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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

2006년 5월에 있었던 일이다. 아직 5월이건만 그 날은 무척 더웠다. 지하실은 좀 시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기대를 했건만 웬걸, 지하실은 더 더웠고 게다가 무척 습하기까지 했다. 찜통. 그래, 딱 찜통에 들어와 있는 기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데 그 지하실에 놓여 있는 화이트 보드, 그 화이트 보드에 적힌 문구를 본 순간, 나는 더 숨이 막혔다.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

‘하나’였는지 ‘개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두 단어가 크게 차이가 없다는건 다들 아실게다. 나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라니….

2006년 5월, 나는 한 수련원에 있었다. 학교에서 갔던 수련회로.

그 축축하고 더운, 찜통같은 지하실에서, 우리는 그 수련원이 준비한, 서로 마음을 모아 ‘단결’하기 위한 활동들 중 하나를 했다. 우리는 작은 파이프 조각을 하나씩 받았고, 일렬 횡대로 늘어서서, 그것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서 다른 사람들의 것과 연결시킨 다음, 공을 그 파이프 위에서 굴려 한 쪽 끝에서 반대 쪽 끝까지 가게 해야 했다. 공이 자신이 들고 있던 파이프를 지나갔으면, 끝 쪽으로 달려가 다시 파이프를 잇고. 어느 팀이 가장 먼저 공을 한 쪽 끝에서 반대 쪽 끝까지 굴리느냐. ‘파이프라인’이라는 이름의 활동.

공이 굴러가다 도중에 떨어졌다. 다시. 또 떨어졌다. 다들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찜통같은 그 지하실에서. 어느샌가 그 짜증은 분노로 바뀌었고, 공을 떨어뜨린 사람에게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어느샌가, 공을 떨어뜨린 사람을 원망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공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기에, 내가 저 사람의 처지가 되어 욕설을 듣지는 않을까 약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활동을 시킨 자에게는 분노하지 못하고, 그 활동이 빨리 끝나지 못하게 하는 자들에게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단결? 내가 그 찜통 속에서 배운 것은, 사람들을 편을 갈라 의미없는 경쟁을 시키고, 그 경쟁 속에서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 그것 밖에는 없었다. 아니, 내가 배운 것은 단결이 맞았다. 전체의 뜻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하나.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는 몇몇 ‘하나’들에 대한 전체의 분노, 그것은 ‘단결’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한 게르만의 단결을 위해, 그 순수한 게르만이 되지 못하는 자들, 집시・유대인・동성애자・장애인 등의 사람들을 학살한 나치 독일. 나는, ‘파이프라인’을 제대로 못한 자들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나치 독일의 학살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총이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순수한 게르만인들의 독일을 만든다는 목표와, 공을 한 쪽 끝에서 반대 쪽 끝까지 굴리는 목표는 똑같이 너무나도 의미없는 짓이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자들은 똑같이 배제되었다. (한 쪽은 학살, 다른 한 쪽은 비난과 욕설.)

‘파이프라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활동에서도, 그 수련원은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라는 말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그 가르침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은 더 괴로웠고.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전체주의’를 그토록 혐오하게 된 것은. 그 수련회를 다녀오기 전에도,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 따위의 문구에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로는 ‘전체주의’의 끔찍함을 느끼고 있었긴 하지만.

나는, ‘전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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