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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May 2011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어떻게 해서 운동(movement)을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크게 많은 걸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청소년 시기에 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물론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데는 수많은 사건이 배경으로 존재하겠지만, 열여덟 살 무렵부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흔히 답하는 ‘요약본’이 있다. 모든 구체적인 내용을 다 담지는 못하지만, 핵심적인 내용만 담은 요약본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소위 말하는 ‘소극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사회 문제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상당히 좋아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학급회의 시간마다 ‘인터넷상에서의 올바른 언어 사용’ 따위의 주제를 들고 나와 토론을 걸어서 회의 같은 건 대충 빨리 끝내고 집에 가길 원하는 친구들을 괴롭혔다. 나는 그 당시 소위 ‘외계어’는 물론이고 ‘ㅎㅎ’나 ‘ㅋㅋ’ 같은 단자음만의 사용에 대해서도 반대(?)했었는데, 이를테면 보수주의 논객이었던 셈이다. (웃음)

보통 내가 답하는 ‘요약본’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당시 보수주의자(?)였던 나는 1 중학교에 들어간 뒤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초등학교 때 머리를 길게 기른 적은 없었고 중학교의 두발 규정에 큰 불편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매일 교문에서 두발규제를 받는 학생들을 보기가 괴로웠다. 꽤 자상했던 걸로 기억하는 도덕선생님이 ‘학생주임’의 위치로 교문에서 학생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볼 때는 그가 마치 괴물이라도 된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도 했던 ‘운동장 조례’가 중학교 때는 별다른 차이도 없었는데 굉장히 숨 막히는 것으로 다가왔다. 운동장 조례 때면 온 세상이 나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에 빠졌다. 지금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면,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나는 “내 속생각이 남들에게 다 들리는 것 같다.”라는 의심이 끊임없이 드는 강박증을 앓았었다. 물론 전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런 의심을 멈출 수 없었는데(그러니까 ‘강박증’인 것이지만), 이 강박증은 중학교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런 강박이 심해질 때가 운동장 조례였다.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였나,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박노자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인터넷에서 서평을 보고 우연히 사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바로 도서관에서 박노자의 다른 책들을 빌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책은 내가 겪던 문제가 내가 이상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전체주의적 억압. ‘내’가 아니라 ‘체제’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그는 처음으로 내게 들려주었다.

그 이후에도 물론 등굣길 두발검사는 견디기 어려웠고 운동장 조례 때마다 강박적 의심은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그래도 그의 책을 읽기 전과 후는 확연히 달랐다. 2 두발규제가 단순히 ‘두발규제’가 아니라는 것, 운동장 조례가 단순히 ‘운동장 조례’가 아니라는 것은 내게 무척 중요했다. 나는 그 이후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좀 더 키워가기 시작했고, 진보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고, 민주노동당에 후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사회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당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해밀 님을 블로그를 통해 만났고, 나도 아수나로에서 처음 ‘운동’이라는 것을 서툴게나마 시작하게 되었다.

두발규제에 힘들어하고, 억압적인 학교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청소년들은 많다. 그러나 대개 그들은 그렇다고 해서 학생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에 뛰어들지 않는다. 차라리 6년, 혹은 12년을 참고 경쟁과 억압에서 어떻게든 버텨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그 모든 억압적인 것들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그러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것들을 바꿔낼 수 있을 것이라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1. 물론 ‘보수주의자’라는건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내 개인사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재미삼아 덧붙이자면,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고 그 해에 있었던 미군 장갑차 사건에 대해 분개했지만 ‘Fucking USA’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물론 페미니즘적인 생각에서라거나 그 노래에 담긴 민족주의적 정서가 마음에 들지않아서라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고, 그냥 ‘fuck’이라는 단어가 외설적이라는 생각에서.
  2. 이후의 내 ‘강박증’에 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이는 계속되었다. 박노자의 책을 읽고 난 이후 확연히 나아졌긴 했지만 말이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강박증은 거의 사라졌다. 가끔 스트레스가 심할 때 겪기는 하지만, 1년에 세네 번 정도이다. 매일같이 강박적 의심에 시달렸던 중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무척 줄어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