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ING TOO LONG?
CLICK/TAP HERE TO CLOSE LOADING SCREEN.
CLOSE SEARCH
MONTHLY ARCHIVES: March 2009

가치중립적인 교육?

공현의 글에 달린 덧글들을 보고 쓰는 글. 두서없이 적었다.

간단히 말해서, 교육에서 ‘가치중립성’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가치판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몇십 년간 지구의 평균온도가 오르고 있다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도 가치판단이 이루어진다. 혹자는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화석 연료를 과도하게 사용해서 발생한 것이고, ‘많은 문제를 불러올 것이므로 좋지 않다’고 판단을 내릴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것은 맞지만, ‘북극 항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좋다’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가치판단을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라는 말 속에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지구온난화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애석하게도 아무 말도 않는 것 또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옳다’는 판단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가치중립적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수많은 정보 중에, 어떤 정보를 선별하여 어떤 시기에 얼마나 제공하여야 하는가? 자연과학적 정보 제공 또한 중립적일 수는 없을진대,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적인 정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교육은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그러나 교육이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이, 어떠한 가치판단을 내리는 발언이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곡’과 ‘불관용’을 일삼는 교육은 ‘불관용’되어야 할 것이다. 공현의 글에 나오는 교사가 잘못된 이유는, 학생의 정당한 서명 참여를 관용하지 않고 체벌이라는 폭력으로 대응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나중에 시간을 내어서 일제고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 될 일이다. 학생이 참여한 서명이 ‘일제고사 반대’가 아니라 ‘일제고사 찬성’ 서명운동이라도 마찬가지이고, “보수 노인들”의 “빨갱이 때려잡자”(gg님의 덧글)는 서명운동이라도 마찬가지이다. “빨갱이 때려잡자”는 “보수 노인들”의 서명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서 학생에게 폭력을 가한다면, 그 교사와 “보수 노인들”이 무엇이 다른가?

‘왜곡’과 ‘불관용’을 일삼는 교육은 ‘불관용’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왜곡’과 ‘불관용’을 일삼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교육이던 ‘관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일제고사에 관해 자신이 취하는 관점을 수업시간에 말하는 것 따위 또한 말이다. 앞서 말했듯, 일제고사에 관해 ‘가치중립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무 말 않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강요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여태껏 그런 교사는 없었지만) 만약 어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무조건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태껏 이런 교사는 많았지만) 만약 어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무조건 봐야 한다’고 말했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학생들은 ‘미성숙’하므로 교사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과연 학생들이 ‘미성숙’한가,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판단을 하는 능력이 떨어지는가의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바로 그래서 어떠한 교육이던 허용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다양한 가치판단을 접하고, 자신의 가치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 만약 그런 판단을 내릴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가치판단을 접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사회의 지배층에게 유리한 가치판단만을 학교에서 접하고 있지 않은가?

요약해보자. ‘가치중립적’인 교육이란 불가능하며 ‘왜곡’과 ‘불관용’, 그리고 ‘강요’ 따위를 일삼지 않는 교육만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교사는 그런 교육이 아닌 한 어떠한 교육이던 할 수 있다. (현행법상에서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그럴진대, 인권운동가는 왜 안 되는가? 게다가 공현이 한 것은 교육도 아니고, 단지 서명을 받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학생들에게 설득시키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벌이라는 폭력으로 막으려 한 교사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며, 그 교사가 그렇게 행동한 근거인 ‘학생들은 미성숙하고 가치관이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보호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학생들은 (학교의 방침에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는) 특정한 가치관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