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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를 ‘째다’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1년하고도 한 달 조금 넘게 지난 오늘, 처음으로 야자를 ‘쨌다’. 그 말은, (청소년인권에 관련된) 간담회니 기자회견이니 하는 따위의 것에 가기 위해서라든가, 도저히 교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프다건가 하는 이유가 아닌, 순전히 ‘야자를 하기 싫어서’ 야자를 빠지고 학교를 나왔다는 것이다. 오늘, 처음으로.

저녁식사 시간, 복도에서 하염없이 바깥만 쳐다보다가 교실로 들어왔다. 종이 치고, 수학 문제를 가방에서 꺼냈다. 하지만 풀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책을 하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반장에게 아프다고 이야기하니, 별 말 없이 칠판에 적힌 ‘현원’ 수를 하나 줄여주었다. 중간고사가 5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나처럼 ‘야자를 빠지고 싶어’ 빠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 밤부터, 며칠 전에 들은 말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녁식사를 한 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창 밖을 보았다. 언덕이 보였다. 언덕을 넘어서 멀리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얽혀 머리 속이 복잡했다. 결국, 나는 야자를 빠지고 학교에서 나왔다.

학교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우습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늘, 이 사회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왔고, 사회의 변화를 위한 뭔가를 한 적도 없었다. 청소년인권 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내 머리카락은 늘 짧았고 교사의 체벌에 아무 말도 못했고 묵묵히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모두가 즐거운 분위기에 야자를 ‘째서’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이 한 반도 채우지 못할만한 수였을 때도, 나는 그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에 속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학년의 새 담임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 공부를 잘했음에도 ‘집안 사정으로’ 교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는, 늘 무언가 열등감을 갖고 사는 듯 했고, 그 열등감을 학생들에게 풀려는 듯 보였다. 나는 한 달도 채 못되어 그에게 ‘지쳐’ 버렸다. 그는 ‘늘 공부할 것’을 매번 강조했는데, 그에게 그 공부란 것은 ‘목적’이 아닌 ‘수단’,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짜증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말들, 이를테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 나는 한자를 몰라 한글로 해석한 것만을 외우고 있다(웃음)) 따위의 말들을 인용하며 늘 결론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맺었기 때문이었다. ‘공부해서 출세해야 한다’는.

그 교사가 오늘 아침, 또 다시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 도중, 지난 학기 성적이 우수해 장학금을 받은 학생에게, ‘이번 성적이 이 모양이니 이번 장학금은 글렀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학생은, 늘 말이 없고 어딘가 소심해 보이는 그는, 곧장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 별로 필요 없는데요.”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겁이 나서만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도 못할 것이다. 나는, 그냥 이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살아가려 애쓰니까. 내가 그 교사와 다를 게 무엇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렇게 괴롭다는 것은, 분명 이 나라의 학교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테지.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6교시까지만 수업을 받고, 집에 갈 수 있었으면. ‘순응자’의 너무도 소박한, 그런 바람을 ‘미친 것’으로 취급하는 학교. 저녁식사 때,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이 학교가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나를 늘 두렵게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한 때일 뿐이며, ‘어른’이 되면 바뀌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이런 생각이나 하며 시간을 낭비했던 학창시절을 후회하게 될 거라는 협박. 내가 두려운 것은 그 협박 그 자체가 아니다. 그 협박이 정말이 아닐까 생각하는 내 마음 속 어딘가, 나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런 따위의 두려움 속에,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웹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CSS의 ‘:before’와 ‘:after’가 무슨 기능을 했는지 잊어버리게 되면서 동시에, 나는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 나의 모습과, 내가 이 학교를 나와 되고자 했던 나의 모습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수년간 갖고 있던 꿈이, 단 몇 개월만에 무너져 버렸다. 아니, 내가 무너뜨려 버렸다. 모든 것은 나의 탓이었다. 나는 ‘내가 원해서’ 이 학교에 들어갔고, 나 스스로 나를 방황 상태에 놓았다. 그리고 내가 그 상태를 바꿔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두려워서 바꾸질 못하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잊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이 학교에 왜 들어왔는가를. 그리고, 이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 말하면서도 정작 행동은 그렇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순응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들은 그 한마디가,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간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는 떠나고 싶었었다. ‘공동체주의’라는 미명 하에 나를 ‘전체’ 속에 가둬놓으려 했던 것들.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는, 나치 독일을 연상시키는 그 말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었었다. ‘자유주의’라는 미명 하에 나의 행복을 억압하려 했던 것들. ‘우리도 너희들의 바람과 같은 바람이지만, 아직 그 바람을 온전히 실현시키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속삭이며 힘있는 자들의 자유만 신경썼던 그들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었었다. 그딴 건 공동체주의가 아니야. 그딴 건 자유주의가 아니야. 내가 벗어나고 싶은 것들이 전혀 없는 세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런 것들이 노골적이지는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었다. (나는 이 곳을 그런 세상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곳에 가기 위해 계획을 짰지만, 그 계획은 좌절되었고, 그 계획을 수정했다. 나는 바보였다.

나는 바보같은 계획에 따라, 내가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들이 가득한 곳에 들어갔다. 한 달도 안 되어서 나는 후회했다. 원래의 계획대로 살 수는 없을까, 고민했지만, 두려워졌다. (원래의 계획이라고 해서 그리 좋을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적어도 6교시까지만 수업을 받고 집에 갈 수 있으니까.)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포기했고, 점점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바꾸고, 타협했다. 어른들이 좋아할만하면서, 나도 썩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나의 ‘꿈’이랍시고 가지게 되었다. 겉으로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꿈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이 마음 한 구석에 늘 남아 있다.

도착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 코스.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이런 느낌의 길이 존재했다니. 두 번째 찾아갔을 때, 나는 실망했다. 그 느낌이 아니었다. 세 번째, 실망했다. 네 번째, 오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기뻤다. 그 때의 그 느낌,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세번째, 그리고 네번째 방문에서 그 길이 달라진 것은 별반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이 달랐을 뿐. 처음 그 길을 발견했을 때, 그 때는 시험기간의 주말이었고, 나는 스트레스를 무척 받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국, 나는 그 길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산책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좋았던 것이었다. 나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제멋대로 춤췄다. 학교에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매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느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때까지.

쿵쾅거림은 계속되었다. 나는 그 이유를 성급히 판단하지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나는 떠나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 그리고, 내가 두려움만 이겨낸다면,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두려움. 아직은 힘들지만, 조금씩, 이겨내야지.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바꾸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 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두려움만 이겨낸다면, 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일 것이다. 나는, 실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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