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ING TOO LONG?
CLICK/TAP HERE TO CLOSE LOADING SCREEN.
CLOSE SEARCH
MONTHLY ARCHIVES: March 2011

관점과 전망의 부재: ‘자본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청소년 운동’이 필요하다

아수나로엔 어떤 장기적 비젼이나 목적 따위가 없었다. … 그들은 현 사회 상태의 문제에 대해 그 원인조차 제대로 모른다. … 또한, 그들은 단순히 거부한다는 그 목적 자체 조차 제대로 수행할줄 모른다. 시위나 행사 따위를 하면 바뀔줄 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고나 있는걸까? 내가 보기엔, 그들은 전례에 시위나 행사 따위를 통해 바뀐게 있기 때문에, 오늘날 지금도 그럴줄 알고 그렇게 행하는듯 싶다. 그러나, 과연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보았는가? 왜,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내가 보기엔, 이것들은 비둘기 미신과 같다. 그들은 원리 조차 모르며, 자극->반응 순으로 근거 조차 없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한다.

— 나선, 아수나로를 떠난 이유, 나선의 천국 2011-03-19.

…이번 “실종신고” 집회는 그토록 많은 품을 들여 홍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집회 참가자가 100여 명에 그쳤으며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이미 아수나로나 다른 단체 등에서 활동을 하던 청소년들이었다. 집회 분위기는 좋았지만 과거의 청소년 거리 집회들처럼 미조직된 청소년들 상당수가 나오는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결국 이번 집회는 청소년운동이 앞으로 조직력을 키우는 데 더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교훈을 준다.

— 공현,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 인권오름 2011-03-23.

‘실종신고’ 집회 날, 아수나로 인천지부에서 활동했던 나선이 아수나로를 비판한 글을 블로그에 발행했었습니다. 조야한 수준의 유심론(세계는 정신적인 근원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학설.)적인 생각에 동의가 안 되긴 하지만, 나선의 아수나로 비판이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핵심을 짚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인권 문제는 왜 일어나는 것인가요? 청소년 인권이 보장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위를 하면 청소년 인권이 보장 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청소년들이 시위를 하면 꼰대들이 ‘쫄기’ 때문에? 그렇다면 많은 청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모을 수 있을까요? 많은 청소년들이 모이지 않을 때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직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인권오름>에 실린 공현의 집회 평가글에서 저는 무언가 큰 한 가지가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분명 “청소년운동이 앞으로 조직력을 키우는 데 더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고 언제나 “당연한 교훈”이었기에, 더 이상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분량의 한계 상, 그리고 글의 성격상 ‘어떻게’를 담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집회 평가 회의에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자세한 이야기가 그리 자세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듭니다. “아수나로에서 거리시위나 어떤 행동을 만들 때 이 행동에 친구들을 한두명이라도 데리고 참여”한다거나, “학내행동들을 작게든 크게든 조직”한다거나, “아수나로에서 중요한 주제에 대해 공부모임을 하고 토론회를 열 때 참여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인식을 공유”하는 정도가 생각해볼 수 있는 전부이겠죠(공현, “청소년인권운동/아수나로 비젼 러프스케치”, 창틀에 걸린 꿈들 2010-06-08.).

이는 아수나로에 잘못이 있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조직화가 안 되는 판”에다가 “’대중’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경로들이 매스미디어와 거리선전 등 외에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요(공현, “조직의 부재 :: 여하간 문제는 조직화다”, 창틀에 걸린 꿈들 2010-02-15.).

혁명 전에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그들은 남성 노동자들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날마다 13~14시간씩 일했고, 돼지우리 같은 숙소에서 잤다. 러시아는 여성을 끔찍하게 천대하는 사회였다. 아내 구타가 어찌나 만연했는지 부부가 함께 쓰는 침대 위에는 어김없이 채찍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완전한 양성 평등을 역사적 의제로 제기했다. 레닌은 “여성이 혁명에 얼마나 참여하는가가 혁명의 성패를 좌우한다” 하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끔찍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투쟁의 맨 앞에 섰다. 마침내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러시아 여성의 권리는 당시 어느 서방 자본주의 나라보다 더 신장됐다.

혁명 첫 해에 여성 선거권 완전 보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전면적인 유급 출산 휴가제 도입을 공포했다. 낙태 합법화로 무료시술이 제공됐다. 부부 중 한 쪽만 원해도 이혼이 가능해졌고 동성애와 간통을 범죄로 다루지 않게 됐다.

