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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미학혁명 포스터

작년에도 이러한 집회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집회가 있더라도 바뀌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바뀌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참가하려 한다. 남들이 다들 A형 아니냐고 하는 소심하디 소심한 성격이지만, 할 말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만약 이러한 집회가 없다면, 30년은커녕 60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식과 손녀·손자들이 소지품 검사를 두려워하며 어떻게 하면 휴대전화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지 않길 바란다. 이런 일은 우리 세대 이후로 끝나 버리길 바란다. 내 자식과 손녀·손자 세대들이 지금을 마음껏 비웃길 바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21세기 초까지 일어날 수가 있느냐고. 마음껏 비웃길 바란다.

나는 학교가 ‘규율을 잘 따르는 사람’ 이전에 ‘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책임감 있는 사람’을 길러내길 바란다. 규율은 어느 동물이나 다 따를 줄 아는 것이나, 자유는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마음대로 휴대전화를 쓸 거라는 주장은, 학교가 교육이 아니라 사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물론 교육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건 잘 안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학교 교칙은 단지 동물을 편하게 부리기 위한 채찍에 불과하다. 결코, 자유인이 책임감 있게 자발적으로 지키는 규칙이 아니다. 만약 학교 교칙이 자유인의 규칙이라면, 학교 교칙을 바꿔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화는커녕 툭하면 ’퇴학시키겠다’는 협박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원래 그러니 타협하라고? 나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타협을 했다. 만약 더 타협을 한다면, 난 양심의 가책으로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사육이 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활개를 치는 세상에서 ‘그건 교육이 아니야!’의 ‘ㄱ’ 자도 외치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집회가 끝난 다음주 월요일에 학교에 가선, 두려움 때문에 또 착한 학생 행세를 할 나를 보고, 타협하라고 말하지 마라. 나는 나 자신이 정말 비겁하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타협을 해왔다. 나는 내 자식과 손녀·손자 세대들이 나를 두고 ‘철저한 비겁자’라고 비웃길 원치 않는다. ‘적어도 밟았을 때 꿈틀하긴 했던 지렁이’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비록 내가, 나를 밟는 발을 잘라버릴 용기는 갖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온건한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혁명보다는 개혁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상의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이들은 알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교육은,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내가 다음 주 토요일에 서울에 가고자 교통비를 꾸러 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웃음)

덧붙임.
집회에 참가한다는,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거창하게 쓰는 것, 보기 거북하시더라도 참아주시길 바란다. (웃음) 내가 이 세상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자괴감에 나온 ‘거창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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