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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December 2008

인권, 보편성과 끝없는 투쟁, 고민

인권은 결코 내생적 당위가 아니다. 처절한 저항과 투쟁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사회적 합의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역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명명에 불과하다. 인권은 구성된 당위로서 모든 지금-여기에서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하며, 그리하여 끊임없이 다시 추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멈추지 않는 저항과 투쟁을 요구된다.

— 아르

아르님의 2008 인권선언 지지 글 중에서. 한 친구와 한 달 이상 논쟁(?)하면서, 그에게 이야기하려 했던 것을, 짧게 요약한 느낌이다.

인권의 역사상, 저절로 주어진 권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늘날 당연시 여겨지는 권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비록 오늘날 인권으로 여겨지지 않는 권리를 주장한다고 하여도,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그 권리가 미래의 인권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날 인권으로 여겨지나, 그것의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권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다시 말해 인권의 보편성 개념은 여러모로 불완전하다. 인권 개념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가장 많이 비판을 받은 부분 아닐까. 그 친구와의 논쟁도 대개는 이에 관한 것이었다. 인권의 보편성을 공격하며, 인권이 보편적이지 않다면 인권침해를 반대할 근거도 없는 것 아니냐는 친구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설명을 했던지. 인권의 보편성 개념은, 일종의 전략적인, 관념적 수사라고 봐야 하는 면도 있다며, 결국 현실에서 인권은 투쟁을 통해 얻어질 수 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일종의 ‘생떼’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생떼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어감의 말이었다.) 나는 결국 국제협약을 들이댈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옹호하는 인권침해는, 이미 국제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이므로, 침해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두발을 규제하는 교칙을 왜 따라야 하냐는 주장에 ‘교칙이니 따라야 한다’고 반박하는 교사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인 것 같아, 아직까지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게다가, 국제협약에 보장되어 있지 않은 권리를 옹호할 근거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인권의 보편성은 여러모로 불완전한 개념이지만, 어떠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며, 현실에서 인권은 끝없는 투쟁을 통해 쟁취된 것이다. 그리고 그 쟁취된 인권은, 국제법과 국내법 등을 통해 공고히 된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걸까. 인권은, “보편적이지 않음에도 보편적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정신병’에 걸려(이건 그 친구가 직접 사용한 표현이다.) 그 목록에 “이 권리도 넣어달라”고 ‘생떼’ 쓰는 것”, 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 밖에 없는가. 어차피 그런 비아냥을 듣던 말던, 현실 속에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지만.

답을 찾고 싶다. 지금은 보편적 인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권리를, 어떠한 근거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권리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한 것이라고 논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