러시아에서 배우자 일방의 요구에 의한 즉시 이혼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트로츠키는 “아직도 즉시 이혼이 가능하지 않은 나라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하고 반문했다.

그런 정책들은 지금 기준으로도 급진적인 법과 제도들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성들이 계속 가정에 붙들려 있는 한은 진정한 여성해방은 불가능했다. 여성 억압을 유지하는 전통적 가족 제도의 경제적 토대를 허물어야 했다. 가족 상속권이 폐지됐고 가사노동을 대신하기 위한 분만원, 교육시설, 공동식당, 공동 세탁소 등이 세워졌다.

1919~20년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전체 인구의 90퍼센트가 공공급식을 이용했다. 공동세탁소와 보육시설이 마련된 질 좋은 공공주택은 여성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 이예송, “러시아 혁명이 보여 준 여성해방의 가능성”, 맞불 34호 2007-03-07.

여성 차별, 억압은 계급 사회와 밀접한 관련

러시아 혁명 이후 여성의 권리가 엄청나게 신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성 차별이 계급 사회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엥겔스가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계급 발생 이전의 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힌 것이나, 러시아 혁명이 스탈린의 반(反)혁명으로 패배하고 국가관료가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부상한 후 여성을 때리는 채찍이 부활하고 여성 차별이 다시 등장했다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차별, 억압 또한 마찬가지

청소년에 대한 차별과 억압 또한 마찬가지로 계급 사회(특히 자본주의. 청소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에 들어서 생겨났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학교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충실히 일할 노동자를 생산해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엄격한 규율과 이에 대한 순응을 가르칩니다. 학벌 사회는 졸업 학교 간의 위계로 노동에 대한 보상이 다른 것을 합리화 시키고, 노동 계급을 분열시킵니다. 학교에 두발복장규제와 체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입시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여성 해방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혁명의 사례에서 계급 사회 철폐가 청소년 해방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 성공 후 1918년에 시험제도가 폐지”되었고, “모든 학교에 남녀공학제도가 도입”됐습니다. “12세 이상의 학생 대표자는 학교당국에 고용된 노동자 대표들, 교육인민위원회 대표자들과 나란히 교육 과정과 학교 운영에 대해 발언하고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짐처럼 부여되던 숙제가 없어졌고,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성가신 존경의 표시를 해야 할 의무에서 해방됐”으며, “학생과 교사는 동지적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대학 수업료와 함께 학위증서도 폐지됐”습니다(강철구, “러시아 혁명 때 꽃핀 대안적 교육의 실험”, 저항의 촛불 11호 2008-11-03.).

물론 청소년에 대한 억압은 각 나라의 상황 및 투쟁의 역사에 따라 조금씩 그 양상이 다릅니다. 하지만 계급 사회의 폐지 없이 완전한 청소년 해방은 불가능합니다(글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청소년 인권 중 ‘학생 인권’에 초점을 맞추어 썼는데, 다른 청소년 인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청소년 인권이 잘 보장되는 나라에 속하는 프랑스나 핀란드에서도 경쟁이 존재합니다. 프랑스에는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꼴’이 있고 이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며, 핀란드 또한 좀 더 나은 노동 보상이 보장되는 특정 학과에 학생들이 몰려 경쟁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억압적 규제 또한 존재합니다. 지난 2009년에는 프랑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무릎 위로 구멍난 바지나 옷을 금지시키도록 교칙을 개정”해 학생들이 반라(半裸) 시위를 벌이기도 했죠(Isabella Enock, “French students cry liberté over right to wear sexy clothes”, The Independent 2009-12-23.).

‘자본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청소년 운동’의 필요성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소년에 대한 억압은 도처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인권 운동은 반자본주의적 전망과 사회 전체의 반자본주의적 변혁에 관심을 갖고, 자본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운동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물론 아수나로의 기본원칙에는 반자본주의적 입장이 어느 정도 들어 있고 아수나로 활동가들 중에는 반자본주의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요즘 저는 아수나로가 전반적으로 청소년 인권 운동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자본주의니까 청소년 인권 운동 같은 건 때려치우고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게 최우선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반자본주의적 변혁에 있어서 중요한 쟁점이 되는 운동, 자본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운동(이것은 때에 따라 청소년 인권 운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같은 경우 비정규직 투쟁, 리비아 등 아랍혁명, 핵에너지가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 인권의 보장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당장 자본주의가 철폐되지 않더라도

