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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June 2009

하양이 가출기

6월 12일, 금요일 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앞에 고양이 사료와 모래가 놓여 있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 ‘설마…’라고 생각하며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고양이 카페를 뒤지는 동생,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던 엄마. 문 앞에서 생각했던 게 맞았다. 하양이가 집을 나갔다.

언제 나갔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12일 아침, 내가 학교에 갈 때 나가버린 것 같았다. 엄마는 내 가방에 우산을 넣고 있었는데, 그동안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러 갔었다. 그 잠깐, 20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하양이는 그때 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때 이후로 집안에서 하양이를 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엄마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나가버렸다고? 여전히 집 안에 있을 거라고, 어딘가 숨어서 나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동생이 낮 동안 한 것처럼, 나도 집안 곳곳을 뒤졌다.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나가버린 걸까? 힘이 빠졌다. 문득, 나가고 싶어했다면 보내주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래도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덮고 옆으로 돌아눕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하양이가 보고 싶었다.

다음날 내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전화했다. 제발 돌아왔기를 바라며. 전화를 받은 엄마는, 관리사무소에 가서 CCTV를 확인해보았다고 말했다.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찍히지 않았다고, 아직 아파트 건물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직 집 안에 있는 게 아닐까?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안에 하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이 붙어 있었다. 지하부터 옥상까지, 스물세 층을 네 번이나 찾아보았다고 아빠가 말했다. 역시나 집 안에는 없는 것 같았다. 집 안에는 없고,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는데, 아파트 복도와 계단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없다면, 하양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다른 집에 있을 거라는 결론. 12일에는 아파트 소독이 있었는데, 여러 집의 문이 열리고 닫힐 동안 하양이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낯선 분위기에 놀라 그 집 어딘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 하나. 아니면, 누군가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던 하양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을 거라는, 가능성 둘. 가능성은 그 두 가지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하루가 지났다. 엘리베이터 안의 전단이 없어졌다. 다시 붙였다. 다시 붙인 지 두 시간이 채 못되어, 또 다시 없어졌다. 이상했다. 엘리베이터 CCTV를 확인해보았다. 두 번 다 같은 사람이었다. 전단을 읽지도 않고 떼버리는 모습이 수상했다. 저 사람 집에 하양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하던 끝에, 그 사람 집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고양이를 무척 싫어한다는 그 사람에게,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다. 그 사람 집 안을 둘러보았지만 하양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갔다.

찾을 방법이 더는 없다는 생각에, 동생과 엄마는 너무나 힘들어했다. 보다 못한 아빠가 시장에서 얼룩무늬의 코리안 숏헤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처음에는, 그 녀석이 하양이를 쫓아내기라도 한 듯 왠지 미웠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그 녀석도 참 귀엽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양이와는 달리, 그 녀석은 잠시도 사람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 녀석을 보면서, 차츰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양이가 집을 나간 지도 1주일이 지났다. 8일째, 20일 밤, 꿈에 하양이가 나왔다.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옷장 안에 들어가 버리는 하양이. 잠에서 깨고 나서, 옷장을 열어보았지만 하양이는 없었다. 하긴 뭐, 한두 번 열어본 것도 아닌데….

21일, 일요일, 9일째. 학교에 갔다가,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빠였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하양이를 봤다고 했다. 그 후에 아빠도 하양이를 보았고, 엄마도 하양이를 보았다고 했다. 하양이가 풀숲에서 도망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빠는 참치통조림을 가지러 집으로 가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나도 하양이를 찾으러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심장이 뛰었다. 아파트 뒤 풀숲에서 하양이를 부르는 엄마와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풀숲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동생을 찾고 있는데, 하얀 고양이가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하양이였다. 이름을 부르며 쫓아갔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하양이는, 이내 곧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다니다가, 동생과 아빠를 보았다. 하양이가 동생 바로 앞에 있었다. 동생은 참치로 하양이를 유인해 가까이 오게 한 뒤 붙잡았다. 집을 나간 지 230시간 만에 하양이를 찾았다.

그 며칠 동안, 하양이는 몸집이 무척 커졌다. 풀숲을 뛰어다니느라 더러워진 발을 빼면, 온몸이 흙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목에는 목줄을 했던 흔적이 있었다. 역시나 추측대로, 하양이는 누군가의 집에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하양이를 계속 찾는 것에 부담을 느껴, 몰래 풀어놓은 듯 보인다. 경비 아저씨가 때마침 하양이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하양이를 영영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CCTV를 확인해본다면 누가 하양이를 데리고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하양이를 찾은 다음 날인 오늘,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양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했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이 다시 머릿속을 맴돈다. 개와 달리, 고양이에겐 ‘주인’이라는 개념이 없다. 하양이를 참치로 유인하여 붙잡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 고양이에겐 주인이 없기에 집을 나간 고양이는 주인이 부른다고 해서 달려오지 않는다. 하양이는 아마 하양이를 데리고 있었던 그 집에서도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집에서보다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 며칠 동안 살이 부쩍 찐 것을 볼 때, 그 사람들은 하양이가 늘 먹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준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양이는 나가고 싶어서 나갔고, 새로 들어간 집에서 행복했으며, 우리는 참치로 유인해서야 하양이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가 슬프고 힘들다고 해서, 하양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와도 되는 걸까? 우리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는 걸까? 처음 하양이를 만났을 때처럼, 이번에도 이 고민에 답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휴머니스트(인본주의자—인간적인, 하지만/그래서 인간 중심적인)인 것 같다. 하양이가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