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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September 2008

타인에 대한 이해

7교시 마친 뒤 청소시간. 그의 어깨로 내 어깨를 툭 치는 친구에게 얼굴을 찌푸렸다. 꾸바에선 이렇게 인사를 한다며 농담을 하는데, 한 번 찌푸려진 얼굴은 펴지지가 않는다. 그 친구가 우리 옆을 지나가던 다른 친구에게 똑같은 인사(?)를 하고, 지나가던 그 친구가 답례(?)를 하는 것을 보고서야 얼굴이 풀렸다. 친구가 무안스러워 할까봐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피곤하다.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는 그 일을, 왜 잊을 수 없는 걸까.

오늘 8교시는 자습시간. 오늘 왜 이리 피곤하지. 8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눈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눈을 떠보니 8교시가 시작한지 5분이 지났다. 주섬주섬 문제지를 꺼내 풀고 있는데 부반장이 교실에 들어왔다. ‘학교 폭력’에 관한 표어를 공모한다며 8교시가 끝나기 전까지 써서 내야 한단다. 이런 식으로 구는게 바로 ‘학교(의) 폭력’이라고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표어 따위를 만든다고 학교 폭력이 없어지냐’고 생각한다.

2년 전 일이 다시 생각난다. 아니, 1년 8개월. 중학교 3학년, 2007년 1월 1일. 나는 코뼈가 부러진 채 병원 입원실에서 새해를 맞았다. 장난. 그는 장난이었다고 했다. 그래, 시작은 아까 청소시간에 있었던 일과 같았다. 달랐던 것은, 그는 내가 얼굴을 찌푸리는 정도가 아니라, 하지 말라고 수없이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깨를 치던 ‘장난’이, 나를 밀쳐 벽에 부딪치게 하는 ‘장난’으로, 나를 땅바닥에 넘어뜨리는 ‘장난’으로 변해갔다는 것.

방학식인 12월 30일, 그는 집에 가고 있는 나에게 방학 동안 하지 못할 ‘장난’을 몰아서 하는 듯이 행동했고,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를 밀쳤다. ‘밀쳤다’지만 넘어지기는 커녕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는, 화가 났는지 내 코를 부러뜨려 놓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몇 군데 더 부러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의 일은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입원실에 찾아와 울며 사과하던, 그리고 나서, 겨울 방학이 끝나고 졸업하기 전까지 그 며칠간, 나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기만 하던 그. 그 눈빛이 미안하다는 사과의 뜻이었을지도 모르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다.

잊어버리고 싶다.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던 코는, 비록 4주하고도 2주 정도 더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 나았는데, 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까 청소시간에 그랬듯, 나는 지금도 ‘장난’에 몹시 예민하게 반응한다.

표어로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다른 친구의 것을 슬쩍 봤다. ‘주먹 꺼내기 전에 통장 잔고부터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심장이 따끔거린다. 타인, 타인의 상처에 대한 ‘완전한’ 이해 따위는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이해해줬으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조서를 꾸미러 입원실에 찾아온 ‘여성/청소년계’ 경찰은, 약속시간보다 왜 이리 늦었냐는 어머니의 말에 ‘강간당한 년’의 조서를 꾸미느라고 늦었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학교 폭력이니, 성폭력이니 없애겠다며 ‘표어’ 따위를 만들기 이전에,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