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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June 2011

반값 등록금은 정당하다

<서울교대학보>(이하 학보)는 제432호 사설에서 ‘반값 등록금’에 대해 “또 하나의 포퓰리즘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 없이 공약을 남발하는 무책임한 정치가를] 가려낼 혜안이 없는 국민들이라면 무상, 복지라는 미망에서 벗어날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고민이 없는 것은 학보가 아닌지 의문스럽다. 2010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2007년 기준 한국의 대학 교육에 대한 정부 재정부담율은 20.7%밖에 안 된다. OECD 평균인 69.1%, EU 19개국 평균인 79.4%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이다. 정부의 재정부담율을 OECD 평균 수준까지 올리면 등록금을 반값 이하로 내릴 수 있다. (우석균, “‘반값 등록금’ 촛불이 이기려면”, 레프트21 59호 2011-06-18)

학보는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면 (…) 국민의 세부담을 가중” 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구의 세금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부자 감세로 없어진 돈의 4분의 1만 있으면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다. 자본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것을 두고 “국민의 세부담”까지 운운할 이유는 없다. 등록금을 낮추고 정부가 충당하는 비율을 늘리는 것이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부담을 훨씬 더는 길이다. 게다가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부동산 등 자산경제에 제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탈루소득을 잡아내면 (…) 50조 원의 세수는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법인세 감면 등 부자 감세를 해야 투자가 늘고 경제가 살아나 반값 등록금 같은 ‘복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법인세 감면의 효과가 미미하다고 반박한다. “기업소득이 1만 원 늘어날 때 설비투자는 고작 1천80원 늘어났다.”라고 한다. 나머지 9천 원은 기업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뿐이다. (장호종, “부자 감세, 4대강 삽질할 돈으로 복지를 늘려라”, 레프트21 50호 2011-02-05)

물론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높고 부실한 사립대가 많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나쁜 일인가? 고등교육의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하며,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충당하는 비율을 OECD 평균까지만 올려도 반값 등록금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앞서 이미 살펴본 바 있다.

그리고 부실한 사립대의 질을 높이려면 이 대학들을 국·공립화하든지 국·공립 대학을 늘려 이들 대학의 교수와 학생을 흡수하면 된다. 한국의 등록금 부담이 높은 데에는 사립대 비중이 78%나 되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도 한몫한다. (물론 국·공립 대학의 등록금도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절대로 싸지 않다. 실질구매력지수(PPP) 기준 2007~2008년 한국의 국공립대의 평균 등록금은 4천717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이다.) 부실한 사립대를 걱정하기 이전에 이러한 해법은 고민해보았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등록금이 가장 높은 대학들은 대부분 부실 사립대가 아니라 소위 ‘명문’ 사립 대학들이다. 이들 대학은 예산을 뻥튀기해 등록금을 올려 받고 이를 남겨서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왔다. 현재 전국 사립대의 누적 적립금은 9조 2천억 원에 달한다. 적립금 1위인 이화여대는 1년 적립금 8백38억 원을 장학금으로 주면 60.4%의 학생들이, 2위인 연세대는 43.7%의 학생들이 ‘공짜로’ 대학에 다닐 수 있다.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은 삶의 기회를 넓히고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이기도 하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책에서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 역사를 볼 때, 우리가 누리고 있는 권리들은 사람들의 행동이 없었다면 쟁취 될 수 없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서울교대학보>의 ‘반값 등록금’ 사설 비판을 위해 쓴 글. <레프트21>에도 실렸다. 사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반값 등록금을 둘러싼 문제가 요즘 대학가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대학생들이 도심에 모여 반값 등록금 실현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고 있고, 일부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진영에서는 현 정부가 반값 아파트 위원회, 등록금 절반 위원회를 설치하고 등록금을 반값으로 할 것을 주장했으니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대통령은 자신이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겠다고 공약한 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공약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약은 그 어떤 것이든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것들이 과연 오랜 고민과 숙의 과정을 거쳐서 수립된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반값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 우려되는 점은 이것이 또 하나의 포퓰리즘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현재 대학 등록금이 계속 상승하여 그것이 가계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반값으로 등록금을 낮추라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면 그 나머지 재원확보를 위해 결국 국민의 세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텐데, 이는 평등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프랑스를 예로 들면서 우리도 얼마든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 진학률이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라와 대학 진학률 80%를 웃도는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등록금 반값 실현이 마치 최선의 목적이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된다는 식의 여론 몰이는 심각한 교육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우선 현재 대학 등록금의 적정 수준을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진부한 주제로 들릴지 모르지만, 대학 진학률 80%라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심해야 한다. 여기에는 분명 역대 정권의 대학교육정책 실패가 관련되어 있다. 설립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부실한 사립대를 양산한 결과는 이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과연 이런 것을 배우려고 굳이 대학에 가야 하는가 회의하게 만드는 온갖 종류의 대학의 난립, 그리고 그런 대학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제도 등, 이 모든 문제와 별도로 등록금 문제를 떼내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초등 교육과 대학 교육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대학 교육을 복지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야 하고, 만약 그것이 옳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정치가들은 마땅히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도 없이 공약을 남발하고 자기들에게 투표하면 금방이라도 그것을 실현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무책임한 정치가, 그리고 그것을 가려낼 혜안이 없는 국민들이라면 무상, 복지라는 미망에서 벗어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