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ING TOO LONG?
CLICK/TAP HERE TO CLOSE LOADING SCREEN.
CLOSE SEARCH
MONTHLY ARCHIVES: December 2009

굿바이 레닌

금발에 콧수염을 기른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는 꾸며진 가짜 내용이다.

언론에서 과거 공산주의 국가의 시민들과 인터뷰를 한 것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그들은 대개 “빈부격차가 커지는 등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자유가 있으니 좋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인터뷰를 볼 때마다, 나는 언론에게서 일종의 강박 같은 것이 느껴진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자유가 생겼으니 좋은 것이다. 이 정도로 만족하라. 자본주의 세계가 천국은 아니지만, 이 이상 좋은 곳은 없다.” 그런 말을 애써 반복하는 느낌. 불편하다. 더 나은 곳을 꿈꿀 자유가 없다면, 도대체 그 자유란 무슨 자유인지.

<굿바이 레닌>은 그런 식으로 애써 ‘새로운 세계’를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통일 후 얻은 것도 많았지만 동시에 잃은 것도 많았다는 것이, 어머니를 속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모습 뒤로 슬며시 드러나곤 한다. 영화의 막바지, 가짜 뉴스에서 지그문트 얀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베를린 장벽이 열리자마자 수천 명의 서독인들이 우리 공화국으로 자유를 찾아 넘어왔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통받던 이들은 새로운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출세와 향락만이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아닙니다. 이들은 다른 삶을 원합니다. 인생에는 물질보다 더 값진 것이 있죠. 그것은 바로 선의와 노동,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입니다.

분명히 동독은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경찰이 두들겨 패던 체제였고(근데 이건 2009년의 한국도 마찬… 쉿!), 주인공의 아버지를 서독으로 망명하게 만든 체제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체제를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더 나은 곳을 꿈꾸어선 안 되는 걸까?

어머니를 위한 주인공의 거짓말은, 어느새 자신을 위한 거짓말이 된 것 같다. 남편을 따라 서독으로 갈 수 없었던 어머니가 동독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듯, 엄청나게 빠르게 바뀐 새로운 체제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닐지. 더 나은 통일 독일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