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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는 이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왜 하지 않느냐고? 음…. 질문에 답하기 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넌 국가가 뭐라고 생각하니?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면서 무엇을 떠올리니? 국가를 생각할 때 뭘 떠올리니?

네가 뭘 떠올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은 잘 없을 거야. 그치? 그런데 우리가 충성을 맹세하는 그 국가가 대체 누구일까? 무엇이 아니라 누구냐고 묻는다는 것에 집중해줘. 음…. 난 말이지, 국가는 곧 국민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 옛날에야 왕이 모든 권력을 다 갖고 있었으니 ‘짐이 곧 국가’였겠지만, 지금은 주권재민이니 국민주권이니 국가의 권력을 국민이 모두 갖고 있다고 하니까 말이야. 국가는 곧 국민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국민 대다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니? 생각해봐. 그러면 국가는 곧 국민이고, 국민 대다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니, 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게 맞지 않을까?

맞지 않아? 맞지? 그런데 말이야, 넌 이웃집 아저씨에게 충성할 거니? 그것도 ‘몸과 마음을 바치며’ 말이야. 혹시 네가 이웃집 아저씨라는 표현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주머니로 할까? 아니면 네 친구? 아저씨든 아주머니든 네 친구든, 네가 그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이유가 없는 건 분명해. 물론 넌 그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거나, 어려운 사정에 부닥쳐 있을 때 그들을 도와줄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네가 그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그들에게 충성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래, 내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일 뿐이야.

어쩌면 네가 나에게 ‘국가는 너를 전쟁과 같은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국가와 국민은 서로 다른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네가 네 친구를 지켜주고, 네 친구가 너를 지켜주는 것일 뿐이야.

그리고 노파심에 조금만 더 말할게. 어쩌면 네가 국가를 생각하며 대통령과 같은 국가원수, 혹은 그 외에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건 아니잖아. 단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좀 더 잘 지킬 수 있게 그들에게 몇몇 권력을 넘겨준 것일 뿐이지. 말하자면 스포츠 경기의 감독과 같은 존재라 할까? 감독이 없으면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감독이 경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경기에서 이겼다고 선수들이 감독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까지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예를 들어 전쟁과 같은 일들은, 우리,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전쟁에 나가 싸운 건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뿐이었지.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그러한 전쟁을 일으킨다든지 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던 사람들은 대개, 네가 국가를 생각하면서 떠올렸을지도 모를, 정치권력을 비롯한 권력을 쥔 사람들이었고.

이런데도 국가에 충성해야 하니? 난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


예전에 국기에 대한 맹세에 관한 글을 쓴 이후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고 있다. 내가 맹세를 하든 말든 신경 쓰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어쨌든, 난 거창한 이유로 맹세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냥 국민이 곧 국가라는 말, 몇백 년 동안 말해져 왔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는, 그 말대로 세상이 돌아가길 바라는 작은 소망 때문일 뿐이다. 그 소망을 다른 사람도 알아줬으면, 특히 내 친구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입말(口語)로 ‘국기에 대한 맹세’에 관한 두 번째 글을 쓴다.

국가라는 말만 나오면 흥분하는 모습들, 이젠 없었으면 좋겠다.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지나쳐 뭘 하든 충성이면 곤란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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