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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석현에게 선거권을! 아니, 그 이상을!

왕석현은 <과속스캔들>에 출연한 한국의 배우이다. 영화 <과속스캔들>의 흥행에는 왕석현의 ‘똘똘한 연기’와 ‘애늙은이 같은 대사’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 왕석현에게는 현재 선거권이 없다. 왕석현은 2003년 6월 2일생으로 2009년 8월 현재 만 6세인데, 한국에서 만 6세는 선거권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 6세의 어린이에게 선거권을 주는 경우는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물을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왕석현에게 선거권을 주면 왜 안 되는가? 그의 연기를 보면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선거권을 행사할 것 같지 않은가? “연기는 연기일 뿐, 실제로는 ‘애’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애’에게는 왜 선거권을 주면 안 되는가? 합리적인 판단을 못 하므로?

여성은 이성적으로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좀 더 우월한 이성을 가진 남성, 특히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다.

— Jean-Jacques Rousseau

비단 루소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 사상가들이 ‘여성의 이성은 남성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이유로 1900년대 중반까지 여성에게는 선거권이 없었다. 과거 남성 사상가들의 이 같은 생각이, 어린이가 아닌 사람들이 지금 하는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은 과거의 잘못된 판단이고, 아이들은 ‘확실하게’ 이성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으냐고? 무슨 근거로? 아이들에게 선거권을 준다면, 아이들이 “닌텐도DS를 무료로 배포하겠다.” 따위의 허무맹랑한 공약을 듣고 표를 줄 수도 있다고?

매년 7%의 경제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 이명박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와 같은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은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참고로, 닌텐도를 만 5세~만 12세 어린이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데 드는 돈은 이명박의 ‘4대 강 정비 사업’에 들어가는 22조 원의 ‘3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747 공약’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미개하지 않은가? 만약 이들이 이성적으로 미개하다면, 이들의 선거권을 박탈해도 되는가? 물론 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만 19세 미만의 한국 국민에게는 선거권이 없고, 만 19세 이상에게는 선거권이 있는 것인가? 미성년자들은 현재 비-미성년자들에게 여러 면에서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었던 과거,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과거에 완전히 지나간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선거권을 만 19세 제한으로 할지, 만 18세 제한으로 할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선거권이 만 18세 이상이 될 때 주어진다면, 만 17세까지는 ‘이성적으로 미개’하던 사람들이 만 18세가 되는 날 밤 갑자기 머리에 빛이 나며 ‘계몽’되는가? (웃음) 선거권에 나이 제한을 둘 경우 이런 시비는 늘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왕석현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선거권이 제한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자. 왜 선거권인가? 왜 선거권에 이렇게 집착해야 하는가?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선거권에 과도하게 중요한 위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공현, 「청소년은 정치적 동물이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

다시 말하면, 선거 외에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특히 심하다. 현재 미성년자는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에 참여한 청소년 중 상당수가 집회 참여를 이유로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청소년의 25%가 정당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독일(김선경, 「“유럽 청소년의 정치참여는 너무도 당연”」, 1318바이러스 2005년 11월 30일자.),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해 청소년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온 프랑스(김행수, 「파업하는 프랑스 청소년, 감시당하는 한국 청소년」, 오마이뉴스 2008년 5월 20일자.) 등 서구 국가들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의 이 같은 행태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민주주의 의식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키워진다. 어릴 때부터 정치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 원리를 몸으로 익힌 사람들이라면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은 채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 따위의 허황한 말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선거권뿐만 아니라, 더 많은 정치적 권리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주어져야 한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에서 배제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왕석현에게 선거권을! 아니, 그 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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