?
CLICK/TAP HERE TO CLOSE LOADING SCREEN.
CLOSE SEARCH
MONTHLY ARCHIVES: November 2011

진영 논리가 아니라, 청소년 인권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의 문제입니다

먼저 오해를 좀 풀면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진영 논리로 ‘우리 편’에 대한 모든 비판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진보 단체라 하더라도 비판할 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제가 그런 황당한 주장을 했다고 다들 여기시니, 당황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지적하고자 한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한청연의 재정 문제에 대한 아수나로의 태도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를 독점하는 자들이 정치와 사회 또한 지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재정’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조중동… 모두 그 자신이 1%일 뿐만 아니라 1%로부터 자금을 충당합니다. 조중동의 경우 ‘합법적인 광고’를 통해서, 정치인들은 공공연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죠.

어버이연합 같은 자들도 친정부, 우파 단체들로부터 후원을 받습니다. 희망버스를 훼방 놓으려던 노인들이 돈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었죠.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노스러운 일입니다. 가진 자들이 자신의 부를 이용해 사회 곳곳을 통제하고자 하는 일이니까요.

한청연은 청소년 단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들의 활동은 청소년 권리를 오히려 후퇴시킬 것입니다. 이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자유총연맹 같은 우파들이 의식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청연이 친정부 단체나 우파들과 금전적 연계가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은, 이들이 근본적으로 반청소년적 청소년 단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청소년 단체가, 청소년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활동을, 가진 자들의 후원을 받아가며 하는 것이, (반(反)청소년적인) ‘꼭두각시’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것은 한청연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변함없는 것이고, 청소년의 자율성, 주체성 문제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저는 진영 논리로 우리 편에 대한 모든 비판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전교조의 이번 논평이 흠잡을데 없이 완벽하다고 주장한 적도 없습니다. 전교조는 청소년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며, 그러한 표현을 일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분명 바뀌어야 할 점입니다.

그러나 전교조가 우파 단체의 한청연 후원을 문제삼으며 한청연 활동을 비판한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우파의 청소년 단체 지원 비판 = 청소년 자율성 무시’라는 잘못된 등식이 우리가 지금 문제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을 흐리고 있습니다.

둘째는, 무엇이 주(主)가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성명에서 한청연 비판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지금 무엇이 주(主)가 되고 있나요? 성명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전교조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한청연이라는, 다른 우파들의 지원을 받은 우파 청소년 단체가,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후퇴시키기 위해, 전교조를 공격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그 활동을 비판하면서, 청소년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표현을 일부 사용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구의 행동이 청소년 인권에 더 많은 해악을 가져오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교사의 권리를 공격하는 한청연인가요, 아니면 청소년에 대해 모순된 의식을 갖고 있는 전교조인가요?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사의 권리가 후퇴하면 청소년의 권리도 후퇴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념을 주장하고,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보적 대중과의 소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또 강조하지만, 전교조의 언행을 비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판해야 할 때는 비판해야죠.

그런데 아수나로의 이번 성명과 같은 방식의 비판이,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한청연이 감화를 받아 청소년 인권 행동에 적극 나서게 되나요? 전교조 조합원들이 고개를 끄덕일까요? ‘두발규제와 체벌은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청소년은 보호를 받아야지’라고 모순되게 생각하는 진보적 대중들이 생각을 바꾸게 될까요? 청소년 인권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은 채, 오히려 의도와는 다르게 우파들의 교사와 청소년의 권리 공격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만 낳는다는 것입니다.

아수나로가 이번 성명에서 “전교조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한청연 비판에 분명하게 나서야” 했었다고, 다시 말해 한청연 비판이 주(主)가 되었어야 했다고 제가 주장한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굳이 말하자면, 이번 성명에서도 전교조의 표현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주(主)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저는 그런 점에서, 제 비판을 나경원 후보 ‘자위녀’ 논쟁 따위와 “판박이”라고 주장하는 공현의 말이 굉장히 불쾌하게 들립니다.

지금의 성명을 내리고, 다시금 논의하여 한청연 비판에 초점을 맞춘 성명을 새로이 썼으면 합니다.

덧붙임.

다시금 말하지만, 전교조 성명의 일부 표현들은 문제입니다. 이는 상당수 전교조 조합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이들은 입시, 두발 규제 같은 청소년 억압에 반대하면서도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곤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비판은 물론 필요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이것이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판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을 지지자로 만들 수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비판’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생각에서 일리 있는 부분을 공감해주고, 그들이 모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차분히 지적해주어야지요. 전교조와 함께 하면서, 그들이 경험 속에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공감하거나 들을 줄 모른채 호통치고 설교하려 든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입니다.

이렇게 설교만 하려는 사람을 ‘꼰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오히려 ‘꼰대’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아수나로 카페에 올라간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