물론 운동에 참여한다고 당장 자본주의가 철폐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의 성공은 사회 전체의 세력 관계,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또한 청소년 인권 운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공현도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에서 지적하듯이, 2000년대 초중반과 달리 지금은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일이 무척 줄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2000년대 초중반은 김대중-노무현이라는 소위 ‘개혁적’ 정권이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행동을 통해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반자본주의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자본친화적이며 여러모로 크게 개혁적이지도 않았던 정권과 지금이 이렇게 다른데, 만약 쟁점이 되는 운동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승리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사회는 얼마나 달라질까요? (민주당 정권을 당선시키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려는 게 절대 아님을 강조합니다. 민주당은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정당이라는 점에서 결코 반자본주의적 운동의 고려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청소년 인권 운동의 주장 또한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청소년들 또한 자신감을 갖고 청소년 인권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프랑스, 핀란드 교육을 만들어낸 것이 68혁명이었다는 점에서도 자본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운동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8혁명은 교육 문제로 시작된 투쟁도 아니었고, 68혁명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교육 문제만을 제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트남전 반대라는 당시 세계 자본주의 내의 첨예한 쟁점으로 출발했고, 이후 천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 과정에 위기가 왔고 혁명에 힘이 붙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혁명이 처음 시작된 프랑스와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국가들에서도 세력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 영향으로 프랑스에서는 대학이 평준화 되고 핀란드에서는 오늘날의 교육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조직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중요

자본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청소년 인권 운동의 조직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청소년 인권 운동이 당면한 일은 안하고 다른 집회나 가다니 청소년 인권 운동가로서의 관점이 없나 보다”는 등의 비판, 압력을 받으면서도 다른 ‘중요한’ 집회에 가는 활동가들에게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인권 활동가 누구나 청소년 인권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청소년 인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는 걸 느끼고 이런 공백을 메꿔줄 것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청소년이, 혹은 청소년 인권 활동가가 ‘청소년 문제’만을 느끼진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촛불 시위나 이라크 반전 운동 등에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그런 운동이 성공하고 전체 사회 변혁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있을 때 청소년 인권 운동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과 같이 미조직 청소년들이 행동하기를 꺼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청소년 인권 운동을 인내를 갖고 계속 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다른 운동 또한 청소년 인권 운동에 적극 연대해야

청소년 인권 활동가들이 정세 상 중요한 운동, 자본주의 권력에 핵심적으로 도전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운동의 사람들도 청소년 인권 운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적극 연대하도록 해야 합니다. 청소년 인권 운동의 주장이 다른 운동에 확산되는 것을 도울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철폐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노동 계급 전체의 의식 변화 또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문제는 청소년만의 힘으로’라는 의식적, 무의식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한 이번 집회처럼 미조직 청소년들이 많이 와야 하는 경우, 다양한 운동(특히 교사, 학부모 등의 다른 교육 주체들)의 연대는 청소년들에게 청소년들만 청소년 인권을 외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다양한 사람들이 청소년 인권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그들이 청소년 인권 운동에 참여하는데 좀 더 확신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집회가 아수나로 단독 주최로 이루어진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교사 단체나 학부모 단체 등이 잘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수나로가 이들을 거부해서가 아님은 잘 알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이들이 연대해줄 것을 호소하고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을 ‘잘’ 하는 것

요즘 저는 몇몇 활동가들이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서 하루 종일 운동을 하다가 밤 늦게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매일 같이 하는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분명 이런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아수나로는 무척 성장할 수 있었고, 청소년 인권 운동이 한해살이 운동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경험과 논리를 축적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늘어나기만 하면 청소년 인권 운동이 잘 될 수 있는 걸까요? 물론 의지와 열정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을 ‘잘’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관점과 전망이 있을 때 운동은 ‘잘’ 이루어질 수 있고, 활동가들의 의지와 열정 또한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늘어날 수 있고, 조직력 또한 키워질 것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제대로 된 관점과 전망이 ‘자본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청소년 운동’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구체적으로, 현대차와 홍익대에 이어 각 대학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투쟁, 아랍 지역의 혁명 지지, 핵 반대 운동 에 적극 참여하는 것일 겁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주최한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평가를 위해 쓴 글. 아수나로 카페에 올라간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