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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March 2007

우울한 ‘검사’

야간자율학습(난 이 말에서 두 글자가 원래 뜻과는 다르게 사용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1차시 때 두발·복장·소지품 검사를 했다. 소지품 검사는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인권위를 비롯한 여러 인권 단체들의 말, 아무도 듣지 않는 그 말이 떠오르기 이전에, 몇 주간 학교에 들고 오지 않다 오늘 아침에 ‘에이, 오늘 하루만 들고가자!’라고 생각하며 들고 왔던 휴대전화가 먼저 떠올랐다. 이번 달이 휴대전화 할부 마지막 달. 해지 통지서를 갖고 오면 돌려준다지만(아예 돌려주지 않는 학교가 많은 이 현실에 돌려주는 우리 학교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오늘 이렇게 휴대전화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가방 안 물건을 다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선도부가 가방 안과 책상 위의 물건들을 검사할 때 그들은 내 주머니 안의 휴대전화를 보지 못했다. 복장·두발과 교복 안 소지품을 검사받고자 복도로 나갈 때, 나는 내 휴대전화를 열려 있던 내 가방 안으로 슬쩍 집어넣었다. 가방이 검은색이고 휴대전화도 검은색이라 다행히도 걸리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교복 안 소지품 검사와 가방 안 소지품 검사를 같이하지 않다니….

복도에서 ‘검사’를 마치고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것에 안도(?)하고 있었는데, 그때 옆 친구의 농담, 휴대전화를 빼앗긴 후에 나온, ‘이제 공부가 좀 잘 될 것 같다.’라는 그 농담이 안도하던 나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비록 농담이었지만, 나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를 더 우울하게 한 건, 검사를 마친 후 선도부와 반 아이들 사이에 몇 가지 질문과 답이 오갈 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내가 무엇을 향해 분노해야 하는지 잘 말해 주었다. 선도부도 결국 시켜서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웃으려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적극적으로 아수나로 활동을 할 수 없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러한 ‘검사’에 저항하면(다른 말로, ‘개기면’ — 난 이런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떻게 될지는 뻔한데, 나를 두렵게 만드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그 저항의 마지막이 될, 어머니의 눈물이다. 저항한 적도, 행동한 적도 없는데 이미 어머니의 눈물을 두 번이나 본 나는, 도저히 어머니의 세 번째 눈물을 볼 자신이 없다. ‘그냥 조용하게 고등학교 3년 지내면 안 되겠니’라는, 세 번째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실 그 간절한 부탁을 듣지 않으면서까지 저항할 용기는 내게 없다.

여태까지 ‘착한 아이’로 지내왔고, 아직도 꽤 ‘착한 아이’로 지내는 나는, ‘내 발에 묶여있는 사슬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한심하디 한심한 생각을 하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학교 에서 행동할 수는 없는, 나약한 나는, 그 나약함으로도 모자라 (차마 정치 활동을 하면 안 되냐는 질문은 못 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교칙이 전부냐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교칙을 확인해보니 ‘외부의 불순 세력에 가입하거나 연계되어, 불순 행위나 정치성을 띤 활동을 한 학생’은 선도 처분을 받는단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쫓아내겠다는 소리다.)

검사가 끝나고 나서 ‘앞으로는 교칙을 따라 잘 협조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방송을 들으며, 나는 학교 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이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나약하디 나약한 학생 김동욱이었다. 나 자신이 정말 한심스러웠다. 너무나 우울한 ‘검사’였다.