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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꽃을 꺾으며

나는 ‘명품’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명품’은 원래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런데 과연 지금 ‘명품’은 그런 물건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분명히 아니다. ‘명품’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닌 ‘값이 비싸거나 이름난 물건’을 가리키는 단어, 곧 ‘사치품’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뛰어나면서 값싼 물건’은 ‘명품’이라는 꼬리표를 잃어버렸다. 지금의 ‘명품’이라는 단어의 잘못된 사용은 ‘값이 싼 물건은 뛰어난 물건이 아니다’라는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는 ‘명품’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성공’도 ‘명품화’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질적 성공’만이 ‘성공’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가끔 ‘조금 부족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말이 들리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비웃는다. 물질적 성공만이 성공으로 불리는 사회이기에, 다른 성공은 성공이 아닌 사회이기에 그런 비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질적 성공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역설적이게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물질적) 성공은 성적순’이라는 말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질적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내일의 행복, 즉 물질적 성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꺾어버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하자.” 그 말은 3년 후에 이렇게 바뀐다. “취업만 하자. 취업만 하면….” 취업한 뒤에는 어떻게 바뀌는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오늘의 행복’이라는 꽃을 꺾어 버린다. 그리곤 내일의 꽃, 신기루 꽃을 하염없이 좇는다. ‘이렇게 계속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저 꽃이 손에 잡히겠지’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넌 현실을 잘 몰라.”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현실을 모르는 건 당신이에요. 오늘의 꽃을 꺾으면서 내일의 꽃을 얻길 바라는 게 당신들이 말하는 그 현실이라는 것인가요?”

나는 그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만약 내가 그들을 비난한다면, 내가 나 자신을 비난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들은 곧 나이다. 아니, 그들에 ‘가식’과 ‘위선’이라는 단어를 더한 존재가 나다. ‘명품’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면서 소위 ‘명품’을 판다는 가게가 나오면 눈이 돌아가고, ‘성공’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면서 오늘도 (물질적) 성공을 꿈꾸는 존재가 바로 나다. 그들은 내일의 꽃, 신기루 꽃을 좇으며 모래사막을 달려가는, 희생자들일 뿐이다. 나는 모래사막임을 알면서도 그들과 함께 달려가는 얼간이이고.

“지금은 준비단계니까 열심히 시키는대로만 해. 나중에 언젠가 꽃을 피울 날이 있을 거야”라는 식이지요.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하루하루 여러분의 생활이 행복한 과정의 연속이어야 하고 또 그렇지 않은 것과의 싸움이어야 해요.

강수돌님의 말이 옳음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늘의 꽃을 꺾으며, 모래사막으로.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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